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온라인’ 론칭…세계인을 사로잡다

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서른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글로벌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추구해 해외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조이맥스 엔터테인먼트’다.

우리나라 온라인게임의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앞지르고 있는 가운데 조이맥스는 처음부터 글로벌 서비스를 추구,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많은 중소 게임업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조이맥스는 2005년 MMORPG ‘실크로드 온라인’을 론칭하면서 대표적인 게임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또 2006년 실크로드 온라인 글로벌 서비스가 큰 성과를 일궈 연 매출 규모 200억 원에 가까운 업체로 발돋움했다.

2007년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중회의실에서 열린 '제3회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상 시상식'에서 중소기업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조이맥스 전찬웅 대표이사(왼쪽)가 시상자인 한국경제신문 주필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이맥스는 1997년 4월 설립돼 무려 16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중견업체 중 하나이다.

정찬웅 대표이사가 게임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캐나다 유학시절, 일본의 게임업체 닌텐도가 현지 그래픽 업체와 손을 잡고 설립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스쿨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향후 게임산업이 커질 것’이라는 막연함만으로 시작했지만 2년 동안 게임을 알아갈수록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1996년 졸업 후 그는 국내에서는 갈 만한 게임회사가 없어 고민하다가 캐나다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친구와 직접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그렇게 기획한 게임이 문화부 우수국산게임으로 뽑혀 1000만 원의 상금을 받게 됐고, 그것이 사업밑천이 됐다.

또 정보통신부 산하 서울소프트웨어지원센터 입주업체로 선정돼 공짜 사무실도 얻었다.
조이맥스의 첫 게임인 실시간전략(RTS) 게임 ‘파이널 오딧세이’는 무려 1년여의 개발 끝에 1999년 1월 출시됐다. 파이널 오딧세이는 보다 사실적인 효과를 내는 3D 랜더링 그래픽에 알파 블렌딩 방식의 반투명 스킬 이펙트, 강렬하고 화려한 사운드 효과를 자랑하는 리얼타임 전략 시뮬레이션게임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소규모 회사가 도저히 상용화하기 힘든 엄청난 볼륨의 게임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PC게임 판로는 패키지게임과 PC번들이 전부였는데, 놀랍게도 조이맥스는 RTS게임으로는 업계 최초로 파이널 오딧세이를 일본과 대만에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조이맥스는 정책자금도 받고 유통사에 개발비를 지원받기도 하면서 2000년 12월, 두 번째 RTS게임인 ‘아트록스’를 출시했다. 아트록스는 3종족이 균형 있게 등장하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멀티플레이가 지원되며 국내 기술로 아넷이라는 배틀넷 서버를 지원해 화제가 됐다. 당시 게임전문 케이블방송에서 지금의 스타크래프트처럼 ‘아트록스 프로리그’를 개최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많은 프로게이머를 배출해낸 국산 전략 시뮬레이션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온라인게임...해외시장 직접 공략 수출

아트록스로 해외 전시회에 참가한 후 중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폴란드 등지의 수출에도 성공했다. 당시 조이맥스의 수출 방식은 남달랐다. 게임사들이 퍼블리셔들에게 국내외 판권을 모두 주는 것과는 달리, 조이맥스는 사업초창기부터 해외 라이센스는 주지 않고 해외 시장을 직접 공략했다.
당시 아트록스는 조이맥스가 게임전문회사로 서서히 모양새를 갖추게 한 효자상품이었다. 다시 말해 아트록스로 인해 본격적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2001년 7월에는 애니메이션을 게임화한 ‘탱구와 울라숑’을 러시아에 수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말 경, 조이맥스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동안 게임들은 대부분 컴퓨터에 CD를 넣어 구동하는 패키지게임이었는데, 워낙 불법 복제가 기승을 부리면서 게임업체들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놓고도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대안은 복제가 불가능한 온라인게임뿐이었고, 시장이 사라졌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 대표는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게임(MMORPG)'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혼자 혹은 두세 명이 즐기던 고전롤플레잉게임과 달리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있는 RPG의 특성을 유지해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 그러면서 서로 대화도 나누고 아이템도 거래할 수 있어 단순히 시나리오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 대표는 게임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마케팅을 염두에 두고 게임네이밍은 물론이고 소재, 스토리 등을 해외 시장에 맞췄다. 그것은 나름의 근거가 있었는데, 아트록스를 수출하면서 게임이름을 설명하는 데도 많은 마케팅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예 네이밍부터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컨셉트로 잡았던 것이다.

조이맥스는 2002년 온라인게임 제작을 위한 구상에 들어갔다. 그렇게 직원들과 밤낮없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던 중, 비로소 ‘실크로드’라는 아이템이 등장했다. 전 대표는 점점 확신을 가지게 됐다. 실크로드라는 용어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익숙한데다가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게임이 진행될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다양한 문명을 녹여 넣을 수 있어 세계적인 게임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2003년 5월 조이맥스는 야후와 MMORPG ‘실크로드 온라인’ 퍼블리싱 계약을 성사시키기에 이르렀다.

