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폭염에 지쳐있는 국민들을 더 열 받게 만들어 아예 돌아버리게 만들 심산인 것 같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 체제에 놓인 과제는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당내 계파 정치를 청산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런 김 대표가 당을 이끌고 거리로 뛰쳐나가 두 번씩이나 대규모 장외집회를 연데 이어 시민단체가 주최한 촛불집회에 소속의원 대부분을 참석시켜 장외투쟁의 외연을 확대했다.

비판여론이 컸던 정부의 세제 개편안을 고리로 중산층 넥타이 부대를 끌어들인다는 복안이 뚜렷해 보였다. 혁신을 다짐한 제1야당의 진정성과 절박함은 어느새 다 사라지고 투쟁 일변도의 모습으로 회귀해 있다. ‘대선 불복’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한 기색은 뱀 허물 벗듯 벗어 던지고 이젠 아예 ‘거리 정치’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이로써 정국 정상화는 쉽게 기대할 수 없게 됐고 한치 앞을 못 보는 여야 안개정국이 장기화 될 공산이다. 대치 국면이 장기화 되면 국정원 국정조사도 정상적인 진행이 어려울 판이고, 8월말까지 마무리 지어야 할 2012년도 결산안 실사도 내실 있는 심사는 기대 못할 형편이다. 이 상황에 새누리당이 민주당을 향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원외로 나선 거리 정치를 성토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정부의 세제개편안 문제는 강한 여론을 의식한 박근혜 대통령 지시로 백지화 상태에서 수정되긴 했으나, 분명한건 세제개편은 정부가 하는 게 아니다. 정부는 시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는 일로 그친다. 정부안을 토대로 세목과 세율을 조정하는 것과 세수 규모를 확정짓는 모든 권한이 국회의 몫이다. 국회 개원 이래 정부안이 수정되지 않고 원안대로 확정 된 적이 없다.

국정원 국정조사도 증인 채택 범위가 합의 돼있고 소환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렇게 실컷 합의 해놓고서 ‘대통령 하야’ 같은 거친 구호가 난무하는 집회에 결별을 선언했던 통합진보당과 나란히 나선 민주당이 대선불복 주장에 동참한 게 아니라고 하면 눈 감고 아웅하는 격이다. 시퍼런 날이 교차하는 정국에서도 여야 간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서로 지켜야 되는 최소한의 정치도의란 게 있는 법이다.

살얼음판 같은 여야 경색 국면이지만 국회 ‘입법활동비’와 ‘특별활동비’를 대폭 인상해 비과세 혜택의 ‘세금 꼼수’로 의원들 월급 불리는 데는 여야 모두 끽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김한길 대표는 취임 직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며 정당 민주주의 실천, 정책정당의 면모 강화, 새로운 인사 영입 등 세 가지 항목을 강조한바 있다.

그런 다짐이 장외거리정치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투쟁고리로 삼은 증세 문제가 대통령의 전면 재검토 지시의 수확을 이끌어낸 만큼 장외투쟁 명분은 약해진 상태다. 민주당이 수정 발표된 세제개편안마저 국회 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중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를 주장해온 민주당의 자기부정밖에 안 된다. 대안 없이 반대만 하다보면 민주당 자신이 보편적 복지를 향한 길을 스스로 차단하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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