게임 속 인간존종…세계인 마음 사로 잡다

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그 스물네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살아있는 벤처계의 신화로 불리며, 올해 당당히 코스피 상장사 중 수익률 2위를 기록한 엔씨소프트다.

현대전자에 있을 당시 김택진은 행운을 만났다. 게임계의 천재로 불리는 송재경(現 XL게임즈 사장)으로부터 긴급한 도움 요청이 온 것이다. 송재경은 카이스트를 나와 한글과컴퓨터에서 근무, 이후 국내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게임인 ‘바람의 나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인물이었다.

당시 한글과컴퓨터는 회사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한/글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윈도우 버전 개발에 계속해서 실패를 하자 한글과컴퓨터는 김택진에게 SOS를 쳤다. 당시 현대전자 직원이었던 김택진은 한글과컴퓨터에 파견근무를 나가면서 송재경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송재경은 리니지를 기획할 때 사람들이 게임 속에서라도 불평등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잊게 하고 싶었다.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이에 따라 송재경은 인간이 꿈꾸는 판타지를 게임 속에서 구현하는 동시에 약간의 운의 요소를 추가했다. 초기의 리니지는 이처럼 이상론적인 세계관에서 출발했지만 평소 철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김택진은 점점 현실적인 인간의 삶을 게임 속에 표현하고자 했다. 

기술적으로 보면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는 완전히 새롭게 탄생했다. 당초 리니지는 PC통신 기반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김택진은 전 세계인들이 모두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인터넷 기반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기존의 코드가 상당 부분 수정돼 만들어졌다. 클라이언트 개발에서는 한국 최고의 게임프로그래머였던 송재경이 다시 한번 천재성을 발휘하며 부드러운 애니메이션과 뛰어난 타격감을 자랑하는 게임으로 변모했다.

또한 네트워크 분야에서는 한국 최고 수준이었던 김택진이 서버 관련 업무에 참가해 온라인게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쾌적하고 안정적인 게임 환경을 구축했다. 서버 구성 면에서 솔라리스 운영체제를 구축하고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으로 회원들의 정보를 관리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1998년 리니지가 처음 등장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요약됐다. 한국 게임 같지 않다는 것. 그동안 한국 게임들은 일본 게임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 3등신에 아기자기한 만화풍의 그래픽이었다. 반면 리니지는 8등신에 사실적이고 실감나는 그래픽이었기 때문에 그래픽만 보면 한국 게임이라기보다는 미국 게임 같은 느낌이 컸다. 그래서 인지 처음 리니지가 등장했을 때 유독 많은 외국인들이 관심을 보이며 접속했다. 특히 한국 게임에 외국인이 접속할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인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기반이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외국에서도 인터넷으로 접속할 수 있는 게임은 리니지가 최초였다.

유료 게임 서비스 시작

문제는 김택진이 완성도 높은 게임 개발 목표에 열중한 나머지 수익 모델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리니지 완성 당시 게임 산업의 유일한 수익 모델은 하이텔이나 천리안 같은 PC통신에 서비스해서 부가사용료를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니지는 애초부터 PC통신에 서비스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또한 김택진은 PC통신이 수익금의 30%를 가져가는 것은 횡포라고 생각해 부당한 계약은 맺고 싶지 않았다.

이때 김택진이 생각해 낸 수익 모델은 PC방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PC방에서 정액제 요금제로 리니지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지금 보면 너무나 당연한 수익 모델이었지만 리니지가 처음 서비스될 때만 해도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당시 PC방은 오직 스타크래프트를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번 게임을 구입하면 평생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와 달리 매달 돈을 지불해야 하는 리니지 시스템을 처음 PC방 업주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적극적으로 PC방 업주들을 설득해 나갔다. 스타크래프트는 한번 게임을 하면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지만 리니지는 모든 기록이 남고 성장과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스타크래프트보다 더 지속적으로 게임을 하는 요소가 있음을 강조했다. PC방에서 오랜 시간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결국 PC방에도 이익이 되기 때문에 리니지에도 이익이 되는 구조였다.

엔씨소프트의 적극적인 홍보와 영업 덕분에 리니지를 서비스하는 PC방이 늘어났다. PC방을 총판과 가맹점의 형태로 공략하게 되자 동시접속자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8년 말에 유료 서비스를 시작해 그 해에 1000명의 동시 접속자를 기록했고, 1999년에는 1만 명, 2000년에는 국내 최초로 동시 접속자 10만 명을 넘어서며 기하급수적으로 회원 수가 늘어났다. 1997년 매출 5억 원에 불과했던 엔씨소프트는 1999년 매출 80억 원으로 급증했고 2000년에는 570억 원에 이르게 됐다. 이러한 리니지의 성공을 발판으로 엔씨소프트는 주식시장에도 진출해 한국 벤처기업 중 최고의 황제주로 부상했다. 엔씨소프트의 이러한 성장세는 계속 이어져 2010년 역대 최대 매출인 6497억 원을 달성하는 쾌거도 이루게 된다.

