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행성 게임 다시 기승

<뉴시스>

세금 한 푼 안내는 ‘바다이야기’ 대대적 수사
더욱 교묘하게…주택가서 버젓이 게임장 운영

[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박근혜정부의 복지 예산이 97조 원이 넘으면서 세수 확보가 최대 국정과제로 부각되고 있지만, 오히려 지하경제만 커졌을 뿐 세수확보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그 중 불법사행행위(슬롯머신, 인터넷포커, 고스톱 등 불법으로 자행된 웹보드게임)는 지하경제 중에서도 규모가 아주 큰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음성적으로 활성화 돼 있어 단속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정부 단속의 빈틈을 노린 업소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문제로만 지적될 뿐이다. 이에 [일요서울]이 그 실태를 파악해본다.

사행성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불법사행행위 시장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최소 4조5000억 원에 달한다. 게임업계가 추산하는 합법적인 웹보드게임 시장 규모가 약 5000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9배에 달하는 ‘지하경제’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불법사행행위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다이야기’로 불리는 슬롯머신 오락게임이다.
2004년 스크린 경마 게임을 만들던 회사 에이원비즈에서, 일본의 파칭코 게임인 우미모노가타리 시리즈에 착안해 만들었다.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를 도용한 불법오락기 제조가 시작됐다. 일명 ‘돈 넣고 돈 먹기’식의 게임 진행방식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몰리면서 엄청난 시장을 형성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상품권 환전’을 합법화해주면서 그 시장이 더욱 커졌다.

당시 도박 산업의 규모가 수 십조 원에 달한다는 집계가 나돌았을 정도다. 업장을 20여 일만 운영하면 운영자가 가져가는 순수 이익이 수억 원에 달한다는 증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업자 A씨는 “당시를 회상하면, 오락기기와 소프트웨어 구입은 용산전자상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한대 당 30~40만 원이면 구입이 가능했다”며 “업소 부지는 산이나 땅값 비용이 저렴한 곳을 선정한 후 주변 업소를 신고해 경찰 조사로 소탕 한 뒤 업장을 오픈하면 5일 이내에 원금을 찾고, 20일이면 수 십배에 달하는 목돈을 챙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20일이 지나면 또 다른 업소의 제보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속사정을 귀띔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엔 이 산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뒤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서민피해가 확산됐고 그 부작용이 심하다는 이유였지만, 음성적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단속은 쉽지 않다. 오히려 오락실 환전용으로만 쓰이던 문화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면서 정상적인 소비활동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지하경제만 살찌우는 계기가 됐다.

문화상품권을 사용하는 일부 업소도 이 상품권을 들고 인근 게임환전소에 내면 수수료를 뺀 만큼의 차익을 현금으로 돌려줬다.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돈이 음성적으로 거래가 된 셈이다.
지난달 30일에도 주택가 인근 폐창고에서 ‘바다이야기’ 게임을 설치한 후, 손님을 모아 사행행위 영업을 한 피의자들이 경찰에 검거 됐다.
충남 논산경찰서는 충남 논산시 은진면 토양리의 폐창고에서 사행성 게임기를 설치해 놓고 영업을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현장을 급습해 업소에 설치된 ‘바다이야기’ 게임을 하는 모습을 포착, 업주 및 종업원을 검거했다.
검거된 업주 피의자 B씨(39세)등 4명은 같은 달 1부터 검거당일까지 주택가 인근의 폐창고에서 무등록게임장을 운영하면서 사행성 유기기구인 ‘바다이야기 30대, 오션파라다이스 30대’ 등 총 60대를 설치하고 손님을 모아 영업하며 현금으로 환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업주인 피의자 B씨는 경찰의 단속에 대비해 농촌지역 폐창고를 임대해 영업장을 개설했다. 불특정 다수의 손님에게 영업사실을 문자메세지로 전송한 후, 연락이 올 경우 미리 준비한 차량에 태워 영업장으로 손님을 태우고 온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특히 차량에 손님을 태울 경우 영업장소가 노출될 것을 우려해 차량 안에서 밖이 보이지 않도록 차량의 유리창을 가려 영업장소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등의 치밀함을 보였다.
김효수 논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경장은 “최근 경찰의 집중적인 사행성게임기 단속에 대비해 농촌의 폐창고, 비닐하우스 등으로 영업장소를 옮겨 사행성 유기기구를 설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바다이야기’등 사행성 유기기구 단속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A씨는 “도박사업자 대부분이 이젠 온라인 도박에 집중하고 있어, 단속도 잘 안되고 수입도 수 십억원에 이르기에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여전히 바다이야기가 성행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또한 그는 “PC로 즐길 수 있는 온라인 릴게임 등 다양한 방식의 신종 불법 게임이 등장하면서 그 수법이 더욱 교활해졌지만 지속적인 단속을 통해 근절대책은 쉽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게임 특성 상 인터넷 연결만 되면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설치할 수 있고, 불특정 다수가 집이나 사무실에서 사이버머니를 충전해 불법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

주요 포털사이트와 게임관련 인터넷 카페 등에는 ‘대한민국대표 릴게임’, ‘최고 X300 배당의 고배장’ 등의 광고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A씨는 “현금을 게임머니로 환전한 후 판을 벌인다”며 “업자는 대포통장을 쓰는 경우가 많아 당국의 조사를 피할 수 있고 수수료만 챙겨도 상당한 돈을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합법을 가장해 지하경제를 키우는 산업도 있다. ‘게임 아이템’거래다. 문제는 이것이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일부 불법 사업자들은 ‘아이템 공장’이라는 것을 운영한다.
조그만 방에 컴퓨터 여러 대를 설치 한 후 게임을 통해 습득한 아이템을 거래 시장에 유통하는 것이다. 이 역시도 당사자간의 현금으로 거래 돼 세금 징수를 피하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 안돼강경한 정부처벌 있어야
이에 따라 법적조치가 더욱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다. 미국의 경우 탈세범으로 잡힐 경우 ‘이런 행동을 최소한 지난 30년 이상 저질렀던 것’으로 간주해 소급 처벌한다. 따라서 2~3년 탈세를 하다 잡혀도 30년 이상 탈세를 한 수준의 벌금을 내고, 수익도 모두 몰수한다. 금융 범죄와 관련해서도 돈세탁 범죄자는 세무당국은 물론 재무부, FBI까지 나서서 추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탈세 후 적발되면 세금만 더 징수될 뿐 검찰조사를 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에 경종(警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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