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8월 8일 제시한 세법개편안을 놓고 이해 당사자들이 세금을 적게 내려고 추한 파워게임(힘겨루기)을 벌였다. 8·8 세법개편안에 대한 언론계·학계·민주당 등의 집중 공격 대상은 “월급쟁이”에 대한 세부담 증가다. “월급쟁이에 손 벌린 정부” “직장인 주머니만 털어” “중산·서민층에 세금폭탄” “부자만 올려라” 등 선동적인 어휘를 쏟아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8.8 세법개편안이 중산층 “세금 폭탄”은 아니고 복지확대를 위한 “중상위(中上位)층의 고통분담 방안”이라고 했다. 실상 연소득 4000만-5000만원의 중산층 근로자는 연간 16만원을 더 낼뿐이다. 한 달 1만3000원 추가 부담으로 한 여름 수박 한 통 값이다. 그에 반해 1억-1억1000만원 “중상위층”은 연간 125만원을 추가 부담한다. 연봉5000만원 근로자의 추가 세금이 수박 한 통 값이라면, 결코 “세금폭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반대론자들이 “중산·서민층 세금폭탄”이라고 들고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민주당은 국가재정이야 거덜나던말던 중산·서민층의 지지만 끌어내면 된다는 포률리즘(대중영합여론몰이)때문이다. 민주당은 당헌에도 “보편적 복지”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중상위층” 세금증대를 반대함으로써 복지재원 확보를 거부하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복지는 좋지만 내 돈으로는 안 된다”는 천민심리에 갇힌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일부 언론·학계 등 여론주도층의 떠들썩한 반대는 “세금폭탄”이란 충동적 구호에 휩쓸린데 기인했다. 그밖에도 그들은 “중산·서민층” 보호를 내걸어 “중상위” 내지 “고소득층”인 자신들에게 추가되는 세금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연봉 7000만~1억원을 상회하는 “중상위” 내지 고소득층에 속한다는 데서 그렇다. 8·8 개편안을 둘러싼 충돌은 복지공약에 묶인 박근혜 정부의 초조감과 민주당의 정치적 포퓰리즘과 여론주도층의 자기 보호를 위한 충동적 반응이 빚어낸 웃지 못할 소극(笑劇)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서민·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엷게 해선 안 된다”며 “원점에서 다시 재검토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8·8 개편안이 “세제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정상화 하려고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기재부는 박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에 따라 다음 날 수정안을 서둘러 내놓았다. 연봉 5000만~7000만원 근로자의 세부담 증가액을 원안의 연 16만원에서 2만~3만원으로 내렸다. 세금수입은 연 4400억원이나 줄어들었다. 그 돈은 다른 구석에서 끌어와야 한다.

박 대통령은 8·8 개편안이 비정상적인 부분을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면서도 민주당과 여론주도층의 압력에 밀렸다. 민주당의 장외투쟁과 수만명으로 불어난 촛불시위에 가위가 눌려 “재검토”로 물러선 건 아닌지 걱정된다. 5년 전 광우병 촛불시위에 무릎 꿇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무기력을 상기케 한다. 또한 민주당에게는 장외투쟁만이 박 대통령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만 불어넣어주었다. 좋지 않은 선례가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은 8.8 개편안을 발표하기 전 그리고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기 전 지하경제 색출 과세와 전문직 탈루세금 환수 방안 등을 먼저 내놓았어야 했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선 중산층-서민층도 세금을 형편에 따라 부담해야 하는 “보편적 세금체계”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이해시켰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죽음과 세금은 아무리 싫더라도 피할 수 없는 과정임을 주지시켰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흥분하는 여론에 가볍게 휘둘려서는 안되고 여론을 옳은 방향으로 당차게 끌고 가야 한다. 차제에 박 대통령의 소신과 뚝심 정치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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