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장애등 점등 기준 강화, 제2롯데월드 안전 점검해야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LG전자 헬기추락사고의 원인과 피해 보상 규모만큼이나 고층 건물의 헬기리스크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명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헬기 충돌 당시 아파트의 항공장애표시등이 꺼져 있는 등 고층 아파트가 각종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었음이 드러났다. 또한 이런 사각지대에 있는 30층 이상 고층아파트 등이 인근에 밀집해 있어 언제든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초고층(123층)으로 공사중인 잠실 제2롯데월드의 안전문제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2롯데월드는 공사 시작 후 지반이 약해지고 석촌호수의 물이 빠지는 등 ‘싱크홀’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이런 작금의 사태를 두고 “(이 일대 아파트가) 국내 최고급 아파트라는 명성을 들어왔던 것을 생각하면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 지난 16일 오전 8시 55분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에 한 민간 소형헬기가 충돌해 추락, 관계자들이 사고 잔해를 수습하고 있다. <뉴시스>

운항증명제·자격심사제도 등 기업 소유 헬기 규제 허술해
석촌호수 생태 변화 ‘싱크홀’ 우려…롯데 불안감 커져도 공사 지속

[일요서울]이 지난 17일 찾은 LG 헬기 충돌 사고로 숨진 박인규(58) 조종사와 고종진(37) 부조종사의 장례식장은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분위기였다. 빈소는 LG전자 측의 관리 아래 조직적으로 꾸려진 장례지원단과 홍보팀 등 수십 명이 상주하며 유가족을 돕고 있었다.

유가족들은 “불의의 사고로 경황이 없으니 양해를 바란다”며 말을 아꼈다.

두 조종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유사 사고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현실에서는 너무도 많은 고층 건물들이 헬기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항공기 조종사가 고층 건물 등을 식별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항공장애표시등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건물이 거의 없으며 관제탑의 관제권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아이파크 아파트 역시 사고 조사 과정에서 항공장애표시등을 제대로 켜 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짙은 안개 속에서 길잡이 역할마저 없었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아이파크 아파트 세 동의 옥상마다 주변 밝기를 감지하는 센서가 설치돼 있어 입력된 일출과 일몰 시간에 자동으로 점등이 됐어야 했다.

헬기가 지나다니는 하늘 길 주변에 위치한 아이파크 아파트는 단지와 가까운 잠실종합운동장 인근에 헬기 이착륙장이 있어 기상 악화 시 이번 사고와 같은 위험에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

현행법상 소음 문제로 도심에서는 최소한 300m 이상 떨어져 비행하도록 돼 있지만 사고 당일과 같이 안개가 짙은 날엔 지키기가 어려워 항공장애표시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당시 안개가 자욱해 명확하게 장애물을 식별할 수 있는 거리가 최소 5000m에 못 미쳐 항공장애등을 켜놔야 했으나 꺼져 있었다”며 “사고 전날 자동점멸 시스템이 고장이 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를 관리해야 하는 강남구청은 “국토교통부 산하 서울지방항공청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답변하다 뒤늦게 “업무 관리 책임에 대한 사실을 몰랐다”고 시인했다. 국토교통부 역시 관리감독 책임이 강남구청에 있다고 밝혔지만 내년 초 업무를 이관받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남구청과 국토교통부가 서로 책임을 회피하려 든 셈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아파트 관리업체를 상대로 점등 의무를 어겼는지 조사에 들어갔다. LG전자는 사고와 관련된 조사 상황에 대해서 “보도된 내용들 이외에 더 말 할 것이 없다”면서 “이번 사고와 관련해 답변을 할 수 있는 담당자들도 각자 업무 위치로 돌아갔다”고 말하는 등 사고와 관련된 언급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일각에서는 대부분의 고층건물 항공장애등 점등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점이 이 같은 불상사를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고 보고 있다.

점멸기계의 값을 정하는 것을 대부분 건물주 개인에게 맡기고 있어 현재 국내 고층 건물 중 일부는 완전히 해가 진 후 점등이 되기도 하고 약간만 어두워져도 점등이 되는 곳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고가 난 구역이 관제탑의 관제권이 미치지 않는 지점이라는 것도 사고 재발의 우려를 사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사고 헬기의 비행경로에 따른 관제권은 왼쪽은 김포공항의 저고도 관제권역, 오른쪽은 서울공항의 관제권역이었다. 항로를 튼 곳은 김포공항 관제를 벗어나 서울공항 관제에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가운데 구역은 공군이 관할하는 비행통제구역이지만 공군의 비행통제구역에 명확히 들어와 있지 않아 공군도 관여하지 않았다. 강북이 아닌 강남으로 향하는 항로였기 때문이다.

또한 민간 자가용 헬기 등에 대해서 ‘운항증명제도’와 ‘자격심사제도’ 등이 적용되지 않았던 것도 아이파크 아파트와 같이 사각지대에 위치한 고층 건물들을 ‘하늘 길의 암초’로 만들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법상 일반 손님을 태우는 헬기운송 사업자에게는 운항 증명제(조종사 등 인력과 시설, 장비의 정비 체계 등을 항공당국이 지속적으로 감독하는 제도)를 적용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보유한 자가용 헬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영업용 택시와 일반 승용차를 구분해 규제하는 것처럼 자가용 헬기의 규제가 없으며 규제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설명이다.

