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정부·공기업 인사폭 넓어진다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박근혜 대통령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나면서 청와대가 인적 쇄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작은 허태열 비서실장이 8월 사퇴하면서부터다. 이후 신임 비서실장으로 ‘7인회’ 멤버이자 공안통으로 유명한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이 들어왔다. 김 실장 입성 후 청와대, 감사원, 정부부처, 공기업 수장 등 깜짝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 청와대의 경우 지난 8월 29일 김선동 정무비서관과 서미경 문화체육비서관이 교체됐다. 양건 감사원장도 전격 사임했다. 그러나 인사 배경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카더라식’ 뒷말만 무성하다. 여권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제 시작’이라며 바짝 엎드려 있는 상황이다. 인사폭이 애초 예상보다 훨씬 넓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또한 이로 인해 청와대, 정부부처, 공기업, 재계까지 전방위 군기잡기도 본격화되고 있다.

-“청와대 김선동, 서미경 비서관급 5~6명 교체
-“靑 주재회의 낮술 먹고…” 정부·공기업 군기잡기

▲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및 정부 관계자와 회의전 애국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청와대 인사가 재차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인사는 있지만 그 사퇴 배경은 안갯속이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그렇고 최근 물러난 김선동 전 비서관과 서미경 전 비서관도 마찬가지다. 공통점은 ‘경질성 인사’라는 점이다. 허 전 비서실장은 윤창중 사태 처리 미흡서부터 검찰의 원세훈 국정원 사건 수사에 대해 선거법 유죄발표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설명도 나왔다. 검찰 수사가 박 대통령의 당선에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수사발표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허 전 실장이 인사 추천 시 3배수가 아닌 10배수 이상 인사를 박 대통령에게 올려 경질됐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최종 인사권자의 선택의 폭을 너무 넓게 만들어 박 대통령으로부터 쓴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허태열·김선동 ‘사퇴’ 숨겨진 비밀
김 전 비서관과 서 전 비서관 역시 경질 배경으로 ‘카더라식’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김 전 비서관은 친이 친박 정파를 넘어 실력과 인간성을 인정받는 드문 인사로 평가받았다. 때문에 이정현 정무수석이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길 당시 김 전 비서관이 수석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경질을 당해 여권 내에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게다가 새로 온 정무수석이 정치권 인사가 아닌 외교관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의혹어린 시선을 보냈다.

문제는 앞으로도 청와대 인사가 더 있을 것이라는 안팎의 시각이다. 특히 김선동 전 비서관 후임으로 검찰 출신 주광덕 전 의원이 내정되면서 인사 막후에 검찰총장에 법무부장관 출신인 김 비서실장이 주도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또한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청와대 비서관급 교체 대상으로 민정수석실, 홍보수석실, 국정기획수석, 교육문화수석실이 거론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청와대 안팎에서는 민정수석실에 L비서관, 홍보수석실에 B비서관, M수석이 교체될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돌고 있다.

청와대 인사 특징이 주말에 그것도 새벽에 내정자에게 전해졌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청와대에 정통한 여권의 한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인사 때마다 확인되지 않는 소문과 억측이 난무해 조용하게 처리하라고 특명을 내릴 정도”라며 “순차적으로 일주일 단위로 소리 없이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이 인사는 “청와대 비서관급뿐만 아니라 행정관 그리고 정부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까지 인사폭이 넓어질 예정”이라며 “아무래도 전 비서관과 손발을 맞춘 파견 공무원보다 새로운 인사들로 팀을 새롭게 짤 공산이 높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인사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이 바로 홍보수석실 교체다. 홍보수석실의 경우 ‘왕수석’으로 불리는 이정현 수석이 있다. 그런데 신임 김 비서실장이 홍보수석실까지 인사를 단행할 경우 자칫 청와대 내 신구파벌 다툼으로 번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왕실장’ ‘왕수석실’도 인사하나 ‘촉각’
이에 대해 여권 한 인사는 “어차피 경력으로나 연배 직책을 봐도 김 비서실장이 이 수석보다 높다”면서 “그동안 친박 핵심 실세로서 이 수석과 문고리 권력 3인방이 청와대 인사를 좌지우지해 왔지만 김 실장이 들어선 이상 누가 갑이고 을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인사만큼 확실한 게 없다”고 내다봤다. 세력 없이 들어온 김 실장이지만 박 대통령의 확실한 신뢰를 바탕으로 홍보수석실까지 인사를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설상가상으로 8월 28일 10대 재벌 총수와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만찬 일정이 문제가 됐다.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적극 돕겠다는 기업 총수들의 다짐을 받는 만찬자리였다. 하지만 회동을 가진 지 일주일도 채 안돼 조달청이 삼성, 엘지, 현대차 등 6대 재벌 총수와 10년간 담합해 수십조 원의 국민혈세를 부당이득으로 취했다는 의혹이 9월 4일 제기됐다.

청와대 비서실 측에선 언론이 몇 주에 걸쳐 취재를 하는 동안 관련 부서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만찬 일정을 잡아 재계 군기잡을 타이밍을 놓쳤다는 불만이다.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의혹이 제기된 이후 만나 박 대통령이 확실하게 재계 총수들의 군기를 잡을 절호의 기회였다는 때늦은 후회다.

청와대내 김 실장의 파워가 강해짐에 따라 이정현 수석은 집안 단도리에 나섰다. 단초는 박 대통령이 경남 거제를 방문했을 당시 김행 대변인이 선글라스를 끼고 수행해 논란이 일었을 때다. 수행한 사진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렸지만 이 수석이 일일이 읍소해 지면과 인터넷에 선글라스 낀 김 대변인 사진은 올라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이 수석은 홍보기획실, 대변인실, 국정홍보실, 춘추관장실 수석 산하 부서에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김 실장의 청와대 인사를 통해 군기를 잡고 이 수석 역시 집안 단속에 나서는 사이 8월31일에는 정부 고위 인사가 청와대 주재 회의에 ‘낮술’을 마시고 참석해 청와대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 자리는 한달에 2~3차례 청와대 경제 관련 수석이 주재하는 자리인데 관세청 심모 국장이 낮술을 마시고 참석해 물의를 빚었다. 이에 청와대에선 바로 관세청장에게 이를 알렸고 관세청장은 9월 2일 심 국장을 보직 해임시켰다. 특히 심 전 국장은 관세청 고위공무원 국장급 직위 중 최고의 요직으로 꼽히는 자리인데다 특히 관세청이 현재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불법 외환거래를 통한 역외탈세 차단 등 핵심 업무를 진두지휘하는 최고 실무책임자였다.

관세청 국장, 靑 주재회의 ‘낮술’먹고 참석
나아가 관세청은 공직기강 확립차원에서 심 전 국장의 잘못을 감싸는데 급급했던 하급자까지 보직 해임하는 등 강경처분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하급자는 감사관실로부터 음주 확인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 조사 때 '음주 사실이 없다'고 허위보고 하는 등 잘못된 동료애로 사건 당사자인 심모 국장과 함께 직위 해제됐다. 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 역시 김 비서실장이 들어오면서 청와대뿐만 아니라 정부부처, 재계에 이르기까지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판단하에 대표적인 군기잡기용 본보기로 꼽고 있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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