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찾아가보니…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올해는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60년이 되는 해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해 3년 1개월간 계속됐다. 민족통일을 표방한 전쟁이었지만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켰다. 결국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었고 전쟁으로 수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최근 남북 정부는 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선언해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 당시 사망한 국군들의 유해는 아직도 한반도 땅 속에 묻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000년 시작된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사업
유해발굴부대 갖춘 나라는 미국과 우리나라뿐 

한국전쟁 기간 중 전사한 군인은 국군 13만7000여 명, 유엔군 4만여 명으로 알려졌다. 민간인 사망자는 9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전사한 국군 모두가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전쟁터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했음에도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 호국영령은 13만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남과 북으로 나뉜 한반도 곳곳에 묻혀 잠들어 있다.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인 2000년 시작됐다. 당시에는 국무총리령으로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007년 사업이 육군본부에서 국방부로 이관되면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됐다.
유해발굴감식단은 미국의 합동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    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 JPAC)를 벤치마킹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미국은 영토 내에서 전쟁을 치른 적이 없는 나라로 모든 유해발굴 업무가 해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래서 유해발굴감식단은 부대 창설 후에도 조직과 시스템을 여러 차례 바꾸면서 우리에게 맞는 스타일로 발전해 왔다.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부대 창설 이후 국방부는 유가족들이 살아있는 동안 하루라도 빨리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2009년부터 전사자 유해 발굴 활성화 대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8400여 구의 유해를 발굴했으며 그 중 국군 전사자 유해는 7300여 구에 이른다. 이중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83명이다.
현재 유해발굴감식단은 약 200여명의 인력으로 구성 돼 있다. 감식단은 조사과, 발굴과, 감식과, 계획과, 지원과 등 총 5개 과로 나뉘어져 있다. 조사과는 전사연구를 통해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조사하고 있으며 발굴과는 유해발굴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감식과는 유해 감식부터 유가족 채혈, 유해 관리, 유품 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계획과는 유해발굴사업과 관련한 행사와 홍보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지원과는 유해 안장업무를 맡고 있다.