▲ 제2아이파크 사고 우려를 사고 있는 제2롯데월드 건축 현장.

아이파크 사고는
123층 과욕 재앙의 서막?

문제는 이런 사각지대에 있는 서울 강남과 서초, 송파 지역에 3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이 200개 가까이 밀집해 있어 유사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고를 기점으로 123층의 제2롯데월드를 향한 우려의 시선들이 다시 한 번 쏠렸다. 제2롯데월드는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송파구 잠실동에서 건설 중인데 반경 5㎞ 내에 잠실 헬기장이 있으며 성남비행장과도 인근 지역이다.

제2롯데월드가 활주로 방향을 3도 틀어서 허가를 받을 당시 군과 항공 관련 기관들은 일제히 반대의사를 내비쳤다. 일반인들 또한 위험 노출이 크다며 공사 허가를 반대하고 나선 바 있다.

심지어 이번 헬기 충돌 사고로 헬기 안전을 전담하는 인력이나 관련 매뉴얼이 부족한 실상이 드러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항공기와 수송기, 정찰기 심지어 전투기까지 뜨고 내리는 길목에 있는 제2롯데월드에 이번과 같은 헬기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 규모와 재앙을 가늠하기도 힘들 만큼 클 것이라 예측되고 있다.

이에 새누리당은 “제2롯데월드를 200m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이명박 정부 시절 진행됐던 안전 점검의 결과를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롯데 측을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공사 시작 후부터 지반이 약해지고 석촌호수의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생태 파괴와 ‘싱크홀’ 우려까지 낳고 있다.

실제로 [일요서울]이 찾아간 석촌호수의 수위는 공사가 진행된 뒤 현재까지 수위가 1m가량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 원인으로 지하 공사를 하고 있는 제2롯데월드가 지목됐다. 공사 과정에서 지하수를 퍼내는데 그 빈 공간에 석촌호수의 물이 다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그룹 측은 “석촌호수 수위 감소는 공사와 무관하다”면서도 “물을 채워넣기 위해 성내천 관로를 이용해 급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롯데 측이 채워야 할 물은 약 15만t으로 잠실 올림픽 수영장 60개를 채울 분량이다. 현재 롯데 측은 평소 수질관리를 위해 한강 줄기인 성내천의 물을 받는 관로를 통해 급수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호수의 수위는 회복되지 않고 있는 데다가 송파구와 롯데 측이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고 있어 ‘혈세 낭비’ 논란마저 일고 있다.

롯데월드를 둘러싼 안전문제가 다시 한 번 불거졌지만 지난 21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건축 허가 반복이 어렵다”고 말했다. 오랜 과정을 거쳐 허가가 났기 때문에 층수를 줄여야 하는 정확한 이유가 없어 현재로선 어렵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이미 허가가 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목숨 값 보다 비싼
아파트 보상금 ‘씁쓸’

한편 LG전자는 헬기가 가입한 손해보험을 통해 피해를 본 8가구에 수리 및 보상을 할 계획이다. 수리비의 경우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내력벽이 상하지 않은 이상 막대한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아파트는 21층에서 27층까지 외벽 구조물과 창문이 상당 부분 부서지고 깨졌다. 피해를 본 입주민 가운데 일부에서는 가구 등 집기도 파손됐다. 현재 아이파크 아파트는 LG 전자 관계자 10여 명과 서울시청, 강남구청 공무원 등이 점검에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현재 아이파크 아파트의 상태를 두고 육안 상으로는 창문과 외벽 일부 파손 등을 제외하고는 외형적인 건물 손상이 경미해 보여 “비싼 아파트라 다르다”며 튼튼한 아파트라고 회자되고 있기도 한다. 반면 입주민들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안전한 상태라고는 했지만 불안한 건 사실”이라며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이번 사고로 아파트의 시세에 영향이 미칠 수도 있다”면서 “해당 아파트뿐만 아니라 다른  초고층 아파트 역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동 아이파크는 지상 46층, 3개동에 183~350㎡ 449가구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시세는 3.3㎡당 5000만 원이 넘어 일반 아파트 중에서 매매가격이 가장 비싸다. 2004년 준공 이후에도 국토교통부가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할 때마다 상위권에 올랐다.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하자보수 기간인 7년이 지나 실질적으로 아파트와 관계가 없는 상황이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공사나 보수를 주관할 수 없다”며 “LG전자 주관으로 피해보수 공사 진행 과정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는 협조를 할 계획이다”면서 “주민들의 불안과 안전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아직 정확한 건물 상태 진단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외벽만 망가졌다면 수리 자체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면서도 “준공한 지 10년 가까이 돼 자재 수급 부분의 어려움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충돌 사고를 낸 LG전자 소속 헬기가 가입한 보험은 LIG 손해보험 상품이다. 이 보험은 최대 228억 원의 보상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파손된 헬기에 대해서는 최대 117억 원, 피해를 본 아이파크 아파트와 주민들에 대해서는 최대 106억 원, 승무원의 경우 1인당 2억1000만 원의 보상금이 지급될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파크 아파트 역시 자체적으로 주택화재보험에 가입 된 상태로 최대 230억 원의 피해보상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한 보상금보다 헬기와 아파트 피해 보상금이 더 높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표하기도 했다.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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