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계기로 나타난 일부 야당 의원들의 추한 작태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민주당 측은 28분에 걸친 박 대통령의 연설이 “야당의 요구에 대한 답이 없는 불통(不通)의 연설”이라며 “야당 무시, 민심 무시로 간다면 국민이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민주당은 야당으로서 박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자신들의 잣대에 맞추어 따끔한 말로 얼마든지 비판하고 반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연설 전과 후에 보인 막가는 행태로 한국 정당정치의 치부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박 대통령이 웃음지으며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서자 문제인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 대부분은 기립했다. 하지만 강기정 의원 등 10여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 5명도 ‘민주’라는 검은색 글귀를 적은 흰 마스크를 쓴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박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면서 민주당 김윤덕 의원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으나 그는 앉은 채 박대통령과 악수했다. 그들은 기립하지 않고 박수치지 않아야 야당으로서 투쟁성이 강하다는 자기도착증에 빠진 것 같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찾은 손님이었다는데서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 예의를 갖추었어야 옳았다. 그러나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이 일어서지 않았다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도 갖출 줄 모르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손님이 떠나면서 악수를 청했는데 앉은 채 악수한 것도 도를 넘은 짓이었다. 미국 의회에서는 아무리 여야가 첨예하게 대결될 때라도 대통령이 시정연설 차 의사당에 들어오면 야당 의원들도 일제히 기립박수로 환대한다. 18일 우리 의원들이 드러낸 추태를 어린아이들이 본받을까 두렵다.
그 밖에도 강기정 의원은 박 대통령 연설 후 밖으로 나와 청와대 경호버스 3대 중 하나를 발로 차며 “너희가 뭔데 여기 차를 대놓은 거야! 당장 차 빼”라고 소리쳤다. 그러고 그는 운전기사 현모 순경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그는 박 대통령이 입장할 땐 일어서지도 않더니 밖으로 나와서는 대통령을 경호키 위해 함께 온 버스를 발로 찼다. 박 대통령을 손님으로 보지 않고 ‘적(敵)’으로 증오한다는 감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정치인들은 상대편 정파를 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고 정견을 달리하는 ‘경쟁자’로 보아야 한다. 적은 파멸시켜야 할 대상이다. 상대편을 적으로 간주하면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조차 거부하게 되며 막가게 된다. 민의의 대변인이 아니라 막가파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편을 적으로 볼 경우 내 주장만 옳고 상대측 것은 무조건 거부되어야 한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논리가 통할 수 없고 타협은 굴종으로 치부되며 법도 규칙도 예절도 외면하게 된다.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설득은 전투적 강경론에 밀려난다. 상대편을 적으로 여기는 한 국회는 상생을 추구하는 신성한 의정 단상이 아니라 피투성이 투견장으로 전락된다. 우리 국회가 ‘깡패’ 오명을 씻지 못하는 연유도 바로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는 데 기인한다.
그에 반해 상대편을 적이 아닌 경쟁자로 받아들인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논리가 수용되고 서로 토론과 타협의 의회정치를 이뤄갈 수 있다. 규칙을 존중하며 상호 신뢰도 쌓아가게 된다. 전기톱이나 해머를 휘두를 필요가 없다.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이다.
국회가 투견장으로 전락지 않기 위해서는 의원들의 의식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상대편을 ‘적’ 아닌 ‘경쟁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야가 적 아닌 경쟁자로 상생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예의부터 지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대통령을 국회에서 맞이할 때 일어서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는 대통령 경호차를 발로 차는 파렴치한 무례부터 벗어나야 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