비례삼불 귀가국선
정신으로 호국영령 찾는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자리 잡고 있다.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호국영령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해발굴감식단 유차영 단장은 “유해발굴사업은 비례삼불(非禮三不) 귀가국선(歸家國宣)의 철학적 기조 아래 경건하고 엄숙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비례삼불은 비례불사(非禮不思), 비례불촉(非禮不觸), 비례부동(非禮不動)이며, 경건한 예의범절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는 생각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며 옮기지도 말라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또 “귀가국선은 이러한 경건한 예의와 절차를 갖춰 발굴한 유해는 그토록 그리던 가족의 품에 안겨드린 후, 이를 국가의 이름으로 모시고 선양해야 한다는 철학적 근저다”라고 말했다.
유 단장은 “감식단 단원들에게 항상 경건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며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그분들의 ‘멀고 먼 외로운 여행을 종결지어 드리는 일’인 만큼 온 마음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해발굴감식단에도 어려움은 있다. 바로 유가족 DNA 샘플 채취와 현장보존 문제다. 정전이 된 지 60년이 된 만큼 국군 유가족들은 대부분 고령이거나 사망한 경우가 많다. 살아있다면 DNA 채취가 가능하지만 유가족이 고인이 됐다면 DNA 채취는 불가능하다.
다행인 점은 DNA 채취에 대한 기술적 진보로 부모와 자식이 아닌 친척인 경우도 DNA를 채취해 가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 단장은 인터뷰 내내 한국전쟁 유가족들의 DNA 채취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유 단장은 “DNA를 채취하는 과정도 어렵지 않다. 과거에는 채혈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입안의 체액만 으로도 분석이 가능하다. 가까운 보건소에서 무료로 DNA를 채취할 수 있으니 꼭 들러서 검사할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또 유 단장은 “유해발굴에 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현장 제보다. 감식단 조사과에서 다양한 전쟁사를 연구 분석해 유해발굴 장소를 선정하고 있지만 세월이 오래 지난만큼 지역을 찾기가 쉽지 않고 지형이 변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오히려 쉽게 유해가 묻혀 있는 현장을 찾을 수 있다”며 “유해가 묻힌 현장을 발견하면 즉시 가까운 군부대나 1577-5625번으로 제보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유해발굴감식단 활동은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하반기 활동은 지난 2일 시작됐다. 현재 강원도 인제, 홍천, 양구, 화천 및 경기도 가평, 파주 등지에서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유 단장은 “유해발굴감식단 활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해발굴을 위해서는 한국전쟁사는 물론 고고학, 유전학, 감식학 등에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며 “그래서 유해발굴감식단에서는 유해발굴에 참여하는 군부대에 수시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낙동강 방어선 일대에 잠든
호국영령이 가장 많다”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 13만여 명의 호국영령이 가장 많이 잠들어 있는 곳은 어디일까. 유 대령은 “낙동강 방어선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은 6월 25일 불법남침을 시작으로 7월에 낙동강을 도하해 대구와 부산을 잇는 아군의 대동맥을 끊으려고 압박을 가해 왔다. 미군과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북한군의 공격에 대한 최후의 방어선으로 정하고 낙동강과 그 상류 동북부의 산악지대를 잇는 천연장애물을 이용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낙동강 방어선은 남북 160km, 동서 80km의 타원형을 이루었는데 낙동강 일대의 방어는 주로 미군이, 동북부 산악지대의 방어는 국군이 담당했다. 북한군은 수안보에 전선사령부를 두고 8월과 9월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해 왔다. 당시 대구, 영천, 동해안지구 등에서 공방전이 진행됐고 국군과 미군의 목숨 건 싸움으로 북한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으며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유 대령은 “낙동강 방어선은 지금의 칠곡, 왜관이 포함돼 있던 지역이다. 특히 다부동전투에서는 하루에 10회 이상의 고지전이 진행돼 사상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밖에 유 대령에 따르면 “백마고지, 펀치볼 등에도 많은 국군이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해 발굴과 감식 기술은 세계 최고

유해발굴감식단은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과 함께 유해발굴기술의 해외 전파에도 노력하고 있다. 감식단은 지난해 리비아에 감식인력을 파견해 리비아의 유해발굴을 돕고 있다. 인력은 10명 내외로 조사, 발굴, 감식, 통역 인력 등으로 구성됐다. 이와 함께 증거물 분석시설 및 장비도 지원하고 있으며 리비아 관련자 유족들의 DNA를 한국으로 보내와 검사하는 것도 돕고 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이 활동을 통해 리비아에 인력교육을 통한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벨기에군 유해발굴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해각서에 따라 우리나라는 벨기에군 전사자 유해를 찾기 위해 벨기에 유가족의 유전자 표본을 채취·분석한다.
그 결과를 한국전쟁 전사자 DNA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 그동안 발굴됐거나 앞으로 발굴되는 유해와 비교해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주한 벨기에 무관이 2011년 9월 유엔군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유단을 방문, 한국의 전사자 유해발굴과 신원확인 시스템에 관심을 표명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벨기에는 보병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다. 1951년 1월부터 1955년 6월까지 총 3500여 명이 파병되어 임진강(설마리), 철원(학당리), 김화(잣골) 전투 등에 참가해 전사 104명, 부상 349명, 실종 10명 등의 피해가 났다.
이 밖에 유해발굴감식단은 유해발굴 관련 기술 및 노하우에 대한 국제인증기준(ISO)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유해발굴을 위한 체계화된 조직을 갖춘 나라는 미국과 우리나라밖에 없는 만큼 국제인증기준을 획득하면 내년에 만들어질 유해발굴 관련 국제협회에서 우리나라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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