온라인 게임의 블루오션

당시 온라인게임은 바람의 나라, 영웅문, 워바이블 정도가 전부였다. 수익성 측면에서는 다들 최악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때 바로 리니지가 등장했다. 외국인들이 베타테스트에 참여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고, 실제로 기존에 나왔던 온라인게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디아블로처럼 8등신 캐릭터에 화려한 액션을 더함으로써 다른 게임이 가지지 못한 게임성을 확보한 것이었다. 한국도 이제 외국의 유명 게임과 비슷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다면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됐다.

리니지의 신화는 시간이 갈수록 가속이 붙었다. 앞서 흥행을 끌었던 디아블로가 고작 네 명이 접속해 플레이하는 네트워크 게임인 반면, 리니지는 수천 명이 동시에 즐기는 게임으로 게임 제작에 들어가는 기술 수준이 달랐다. 리니지에는 디아블로에서 요구되는 서버 안정성의 몇 배가 필요했다. 이에 송재경은 리니지의 서버 안정성 확보를 위해 모든 노력을 여기에 쏟아 부었다. 당시 타 온라인게임은 오류가 심해 많은 사람이 접속을 하면 속도가 느려졌다. 속도가 느려지면 이동도 불편하고 특히 전투할 때 재미가 반감됐다. 그러나 리니지에서는 서버의 안정성 덕분에 많은 사람이 접속해도 속도가 느려지지 않았고 게임을 즐길 수가 있었다. 이는 송재경의 노력과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리니지가 자랑하는 공성전(적군의 성곽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되던 각종 무기와 공격 요령, 군사 편제 방식 등을 소개함)만 해도 간단한 것이 아니다. 리니지 시리즈 이외에 제대로 공성전을 구현한 다른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은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는 송재경의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록 그래픽과 게임 시스템은 디아블로의 영향을 받았을지 몰라도 그것을 능가하는 서버/네트워크 기술로 게임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한 것은 바로 리니지다. 이처럼 리니지가 온라인게임의 블루오션을 만들어내고 전체 게임 시장을 키웠다는 것에 대해서 업계에서는 높이 평가했다.

리니지는 판타지를 배경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금속성의 사실적인 그래픽이었다. PC방 사장들은 라이트 사용자를 위한 다른 분위기의 게임을 찾았고 그 결과 초등학생과 같은 저연령층을 위해서 바람의 나라를 서비스하게 됐다. 그 밖에 무협 마니아를 노린 영웅문이나 우주 SF를 세계관으로 삼는 워바이블 등이 틈새시장을 파고들 수 있었다. 즉 전체 게임 시장의 파이가 커지게 된 것이다. 결국 리니지의 성공은 엔씨소프트의 직원들만 부자로 만든 것이 아니라 모든 게임 회사의 파이를 크게 만들어준 셈이 됐다.

리니지는 한국에서도 게임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게임 회사도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음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알렸다. 또한 유능한 개발자들이 게임 회사에 문을 두드리게 만든 계기가 바로 리니지의 성공 덕분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넥슨과의 합병…또 다른 시작

지난해 11월 김택진은 엔씨소프트의 소유 지분을 넥슨에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서 김택진은 지난해 6월 넥슨에 지분 14.7%를 8045억 원에 넘기며 최대주주 자리를 내준 바 있다.

김택진은 “김정주 NXC 회장 제안으로 양사가 힘을 합쳐 우리나라 게임 산업 발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좋은 M&A를 추진하려고 했었다”면서 “당시만 해도 8월 정도면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추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현재까지 밝힐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외산 게임이 국내 게임업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게임사들이 힘을 모아 멋진 일을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현재도 유효하고, 좋은 결과를 내도록 넥슨과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엔씨소프트는 중국에서 블레이드&소울 성공과 모바일 게임 출시 등에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주가 상승과 관련해서도 중국에서의 블레이드&소울 흥행에 대한 기대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블레이드&소울은 중국에서 지난 7일부터 비공개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수만 명이 참가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로써 엔씨소프트가 모바일게임에서도 성과를 보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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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수진 기자>
<출처=리니지와 아이온의 신화 김택진 스토리 中│김정남 지음│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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