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미사일 핵심 부품 북한에 은밀히 제공”

 

“방송사들 방송장비 지원 명목으로 첨단 반도체 지원 정황”
방송개혁시민연대·전직 방송사 간부 관련 문건 제시

국내 방송사들이 북한에 핵미사일 핵심 부품을 은밀히 제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방송개혁시민연대와 전직 방송사 간부였던 A씨는 “국내 방송사들이 방송장비 지원 명목으로 북한에 방송차량 카메라 등을 제공했으며, 이 과정에서 각종 첨단 반도체가 북한으로 넘어간 정황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관련 문건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정원이 방송사의 대북방송장비 지원을 빙자한 미사일 부품 지원을 조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국정원 주변에서는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 이후 친북 종북 사건을 추가로 조사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계속 나오고 있어 소문에 무게를 싣고 있다. 더구나 이 문건 내용을 살펴보면 군사무기 전문가의 견해와 미사일 기지에서 근무했던 탈북자의 내용도 담겨 있어 국정원이 실제로 조사에 나설지 주목된다.


이 문건에 따르면 대북 방송장비 지원을 명목으로 북에 넘어간 반도체는 대부분 북한의 미사일 개발 핵심 부품으로 사용됐다는 게 이 문건의 핵심 내용이다. 문제는 이 반도체들이 북한 핵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해 북한으로 수출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금수 조치를 취한 품목들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 문턱까지 진입한 현실을 감안할 때 이 문건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관련자들은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핵심 부품은 반도체

문건은 과거 방송사들이 북한에 지원한 방송장비에 포함된 반도체 등이 이중용도(dual-use)의 전략물자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이 같은 수출통제 품목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가능하게 해주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정권 당시 북한으로 건네진 방송장비 속에 포함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분명 미사일 부품으로 사용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중용도 품목이란 민간에서 사용하는 제품이 개조 여부에 따라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예컨대 방송용 카메라, VCR 등의 방송장비에는 초고성능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들어 있는데 이것은 전략물자수출통제체제인 바세나르협정 등에 따라 이중용도로 쓰일 수 있어 북한으로 반출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국제협약에 따르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국가에는 ▲무기 수출 금지 ▲테러에 사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의 수출 통제 ▲대외원조 금지 ▲무역 규제 등의 제재가 따른다.
그러나 1988년 이후 2007년까지 국내 방송사들은 다양한 명분으로 중계차를 북한으로 반출했으며 이 중계차량으로 남북정상회담 등을 생중계했다. 이에 대해 문건에는 “그때 국내 방송사들은 방송중계 차량 등을 쓸 수 없는 방송장비라면서 북한에 두고 온 의혹이 있다”고 적혀 있다.
합법적으로 방송장비를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는 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핵심 부품들이 포함돼 있을 경우 제공 장비 일체를 회수하는 등의 후속조치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문건에는 “KBS는 2000년 9월 12일 추석에 한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남북이 공동으로 제작한 3원 생방송 <2000년 한민족 특별기획-백두에서 한라까지>를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통일 대장정,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 프로그램 중계를 위해 수십 명의 제작진과 다섯 대의 중계차와 방송장비가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이들 방송장비는 선박 편으로 남포항에 들어갔는데 당시 이들 방송장비는 물론 운반 차량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들이 제작진 사이에서 돌았다. 그때 ‘중계차가 고장이 나서 쓸 수 없다’는 이유로 북한에 남겨두고 왔다”고 증언했다.
문건에 따르면 방송사에서 방송용으로 쓰는 장비에는 신호가 복잡하고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최고 성능의 첨단기술이 적용된 부품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방송장비는 고가일 수밖에 없으며 수명이 다해도 부품은 다른 이중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심스러운 정황들 수두룩

문건은 북한에 방송장비를 제공한 문제점과 관련해 몇 가지 의문점을 제시했다. 우선 첫 번째로 2000년 8월, 방송3사는 북한 방송기술 현대화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북한과 협약을 체결하였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가 방송3사 아날로그 방송장비들을 디지털장비로 대거 교체한 시기였다.
두 번째는 북한의 TV 전송방식은 PAL방식이어서 우리의 NTSC방식의 장비는 북한의 방송시스템에 맞지 않으며 북한은 조선중앙방송 하나에 집중되어 있어 많은 방송장비가 필요하지도 않은 데도 과도하게 많이 제공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북한은 이들 방송장비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이중용도 물품만을 별도로 떼어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재래식 무기 등의 성능을 높이는 데 사용했을 개연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문건은 주장했다.
무엇보다 2004년 가동한 개성공단의 경우 지금도 이중용도로 쓰일 수 있는 전략물자의 반입·반출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점을 감안하면 방송장비 제공이 심각한 사안이 분명해 보인다.
이 문건의 내용과 관련해 일부 단체는 이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통일부 등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더 의혹만 짙게 하고 있다.
지난 3월 13일, 방송개혁시민연대(방개혁)는 통일부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국내 방송사들이 북한에 제공한 방송장비 및 방북 횟수, 방북 언론인 명단에 대한 정보 공개를 요청하였으나 “개인정보 유출과 방송사 사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정보가 있어 공개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통일부가 ‘정보 비공개 결정 통지서’를 보낸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통일부 담당자는 “우리는 북한에 합법적으로 방송장비를 제공했으며 2008년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개혁은 또 방송통신위원회에 북한에 넘겨준 방송장비 및 북한 관련 프로그램 심의 내용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는데, 방통위는 ‘정보 부존재 통지서’를 보내왔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정부 관련 부처가 북한에 방송장비를 제공한 상세 목록을 숨기는 것이 뭔가 석연치 않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방송장비 대북지원과 관련해 문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남북 방송교류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총 21회 이루어졌고 지원 금액은 40억 7000만 원에 달한다. 그 중 2005년의 ‘남북 공동이용을 위한 방송설비 지원 사업’ 명목으로 17억5000만 원을 투입해 북측에 SD급 중계차량을 지원했다. 이는 우리 방송사들이 북측 지역에서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할 경우 원활한 제작협력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원 후 사용한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
방송 관계자들은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당연하다는 말을 한다. 즉, 지원할 당시부터 대형 방송사들은 SD급 중계차량보다 더 좋은 중계시설을 이용하기에 사용할 이유가 없었고, 소형 방송사들은 카메라만 들고 입북해서 촬영 후 남측으로 돌아와서 편집하기에 장비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사용하지도 않고 사용할 수도 없는 중계차량을 17억5000만 원을 들여 지원한 셈이다.
지원 후 유지보수도 형편없었다. 방송설비 유지보수는 2006년 이후 한 차례도 없었으며 관리도 되지 않고 있었고 주무부처인 방통위는 ‘이 장비가 북한에 있기는 하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등 장비의 소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팔 수 있고, 어쩌면 벌써 전용했을 개연성도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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