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수준 저가 칩 사용…사고 순간 안 찍혀

[일요서울|박시은 기자]량 구매 시 필수 옵션처럼 된 블랙박스와 관련된 소비자 불만이 해마다 두 배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설치한 블랙박스가 ‘불량품’인 것으로 확인돼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 하지만 아직까지 불량 제품을 제대로 걸러내고 처벌할 수 있는 객관적인 품질 인증 기준도, 법적 제재도 없어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다. 특히 중국산 불량 블랙박스로 인한 피해 사례가 많아 구입 전에 품질, AS 여부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사례 1. 홈쇼핑 광고를 보고 P사의 블랙박스를 구매한 주부 A씨. A씨는 “접촉사고가 발생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려던 순간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A씨는 블랙박스를 장착한 지 하루 만에 터치 버튼 오작동이 발생해 기기교체를 받았다. 하지만 이틀 뒤 또다시 같은 문제가 발생했고, ‘우선은 지켜보자’는 마음에 블랙박스를 그대로 달아두던 차에 사고가 발생했다. 상대방 운전자가 책임을 뒤집어씌우려고 하자 억울했던 A씨는 보험사 직원 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영상을 틀었지만 사고 직전까지의 영상만 존재했다. A씨는 “6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주고 산 기계가 제값을 하지도 못하고, 금전적인 손해까지 입힐 줄 몰랐다”며 “다른 사람들은 절대 이 물건을 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성토했다.

#사례 2. B씨 역시 블랙박스 영상으로 인한 피해를 봤다. 그는 간밤에 사이드미러가 파손돼 있자 블랙박스 영상으로 범인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야간에 촬영된 영상 화질로는 범인의 얼굴을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어 망연자실했다. B씨는 “영상 속 범인의 얼굴이 흐릿한 정도를 넘어서 거의 뭉개져 있었다”며 “과거의 캠코더를 연상하게 하는 화질을 보면서 범인이 찍혔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기준 미달 제품 대부분 ‘중국산’ 많아…주의 당부
유닉스 ‘레오’·이시윅스 ‘에셜론R02’…품질 하위권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블랙박스 중 교통사고 원인 규명이라는 제 역할을 이행하지 못하는 ‘불량’ 제품이 있는가 하면 앞뒤, 좌우로 지나가는 차량번호 식별조차 어려운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원으로 접수된 블랙박스 관련 상담은 지난해 2355건으로 2011년 1100건에 비해 2배 넘게 늘어났다. 이 중 블랙박스의 오작동 등 품질에 관한 상담이 811건으로 34.4%를 차지했다.

또 시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블랙박스 제품 중 11개 제품이 모두 KS(전자파 적합등록) 규격 기준 26가지를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에 위탁 생산하거나 제조된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재 차량용 블랙박스는 방송통신위원회 전파연구소의 KC 인증 의무 대상 제품이다.

품질 하위권을 기록한 제품 중 ▲유닉스의 레오 ▲이시웍스의 에셜론R02은 중국에서 제조된 10만 원 내외의 저가형 제품이다. 또 ▲에셜론R02는 국내 유통 블랙박스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KS인증 표시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영상 입력 화소 기준인 90만 화소에 한참을 못 미친 35만 화소의 제품도 있었다. 10m 이상 거리면 식별이 불가능한 수준의 촬영 기능인 것. 주야간 모두 차량번호판을 식별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또 전후방 일체형 블랙박스의 경우 전후방 카메라의 해상도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를 속여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행위도 있었다. 보통 전방이 해상도가 높은 편이며 후방은 전방보다 낮다.

현재 블랙박스는 운전 도중 가벼운 접촉사고나 대형 사고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수단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영업용 택시, 119 구급차량 등에 대한 블랙박스 장착 의무화 추진 및 보험혜택에 따른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시중에는 300종이 넘는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또 지난해 말 기준 150만 대 이상의 차량에 블랙박스가 장착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해상도라는 광고만 믿고 덜컥 비싼 블랙박스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막상 사고가 났을 때 제품을 이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꼼꼼한 확인 품질관리 제도 필요

한 블랙박스 매장 관계자는 “중국산 제품들은 ‘저장 칩’ 부분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장된 칩은 압축되지 않은 상태의 큰 용량 영상을 압축시켜 메모리에 저장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과거 몰래카메라나 저가형 카메라에 쓰는 칩을 블랙박스용으로 개념만 바꿔서 쓰는 경우가 많다”며 “블랙박스용 렌즈는 어두운 곳에서 사용하는 제품들로 가격이 비싸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피해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블랙박스의 품질을 보장해 줄 제도가 없어 불량 블랙박스에 속는 소비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블랙박스 제품 성능 인증 제도를 도입해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블랙박스를 살 때 ▲카메라에 실제 저장되는 화소 수 ▲야간 촬영 가능 여부 ▲완전 방전 방지 기능 유무 ▲80도 이상의 고온에서 작동이 가능한지 등을 확인한 후 구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올여름과 같이 3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지속될 때 화질 저하 및 메모리카드 장애가 발생하기 쉬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시복 자동차부품연구원 스마트자동차기술연구센터장은 “블랙박스는 제품 설명만으로는 성능을 추정하기 어렵다”며 “사용 전까지는 문제점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에 인터넷 등에서 기존에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 평가를 참고해 구매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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