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초기의 여야 정쟁이 이토록 심각했던 적이 없다. 10년 만에 보수정권을 탈환했던 이명박 정부 초기는 광우병 촛불 정국기세가 보수 새 정권의 기를 있는대로 죽여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 올라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영-포 라인’으로 지칭된 일부 MB 측근 세력들의 위세 빼놓고는 정권 울타리가 날카롭게 야권과 각을 세우지 못했다.
충분히 기가 산 정권이었으면 박근혜 대통령 말대로 전두환 일가의 추징금 떼먹기 위한 재산 은닉사실을 덮어 두지도 않았을 터이고, NLL 대화록 사초에 대한 진실도 벌써 드러났을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고새면 무슨 무슨 위원회니 해서 수백 개의 장관급 자리를 만들어 온갖 선거공신들을 기용하면서 했던 말이 정권과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그 유명한 ‘코-드 인사론’이었다.
이를 기화로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모든 공기관이 자신들 입맛대로 인사 문제를 전횡한 사실이 당시 초등학교 입학생이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정도의 기억 생생한 지난 일에 불과하다. 그때 그런 전횡을 즐겼던 사람들이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철학 공유’ 발언을 무참하게 공격하고 있다. 나는 로맨스이고 너는 불륜이라는 식이다. 국민 판단은 안중에 없다.
인선 절차가 진행될 때는 내정설로 흔들고, 자리가 정해지고 나면 낙하산 논란으로 하마평에 올랐던 사람들 자존심을 긁어대고, 해당 노조를 움직여 출근저지 투쟁에 나서도록 만드는 게 그들 목표로 보인다. 잘나갈 때 해먹고 죄진 일이 밝혀져 검찰이 부르면 ‘정치검찰’로 공격하고 검찰판단이 자신들 진영논리에 부합하면 그 즉시 ‘신뢰검찰’로 치켜세우는 작태가 치졸하다는 말로 부족하다.
최근 혼외자식 논란으로 코너에 몰린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음모론’을 주장하자 야권이 일제히 비호에 나선 것은 그가 자기들 편이라는 이상한 판단에서였다. 채 전 총장 지휘로 검찰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혐의를 기소해서 정권에 밉보였다는 공학적 주장을 펴고, 검찰 길들이기라며 의혹을 의혹으로 받아쳐서 길길이 뛰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던 전모가 속속 드러나면서부터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돼버렸다. 그만큼 흥분했으면 쏟아낼 말이 없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법원이 비리혐의에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하면 사법정의가 살아있다고 치켜세우고 범죄증거를 받아들여 유죄선고하면 쳐 죽일 재판부로 난도질하며 야당탄압 주장하는 얼굴표정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이렇게 법치가 갈등으로 점화되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그때 시절이나 지금 시절이나 정치는 동색으로 덧칠되고 변한 것은 각각 여당시절 논리, 야당시절 논리가 정반대라는 점뿐이다.
NLL 사초(史草)폐기 같은 역사적 범죄가 법치를 농락하고 갈등으로 불을 지피는 과정이 기막힌 마술 같다. 노무현 정권의 대통령 실장이었던 문재인 의원이 “분명히 회담록을 국가기록원에 넘겼다”고 수차례나 주장한 것은 법률전문가인 문 의원도 국가기록원에 반드시 회담록이 존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 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타난 진실이 국가기록원에는 회담록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민주당이 국민 지지를 끌어올릴 방법이 투쟁이겠는가. 국민갈등을 최소화하는 문제에 매달려야 되는 것이다. 부도덕과 범법판단에는 선부터 그을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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