글로벌 시장 겨냥...기반 구축

실크로드 온라인이라는 컨텐츠는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에 특화된 상품으로 개발됐다.
PC게임 전성기였던 2000년 이후 많은 국내 게임개발업체들이 향후 한국 게임시장의 변화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그 시기 대부분의 국내 개발사들이 온라인게임 개발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조이맥스 또한 그러한 시장 흐름을 간과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방향, 똑같은 색깔로 시장에서 경쟁을 하게 되리라는 것도 예상해야 했다.

일찍이 동남아와 유럽 등의 게임 수출로 게임시장은 국내뿐만 아니라 앞으로 세계로 더 크게 열릴 것임을 차기작 선정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 이에 단순히 상상만으로 게임세계를 만들어 내는 기존 온라인게임 세계관 형성 방식을 벗어나 좀 더 과감하며 자유롭고 유저들에게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온라인게임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주제를 연구하면서 다년간의 기획 끝에 동서문화 교류의 시발점이었던 실크로드를 온라인게임이라는 사이버 세상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조이맥스는 2005년 4월 실크로드 온라인의 국내 상용서비스를 개시하지만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상용화 오픈 시점에 맞추느라 무리하게 서비스를 개시한 것이 화근이었다. 실크로드 온라인은 결국 대작에 걸맞지 않는 초라한 성적에 그치고 말았다.

방대한 스케일의 실크로드 온라인은 소재 볼륨 면에서 ‘리니지’의 세 배쯤이나 되는 메머드 급이었다. 투자유치를 겨냥해 경쟁사의 온라인게임에 없는 요소들을 이것저것 넣다보니 엄청나게 방대해진 것이 문제가 됐던 것. 이 때문에 국내 시장 3위권을 노렸지만 결과는 10위권을 맴도는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전 대표는 꾸준히 업그레이드를 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낙담하지 않았다. 전 대표는 해외 시장을 집중 겨냥해 해외 유저들의 요구사항을 집중적으로 개선해 나갔다.

이런 와중에 조이맥스에 엄청난 행운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KIPA)이 추진한 ‘온라인게임 테스트베드’시범사업이었다. 온라인게임 테스트베드는 전 세계 유저들이 직접 국산 게임을 체엄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만든 일종의 한국 온라인게임 포털사이트였다.
2005년 12월 조이맥스 직원들은 KIPA의 테스트베드가 오픈하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십여 개의 국산 게임이 테스트베드에 올려졌지만 실크로드 온라인에만 전 세계 유저들의 접속이 폭주했던 것이다.

게임업계의 혁신...전세계 유통망 갖춰

최근 국내 메이저게임사들이 앞 다투어 실크로드 온라인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은 매출구도가 기존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방식대로 해외 현지에 서비스할 경우 서버는 물론 유저 DB가 현지에 있어야 하고, 당연히 인력도 오프라인 공간도 있어야만 했다. 반면 실크로드 온라인은 전 세계 150개국 1500만 명의 유저들이 모두 광화문으로 몰려오고, 모든 고객 DB또한 서울에 있는 것이다.
실크로드 온라인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10만 명에 이르는 동시접속자수에 있다. 보통 동시접속자수는 유저들이 몰리는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즉 피크타임 때의 접속건수를 말하는데, 대개 낮 시간대에는 서버가 텅 비게 된다.

반면 실크로드 온라인의 글로벌 서비스 동시접속자수 10만 명은 24시간 내내 지속되는 숫자다. 다시 말해서 24시간 내내 피크타임인 셈이다. 국내 이용자들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유저가 이용하기 때문에 동시접속자수는 24시간 내내 10만 명으로 똑같은 것이다.
실크로드 온라인 게임서버는 낮에는 텅 비고, 밤 시간대에 몰리는 피크타임 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150개국 1500만 명의 유저들이 구매하는 ‘실크로드’ 아이템 결제금액은 24시간 쉼 없이 결제돼 통장에 자동으로 입금된다.

유지관리 측면에서도 조이맥스의 방식이 유리하다. 국내 다른 게임 업체들의 경우, 해외 진출시 각 나라마다 서버를 관리해야 하고, 또 각 나라 유저들의 취향에 맞게 게임을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해야 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한다. 유지관리비가 고정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조이맥스는 2004년 5월 우량기술 및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선정됐다. 실크로드 온라인의 개발이 완료된 2005년부터 국내를 비롯한 일본, 중국, 대만의 상용서비스를 제공했고 2006년 3월에는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2006년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그해 말에는 실크로드 온라인이 200여 개국 1500만 유저 가입을 돌파했다. 또 전 세계인이 즐기는 글로벌 게임포털 ‘joymax. com'을 구축함으로써 전 세계 유통망을 갖춘 명실상부한 글로벌 퍼블리셔로 전진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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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수진 기자>
<출처=대한민국 초우량 기업10 │김경준·국제경영원 지음│원앤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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