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못 미친 금리·까다로운 조건에 신규계좌 ‘스톱’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서민의 재산형성을 독려하는 재형저축의 열풍이 급격히 식으면서 그 배경에 의문이 쏠리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각 은행별 재형저축 가입현황을 조사한 결과 출시월을 제외하고는 3개월 연속 가입이 둔화됐고 급기야는 신규계좌 개설이 멈추다시피 한 것으로 밝혀졌다. 과연 재형저축이 ‘반짝’ 인기를 끝으로 시들어갈지 혹은 다시 살아날지를 금융권의 관련 움직임을 통해 짚어봤다.

 

<사진=뉴시스>

18년 만에 부활…대상자 900만 명중 실 가입자 171만 명
고정금리형 상품 출시ㆍ소득공제 신설 법안이 회생 변수

본래 재형저축은 ‘근로자 재산형성 저축’의 줄임말로 지난 3월 근 18년 만에 부활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대대적인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가입 대상자 900만 명 가운데 실제 가입자는 5명 중 1명 수준인 171만명에 그쳤다.

은행권의 경우 초기 첫 달인 3월에만 111만여 계좌가 몰렸지만 4월은 25만여 계좌, 5월은 8만여 계좌에 그치는 정체 현상을 보였다. 급기야 지난달에는 겨우 2만여 계좌가 증가하면서 3월 출시 첫날에만 28만여 계좌가 생성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이처럼 재형저축의 인기가 점점 시들해진 원인은 대표적으로 기대보다 높지 않은 금리, 까다로운 조건, 수익성 저하 등이 꼽힌다.

사실 재형저축이 처음 출시된 1970년대만 해도 연 30%의 막강한 이율을 자랑했지만 현재는 최고 4.4~4.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도 은행이 제시하는 각종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받을 수 있는 우대금리다.

게다가 외국계인 SC은행과 씨티은행의 경우에는 4%대가 아닌 3%대의 금리를 준다. 현재의 저금리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서민과 중산층의 재산형성이라는 기치 아래 기획된 저축상품 치고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셈이다.

이 이율은 가입기간 내 고정금리가 아니며 3년 후에는 변동금리로 전환된다. 계속해서 저금리가 유지될 경우 초기 금리보다 낮아지면서 이자는 계속 줄어드는 것이다. 또 7년 이상 유지해야만 우대금리에 따른 이자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다.

은행권에서도 역마진 논란이 일면서 재형저축을 뒷전으로 놓고 있다. 출시 당시만 해도 은행의 일반 예적금과 재형저축의 금리 차는 1%포인트 정도였다. 그러나 기준금리가 2.5%로 내려가면서 금리 차가 1.5~2%포인트까지 커진 탓에 재형저축 판매를 멀리 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재형저축 가입자들은 저연봉자라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선호도가 더욱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가입 조건에 연봉 5000만 원 이하의 근로자라는 항목이 명시돼 있어 오히려 가입 사실을 숨기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소개팅에 나가 재형저축 이야기를 꺼냈을 때 가입했다고 하면 ‘애프터’를 하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돌 정도였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 특성상 주변의 연민 어린 눈길을 감내하면서까지 재형저축 가입 사실을 드러낼 수 없었다는 의미다.

 

저축ㆍ펀드ㆍ보험 가리지 않고 고전

재형펀드와 재형보험의 경우는 사정이 더욱 나쁘다. 재형펀드는 재형저축과 같은 날 출시됐으나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가입자가 뚝 끊겼다.

운용사별로 총 63개에 달하는 재형펀드는 출시 한 달이 지나도 설정액은 100억 원 수준에 머물렀으며 설정액이 1억 원 미만인 펀드는 4개 중 1개인 76%에 이르렀다. 아예 수탁고에 돈이 들어오지 않은 ‘0원 펀드’도 5개나 됐다.

또 재형보험의 경우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상품 출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며 아예 출시 계획조차 없는 곳도 있다. 기존 저축성보험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은데 굳이 재형보험을 테마로 한 상품을 새로 내놓을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비교 대상인 저축성보험은 재형보험과 달리 가입 대상과 납입 금액에 제한이 없다. 다만 비과세 혜택을 위한 유지 기간은 7년이 아닌 10년 이상으로 차이가 있다. 상품에 사업비를 반영하는 부분도 보험사들이 재형보험 출시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편 재형저축 활성화를 위해 일부 시중은행들이 고정금리형 재형저축 상품을 곧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과연 재형저축 붐이 다시 일어날 것인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새 금리를 도입한 재형저축 상품은 하반기 내 출시될 계획이며 7년 동안 금리가 고정되는 대신 3%대의 이율을 적용할 예정이다.

국회에서도 재형저축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이 포착돼 눈길을 끌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이낙연 민주통합당 의원은 재형저축 활성화를 위해 재형저축 금액에 대해 최고 400만 원까지 소득공제가 가능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지난달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소득공제는 비과세보다 체감 혜택이 더 크기 때문에 중산층과 서민의 목돈 마련에 실질적 도움이 가능하다”면서 “재형저축에 소득공제 혜택을 주면 가입자가 상당히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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