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여야 합의로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 입법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데서 악법이다. 선진화법은 ‘망국 법’, ‘식물 국회법’, ‘소수당 횡포법’ 등 이라고 조롱된다.
이 법은 작년 18대 국회 임기 말 다수당인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합작해 낸 산물이다. 새누리당에선 황우여 원내대표와 소장 쇄신파가 ‘식물 국회법’을 주도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당을 이끌었다. 최경환 원내대표가 이 법 개정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하자, 황 대표는 25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황 대표는 개정 반대로 당내 갈등을 조장할 게 아니라 ‘소수당 횡포법’을 주도한 채임을 통감하고 하루빨리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망국 법’을 고쳐야 할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 선진화법은 쟁점법안의 본회의 상정 및 단독 처리 기준을 종래의 의석 과반수(150석)에서 5분의 3(180석)으로 높였다. 집권 새누리당은 19대 국회에 들어와 과반수인 153석을 확보했으면서도 180석에 미치지 못해 단독으로 쟁점법안을 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 선진화법은 민주주의 근간인 다수결 원칙을 죽였다.
60% 이상의 찬성 규정은 우리나라 헌법 49조 정신에 위배된다. ‘국회는 헌법 또는 벌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명시하였다. 물론 국회가 선진화법을 법률로 정하여 5분의 3 규정을 두었으므로 법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헌법의 보편적인 ‘과반수 찬성’ 정신을 벗어난 독소 조항임이 틀림없다. 선진화법은 멀쩡했던 입법부를 불구로 주저앉혔다.
둘째, 선진화법의 본래 입법 취지는 의원들의 몸싸움을 방지하기 위한 데 있다. ‘몸싸움 방지법’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몸싸움을 방지하기 위한 처벌 규정은 솜방망이로 그쳤다. 국회 개회 중 의장석·위원장석을 점거하거나 의원 출입을 막는 등 폭력을 행사할 경우 3개월 출석정지 또는 세비와 활동비 절반 혹은 전액 삭감 정도로 끝난다. 프랑스 국회는 의원 징계를 심사하는 본회의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의장이 검찰총장에게 제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의사당 내에서 폭력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솜방망이 몸싸움 방지 규제로는 ‘깡패 국회’로 이름난 대한민국 국회의 고질적 폭력을 막을 수 없다. 처벌 규정이 다른 나라 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 소수당의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 도리어 소수당이 통째로 국회를 마비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만 마련해 주었다. 빈대를 잡는다며 초가삼간을 태운 격이나 다름없다.
셋째, 선진화법은 공청회 한 번 없이 처리되었다. 더욱이 선진화법은 19대 국회부터 적용토록 되었으므로 18대 국회 임기 말에 서둘러 처리되지 말았어야 했다. 19대 국회에 들어와 시간을 갖고 공청회에 부치는 등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 뒤 처리되었어야 옳았다. 서둔 탓에 선진화법은 ‘망국 법’이 되었다.
실상 작년 4월 선진화법이 통과되기 전 정의화 국회의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적지 않은 새누리당 의원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정 의장 직무대행은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국회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다”며 “문제점을 보완한 수정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두 원내대표들은 “여야가 합의한 법안의 수정은 어렵다”며 거부했다.
선진화법은 애당초 반대여론이 많았고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았으며 국회를 식물로 주저앉혔다는 데서 그대로 둘 수 없다. 악법은 반드시 폐기 또는 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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