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2014 회계연도 예산안 합의 에 실패함으로써 연방정부는 10월 1일부터 잠정 폐쇄(셧다운·shutdown)에 돌입했다. 연방정부가 셧다운 됨에 따라 1일부터 군인·경찰·소방·우편 등 핵심 서비스에 종사하는 필수인력을 제외하고는 모든 연방 공무원들이 무급 휴가에 들어갔다. 무려 80여만 명에 달한다. 국세청의 납세 서비스, 재무부의 중소기업 대출업무, 저소득층 자녀 무료급식 등도 중단됐다. 하루 연방정부의 손실액은 3억 달러로 추산된다.
연방정부 셧다운은 18번째이고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5년 말~1996년 초 이후 17년 만이다. 클린턴 때 연방정부 셧다운은 21일간 지속됐다. 이번 셧다운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소속의 진보적 민주당과 야당인 보수적 공화당의 힘겨루기로 빚어졌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 시행을 늦추지 않으면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켜줄 수 없다고 버텼다. 오바마케어는 2010년 3월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시켰다.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을 때였다.
이 법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5000만 명에 달하는 빈곤층 미가입자들에게 의료비 혜택을 주고 저소득층에게도 보험료를 보조해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공화당은 오바마케어가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뜯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며 반대했다.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된다는 보수논리에 입각한 것이다.
미 연방정부의 위기는 셧다운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심각성이 더 크다. 공화당은 대통령이 오바마케어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연방정부의 부채상한선을 절대 연장시켜주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연방정부의 부채는 17일로 상한선에 이르게 된다. 공화당이 부채 상한선을 상향 조정해 주지 않으면 연방정부는 빚을 더 낼 수 없으므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채무불이행(디폴트·default)에 이르게 된다. 만약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게 된다면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보다 더 무서운 금융위기로 치닫게 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연방정부 셧다운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보 없는 대결에 기인한다. 지난날의 셧다운들은 단순히 두 당이 연방정부 예산 집행을 둘러싼 의견대립에서 빚어졌다. 그러나 올 셧다운은 예산 문제가 아니라 오바마케어에 대한 양당의 정책 대결에 연유한다. 공화당이 오바마케어를 죽이기 위해 예산문제를 무기로 삼은 것이다. 그에 맞서 민주당은 연방정부 셧다운을 감수하며 오바마케어를 계획대로 관철시키려 버티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당리당략(黨利黨略)만을 위해 연방정부 예산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미국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10월7일자 보도에 의하면, 공화당 내 강경파는 올 1월 오바마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예산안을 볼모로 삼아 오바마케어를 무력화시키려는 전략을 치밀하게 짜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 연방정부 예산을 당리당략의 도구로 잡은 것이다. 미국 의회정치의 특징은 나라가 어려울 때 민주·공화 양당이 초당적 정신을 발휘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는 데 있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그런 정신은 간데없다. 오직 당리당략만이 설칠 뿐이다. 미국 의회정치에 적신호가 켜졌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1863년 미국정부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 의회는 ‘국민’ 대신 “당리의 당리에 의한 당리를 위한” 후진국 정치로 후퇴했다는 인상을 금치 못하게 한다. 미 의회정치를 모방하는 한국을 비롯한 신생 자유민주국가 정치인들이 본받을까 두렵다. 그러나 미 의회가 지난 220여 년 동안 개인이나 정당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입법기관으로 기여해 왔음을 상기할 때 자멸로 치닫지는 않을 듯싶다. ‘국민을 위해’ 미국 특유의 타협정신을 발휘,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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