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자금조달 빨간불 켜졌다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가뜩이나 어렵던 회사채 시장에 동양그룹 사태의 후폭풍까지 겹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최근 순발행을 이어간 회사채는 적어도 ‘AA-’ 등급 이상이다. 그 아래인 A등급이나 BBB등급 이하 회사채는 계속해서 순상환의 굴욕을 맛보고 있다. 이처럼 안전한 쪽에만 수요가 몰리는 현상이 지속되면 일부 상위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 기업들의 자금조달에는 적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ㆍSK E&S 웃고 두산건설 울어
밀려난 비우량기업들 유동성 위기 우려돼

작금의 회사채 시장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만큼 갈림이 뚜렷한 이 현상은 이미 미매각 물량이 산적한 데다 국고채 금리 인하의 영향과 동양그룹 사태의 후폭풍까지 더해지면서 극을 달렸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AA-등급 이상 회사채 발행잔액은 지난 5일 기준 122조 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A등급 이하 회사채의 발행잔액은 52조3400억 원으로 동양그룹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8월 초 53조 원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또 금융위원회에 의하면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AA-등급 이상 회사채는 총 14조6727억 원 순발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A등급 회사채는 총 1조2402억 원, BBB+등급 이하 회사채는 총 2조727억 원씩 각각 순상환되는 양상을 보였다.

동양에 덴 투자자들
‘BBB’ 등급 외면

세부적으로는 AAA등급인 포스코가 지난 4일 7000억 원, AA+등급인 SK E&S는 3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A0등급인 태영건설은 300억 원 중 200억 원의 물량을 기관에 매각했으나 같은 A0등급인 롯데건설은 상대적으로 미매각 물량이 많았다. 이처럼 A등급 사이에서도 결과가 갈린 것은 STX그룹 위기의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BBB+등급부터는 미매각은 물론 몸값도 우수수 떨어졌다. BBB+등급인 두산건설 72-3회는 액면가 1만 원권 기준으로 지난달 29일 평균 1만158원에서 지난 8일 9270원까지 급락했다. 열흘 새 8%가 떨어진 것이다.

이처럼 BBB+등급 이하는 대부분 동양그룹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대형증권사들의 경우 투자부적격(투기) 등급으로 분류되는 BB+등급 이하 채권의 개인고객 판매가 중단되면서 자금조달은 더욱 위축되는 상황이다.

김민정 대우증권 연구원은 “이전부터 어려웠던 자금조달에 동양 사태가 찬물을 끼얹은 꼴”이라며 “그간 웅진, STX 등으로 손실을 본 데다 동양 사태까지 겹친 만큼 당분간 투자수요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고수익채권이나 하이일드채권 쪽에 획기적인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소매채권시장이 계속 위축되는 상태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이 상태가 고착화되면 소매채권시장은 메리트 없는 시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투자심리 축소돼도
‘가진 자’는 변동 없어

반면 우량등급 회사채들은 여전히 물량을 소화하는 것으로 보아 회사채 시장에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우세하다. 동양그룹 사태가 회사채 신용위험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한 것은 맞지만 상위등급에까지 그 파장이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김수양 KB투자증권 연구원은 “회사채 발행 시장이 다시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으나 상위등급 회사채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다만 하위등급 회사채의 경우 신용 스프레드가 확산되고, 상위등급과 하위등급 간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존재해 이에 대한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동양그룹 사태가 회사채 시장에 미친 영향이 생각보다 적은 이유를 제시했다. 그는 “FOMC 이후 시장금리 변동성이 확대되며 수요예측 결과가 다소 부진한 상황”이라며 “이를 동양그룹 이슈와 연관 짓기보다는 금리 변동에 따른 회사채 가격 메리트 하락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김 연구원은 이번 동양그룹 사태와 앞서 웅진그룹 사태가 회사채 시장에 끼친 파장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웅진그룹의 경우 당시 전반적인 시장금리가 하락 기조였기 때문에 계열 신용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증가했으나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는 제한적이었다”면서 “하지만 동양그룹 이슈는 금리 상승기에 발생해 하위등급 회사채의 투자 매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짚었다.

금융감독원도 동양그룹 사태가 회사채 시장에 미친 영향을 제한적으로 보는 견해를 밝혔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8일 “현재까지는 동양그룹 사태가 기업자금 시장과 금융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한정돼 있다”는 의견을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보고했다.

금감원은 지난 7월 회사채 시장 정부대책을 발표한 이후 회사채 금리가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큰 변동은 없다고 평가했다. 다만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 추세가 지속되면서 동양그룹 사태로 빚어진 투자심리 축소로 비우량기업들의 자금조달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그간 동양과 같은 비우량 회사채는 대부분 기관이 아닌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소화됐다”면서 “개인투자자의 투자심리가 위축되면 비우량기업들의 자금조달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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