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조직 RO 실체 추적

▲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법원의 구인장을 집행하는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강제구인되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및 선동,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찬양 등 혐의로 지난 5일 오후 8시 30분쯤 수원구치소에 구속 수감 됐다.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28일 이 의원 등 내란죄 가담 혐의가 있는 통진당 당직자, 관련인사 10여명의 자택과 사무실 18곳을 압수수색한 지 8일 만이다. 현역 국회의원이 내란죄 관련 혐의로 구속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의원은 구속 상태에서 최장 30일 동안 국정원과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이석기 의원은 지난 5월 자신이 이끄는 경기동부연합 ‘혁명 조직(Revolution Organization, 이하 RO)’ 조직원 130여 명과 가진 비밀회합에서 통신·유류시설 등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모의하고 인명살상 방안을 협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해 3∼8월 RO 모임에서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과 북한 혁명가요인 혁명동지가, 적기가 등을 부른 혐의도 받고 있다.

이석기 의원 내란죄 관련 혐의로 구속

형법에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해진다’ 또 ‘이 같은 죄를 범하도록 선동하거나 선전한 자도 같은 형에 처해진다’라고 돼 있다. 이 의원은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 의원 변호인단도 “국정원이 주장하는 내란음모는 실질적인 위험성이 없고, RO 조직 자체가 실존하지 않는 조직인데다가 녹취록 또한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결국 구속 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수원구치소에 수감된 이 의원은 신분확인, 건강검진 절차를 거친 뒤 6.6㎡가량의 ‘소방’을 배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혁명 조직 실체가 있다? 없다?

이 의원에게 적용된 내란음모 및 선동,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찬양 등 혐의는 지난 5월 12일 ‘이석기 녹취록’이 작성된 서울 마포구의 비공개 RO 모임에서 한 발언이 결정적 증거가 됐다.
통합진보당에서는 이 모임에 대해 경기도당 위원장이 소집한 ‘당원 정세 강연’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시 모임에 참석한 김미희, 김재연, 이석기 의원 등과 130여 명의 참석자 대부분이 경기도당 당원과 경기도 지역 활동가라고 전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는 당시 모임을 당과 별개의 조직, 국정원이 칭하는 이른바 ‘RO의 비밀 회합’이었다고 보고 있다. 수사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정희 진보당 대표, 오병윤 의원, 이상규 의원 등도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되기 전까지 당시 모임 자체를 몰랐던 것 같다”고 전했다. 통합진보당 주장처럼 경기도당 위원장이 소집한 정세 강연이라면 당 공식 일정인데 지도부에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 
수사기관은 지난 2일 오전 국회에 제출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서 RO는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남한사회의 변혁운동을 전개하는 조직’이라고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총책으로 이 의원을 지목하고 있다.

RO, 경기지역 4대 권역으로 나눠 활동

지금까지 수사기관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RO는 경기 지역을 중서부·남부·동부·북부 등 4대 권역으로 나눠 활동하고 있는 조직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이 총책, 중서부 지휘책 홍순석 통진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남부 지휘책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동부 지휘책 조양원 CNP 그룹 대표이사, 북부 지휘책 김홍열 통진당 경기도당 위원장이 각각 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수사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홍순석씨와 이상호씨는 이미 지난달 30일 내란 음모,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조양원씨는 실질적인 자금책으로 의심받고 있다. 조씨는 ‘CN커뮤니케이션즈’ ‘사회동향연구소’ ‘길벗투어’ 등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각각 선거 홍보대행사, 정치 여론조사 업체, 여행사로 알려졌다. 이밖에 수사기관은 권역별 조직과 별도로 ‘중앙’ ‘청년’ 등 2개 팀도 운영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RO가 알려지면서 거론되고 있는 조직원들의 이력도 주목받고 있다. 먼저 이석기 의원은  1989년 반제청년동맹 중앙위원, 1992년 민족민주혁명당 경기남부위원장 등 활동이 문제 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 단체 구성죄로 실형을 선고 받았었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 특별사면 돼 결국 국회에 진입했다.
홍순석씨와 이상호씨는 ‘진보연대’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연대는 2007년 결성됐다. 진보연대는 2001년 ‘매향리 미군사격장 폐쇄 범국민대책위’, 2002년 ‘효순·미선양 범국민대책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등을 주도했다.
이 밖에 두 사람과 함께 구속된 한동근 전 통진당 수원시 위원장은 매향리 범대위 상황실장, 미군 장갑차 희생 여중생 범대위 농성단장 등으로 일했다. 지난 28일 압수 수색당한 이영춘 통진당 노동 부문 운영위원도 미군 장갑차 희생 미선·효순이 중앙실천단장 출신이다.
수사기관의 RO 수사와 함께 조직의 3대 강령과 5대 의무 내용도 알려졌다. RO는 3대 강령으로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아 남한사회 변혁운동 전개, 남한사회 자주·민주·통일 실현이 목적, 주체사상 심화·보급·전파를 3대 강령으로 내세우고 있다. 5대 의무로는 조직보위, 사상학습, 재정방조, 분공수행, 조직생활 등으로 알려졌다.

