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의해 국회의원으로 피선된 정치인의 소임은 명백하다.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 주민들의 삶을 보살펴 주고 걱정거리를 덜어주며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봉사하는데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정치는 지역구 주민들이 도리어 정치인들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뒤바뀌기 일쑤다.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에 파묻혀 의정을 파탄내고 국민을 불안케 한다. 최근 사례로 국가정보원의 박근혜 대통령 선거 개입 댓글 의혹과 국정원 국정조사 증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 정치인들의 졸렬한 행태를 들 수 있다.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 의혹과 관련, 국회 국정조사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증인 동행 명령장 발급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원 전 원장이 국정원의 선거개입 댓글을 지시했고 김 전 청장은 경찰의 댓글 수사를 축소은폐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은 그런 지시나 개입이 전혀 없었다고 부인하였다. 박 대통령도 7월 8일 “난 국정원에 빚진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새누리당은 원*김 두 사람에 대한 국정조사 동행 명령장 발급이 초법적 월권행위라고 거부하였다. 여기에 민주당은 “국정조사 거부”라며 길거리 장외투쟁으로 나섰다. 민주당은 8월 1일부터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 천막을 치고 민주당 최고위원회와 의원총회를 여는가 하면, 박근혜 정부 성토를 계속하며 촛불시위를 유도했다.
민주당은 4일엔 서울역 대합실에서 ‘역전 토크(대화)’를 열고 대정부 규탄 장외투쟁을 확산시켜 갔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국민과 함께 힘을 모아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결단하고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길 가던 시민들 중 ‘역전 토크’에 발언자로 나선 어느 시민은 민주당이 “잘못한 정도가 아니라 말아먹은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새누리당을 압박하기에 앞서 적지 않은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잘못한 것이 아니라 말아먹은 것”이라는 극언이 나올 정도였다. 실상 국회의원들이 장외투쟁에 나섰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회정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경제가 지극히 어려운 판국에 길거리 투쟁에 나서 민심을 흉흉케 한다는 것은 책임 있는 제1 야당으로서 해서는 아니 될 작태임이 틀림없다.
새누리당의 경직되고 오만한 자세도 국민을 실망시켰다는 데서는 민주당과 크게 다른 게 없다. 새누리당은 애당초 민주당의 주장대로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의 국정조사 동행 명령장 발급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새누리당의 판단대로 두 사람에게 책임이 없다면 그들이 국정조사에 나서서 떳떳하게 해명토록 했어야 옳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동행 명령장 발급을 탈법적이라며 그들을 끼고 돌았다. 의회정치의 기본인 타협과 절충을 거부한 오만하고 옹색하기 그지없는 짓이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 정국을 시끄럽게 흔든 뒤에야 두 사람의 동행명령 요구에 양보, 합의해줬다. 민주당에게 장외투쟁만이 새누리당을 꺾을 수 있다는 나쁜 선례만 남겨준 것이다. 이 또한 졸렬한 양보였다.
새누리당은 옹졸한 처신으로 민주당에 장외투쟁 빌미를 주었고 온 국민의 귀와 눈을 그쪽으로 집중케 했다. 그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역적 북방한계선(NLL)포기 발언을 장외투쟁 열기 속에 묻혀버리게 했다. 소탐대실(小貪大失)로서 작은 것을 탐내다 큰 것을 잃은 셈이다. 여야 정치권의 치졸한 정치공학을 지켜보며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나 정치인을 걱정해야 할지 한숨만 터져 나온다. 정치인들은 4류 정치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삶을 보살펴주며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헌신하는 공인(公人)이 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