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여성으로서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성공과 실책을 교훈으로 삼을만하다. 호세프는 122년의 브라질 공화국 정치사상 최초로 2011년 1월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박 대통령도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1970년대 반독재 투쟁으로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으며 3년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브라질을 위해 “험난한 여정”을 거쳤지만 “후회도 분노도 원한도 없다”며 남자 보다 더 폭 넓은 포용과 화합을 다짐하였다.
호세프는 남성 대통령도 해내지 못한 부패척결을 위해 과감히 나섰으며 무능 각료들을 가차없이 퇴출시켰다. 그는 부패와 관련된 혐의로 장관 7명을 사퇴시켰고 업무수행이 낮게 평가된 각료 10명을 교체했다. 그의 단호한 부패척결 의지와 각료 기강확립은 첫 취임 1년 동안 신뢰와 인기를 수직으로 상승시켰다.
하지만 치솟던 호세프 대통령의 인기는 그로부터 다시 1년 후인 올 6월 전국적으로 확산된 격렬한 반정부 시위에 부닥쳐 수직으로 곤두박칠 쳤다. 반정부 시위의 발단은 상 파울로 시 당국이 버스 요금을 우리 돈으로 100원 인상, 1600원으로 올린데 대한 반발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월 최저 임금이 33만 원인 브라질로서는 적지 않은 인상폭이었다.
버스 요금 인상 반대 시위는 곧 바로 전국으로 확산돼 100만여 명이 참가하게 되었고 시위대의 절규도 버스 요금을 넘어 정치·경제·사회·교육 문제로 번져갔다. 여야 정치권의 부패, 경찰의 강경 시위진압, 부실한 복지·교육제도, 취약한 의료 환경, 불공정한 세금체계, 2014년 월드컵 대회와 2018년 하계올림픽 위한 과도한 시설 투자 반대, 등으로 이어졌다.
시위가 험악해져 가자 호세프는 갈팡질팡하였다. 그는 처음 시위가 벌어지자 “거리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밝혔으며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증거”라고 하였다. 포퓰리즘(대중영합인기몰이)에 젖은 말이었고 시위대 비위를 맞춘 아첨이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쇠고기 규탄시위가 발생하자 거기에 겁먹고 “수없이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반성한다” 등의 굴종적 대목을 연상케 했다.
호세프는 시위가 더 더욱 격화되어 가자 즉흥적으로 대응책을 시리즈로 남발하였다. 그는 새 헌법제정을 위한 제헌 국회를 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곧 이어 국민투표가 더 낫다고 바꿨다. 그는 부실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에 대한 항의와 관련, 석유 특허권 수입을 교육과 의료 분야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석유 특허권 수입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상태이다.
또한 그는 도시 빈민굴과 농촌 오지의 의료 서비스 해결책으로 포르투갈, 스페인, 쿠바 등으로부터 의료진을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브라질 의사협회는 자신들도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판국에 해외 수입은 말도 안 된다며 격렬히 반대하고 나섰다.
호세프의 갈팡질팡하는 모습과 임기응변은 정치지도력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렸다. 포퓰리즘에 매달린 무원칙한 임기응변이 자초한 정치적 재앙이었다. 호세프 인기의 상승과 하락은 똑같은 여성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값진 교훈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호세프의 인기 상승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여성 대통령은 단호한 부패척결과 각료 기강 확립을 통해 남성 대통령 보다 더 큰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애써 쌓아올린 신뢰도 여성으로서 포퓰리즘에 압도돼 연약하게 흔들릴 때 하루아침에 붕괴된다. 박 대통령도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하며 신념과 원칙에 입각한 정책 수립과 집행을 소신껏 밀고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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