RO…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남한사회 변혁운동 전개
통진당… 동부연합 출신 이석기·이상규·김미희·김재연 의원 장악 

현재 수사기관과 통합진보당의 RO 존재여부에 대한 견해가 치열하게 대립되고 있지만 운동권 관계자들은 RO는 북한과 연계된 지하당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또 RO를 지도하는 상부 조직인 ‘지하당’의 존재 가능성도 지적하고 있다.
보통 종북세력 조직은 맨 위에 지하당, 다음으로 RO(혁명조직) 또는 ROM(혁명적대중조직), 맨 밑에 MO(대중조직)로 구성된다. 이 의원의 RO가 실존한다면 당연히 그 상위 조직인 지하당이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RO라는 용어 자체가 특정 조직 명칭이 아닌 지하당 위계 구조 속 중간 단계 조직을 부르는 용어인 만큼 이 의원의 조직을 가리키는 조직명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수사기관의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만 이 의원의 RO 조직의 상·하부 조직을 찾을 수 있다. 상·하부 조직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수사가 마무리 된다면 이 의원의 혐의 또한 제대로 입증할 수 없다.

경기동부연합 성남·용인 지역에서 활동

이 의원이 구속되면서 이 의원이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가 또 한 번 주목받고 있다. 82학번인 이 의원은 중국어통번역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는 ‘경기동부연합의 중심지’로 불린다. 경기동부연합 출신에는 이 의원이 졸업한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운동권 인사가 많다.
경기동부연합은 1991년 결성된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 전국조직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지역 조직이다. 이 조직은 당시 전국연합의 하부 조직 중 1980년대 후반 경기 성남·용인 지역에서 활동하던 학생운동권 세력의 뿌리다.
이정희 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와 의원단 상당수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통합진보당 소속의원 6명 중 이석기, 이상규, 김미희, 김재연 의원이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 알려졌다.
경기동부연합 구성원들은 2000년대 제도권 정치 참여를 목표로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에 대거 입당하며 정치세력화 했다.

통합진보당 “내란 모의 정황 없다”

통합진보당은 이 의원이 구속됨에 따라 RO의 실체를 부정하며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나섰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지난 4일 오전 국회 본청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원단 투쟁본부 회의’에서 ‘이석기 녹취록’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대표가 발표한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정원은 녹취록을 근거로 130여명의 ‘RO’ 조직원들이 내란을 모의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한 결과, 이들이 지하조직의 구성원들도 아니고, 녹취록 가운데 참가자들의 분반토론과 발표 부분은 실제 참가자 다수의 발언내용 및 인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내란을 모의했다고 볼 상황은 없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이 대표는 당시 모임에 대해 “올해 5월 10일과 12일, 경기도당 위원장이 임원들과 협의해 평소 경기도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본 당원들 130여명을 모아 한반도 정세 관련 강연과 토론 자리를 만든 것은 이미 본인이 밝힌 것과 같다”며 5월 모임이 RO 조직 모임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 밖에 녹취록 상 내란모임 지적에 대해 이 대표는 “녹취된 분반토론은 7개 조 가운데 1개 조, 130여명 가운데 20명가량의 대화에 지나지 않는다. 매수된 자가 수원에 사는 사람으로 경기남부권역 분반토론에만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머지 6개 분반, 110명가량이 한 말 하나하나가 무엇이었는지는 녹취록에 전혀 담겨 있지 않다”며 “이 모임에서 어떤 대화가 이루어졌는지, 이른바 ‘내란모의’의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각 분반에서 어떤 토론이 있었는지, 분반토론 발표 시 발표자가 자기 분반의 토론 내용을 제대로 전달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