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타고 도망가자 ‘모닝’ 타고 추적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국내 필로폰 판매자의 대부이자 일명 ‘김해 마약왕’으로 불리던 오모(43)씨가 검찰에 붙잡혔다. 오씨는 수도권과 부산을 자신의 활동영역으로 삼고 지역 내 조직폭력배와 연계해 필로폰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오씨는 수사기관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대포폰을 사용했으며, 단속에 대비해 최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오씨의 검거 과정은 한편의 영화 같았다. 무려 2시간의 추격전 끝에 붙잡힌 것이다. 도주를 위해 준비한 ‘벤츠’는 결국 검찰의 ‘모닝’에 붙잡히고 말았다. 치밀하게 계획한 범행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검찰, 조직폭력배 포함 필로폰 사범 6명 구속
도주 대비 외제차 몰고 다녀… 망원경·일본도 준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지난 22일 중국에서 부산으로 필로폰을 밀수하는 밀수조직과 연계해 수도권과 부산·경남 일대에 필로폰을 대량으로 유통한 ‘김해 마약왕’ 오씨와 중간판매상인 조직폭력배 등 6명을 구속기소하고 2명을 지명 수배했다고 밝혔다.

중국서 부산으로
밀수조직에게 공급받아

오씨는 국내 필로폰 최상위 판매상으로 2012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중간판매상에게 필로폰 약 318g을 판매한 혐의다. 검거 당시 오씨는 312.6g의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는 1만2000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소매가는 1억2000만 원가량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해 마약왕’ 오씨는 중국에서 부산으로 필로폰을 밀수하는 필로폰 밀수조직으로부터 필로폰을 공급받았다. 이렇게 공급받은 필로폰은 직접 김해에서 판매하거나 중간판매상들을 통해 수도권과 영남 지역에 대량으로 유통됐다. 오씨를 비롯한 필로폰 판매상들은 주로 고향 선후배나 교도소 수감 중 친분을 쌓은 사람들에게 필로폰을 거래했다.

경찰을 피하기 위해 여러 대의 대포폰을 사용했으며, 판매 대금은 차명계좌를 이용했다. 또한 수사기관의 단속에 대비해 도주가 용이한 최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고성능 망원경과 일본도를 소지하고 다녔다. 마약 거래 시에는 수시로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동거녀를 시키거나 승용차를 운전한 채로 직접 특정 장소 주변을 살피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자신의 일행 중 한 명인 A씨가 구속되자 A씨 약혼녀의 입을 막기 위해 A씨의 변호사 비용과 옥바라지할 때 사용하라며 필로폰 50g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김해 마약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오씨의 검거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들이 검찰 차량을 모두 파악하고 있어 검찰은 렌터카를 빌려서 추격해야 했는데 예산 문제로 국산 경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승합차 눈치 채고 도주
경차 타고 검거 성공

지난 7월 검찰은 오씨를 검거하기 위해 경남 김해시 상동 일대와 김해 체육공원 간 도로에서 2시간 동안 수십 Km의 추격전을 벌였다. 오씨의 필로폰 거래 정보를 입수한 검찰은 승합차를 타고 기다렸다. 그러나 오씨가 먼저 검찰 승합차를 눈치 채고 빠른 속도로 도주했다.

승합차로는 벤츠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판단한 검찰은 경차를 투입했다. 검찰 승합차가 안보이자 추격을 따돌린 것으로 판단한 오씨의 벤츠 속도가 늦춰진 틈을 타 모닝으로 재빨리 벤츠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모닝에서 내린 검찰 수사관들이 오씨의 차량으로 달려들자 당황한 오씨는 핸들을 급하게 돌리다가 도로 밖 언덕으로 미끄러졌고 결국 검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도주를 위해 마련한 외제차가 경차에 잡혀 무용지물이 된 순간이었다.

마약사범
10명 중 4명은 40대

지난 5일 의정부지검 형사5부는 고추장 등에 마약류를 은닉해 밀수하려 한 마약밀수사범과 환각상태에서 택시를 운전한 택시 운전기사, 마약을 매매한 조직폭력배 등 마약사범 20명을 구속하고 필로폰 37.18g, 대마 101.22g, 신종 마약인 밥말리 9.7g, 야바 176정, 양귀비 173줄기를 압수했다. 이들은 마약을 헤이즐넛 커피, 고추장 등으로 위장해 밀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 6일에는 충남 서천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필로폰을 판매한 판매책을 포함한 마약사범 31명이 검거됐다. 이들은 가정주부, 농업인, 회사원, 무직자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로 드러났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도 필로폰을 판매·투약한 마약사범 23명을 구속하고 17명을 불구속 했다. 경기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지난 8월 마약사범 46명을 검거했다. 이렇듯 마약사범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해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다 보니 나타나는 결과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회선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법무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마약류 사범 검거·처리 현황’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 7월까지 적발된 마약류 사범은 모두 4만6001명이다. 2010년 9732명, 2011 9174명, 2012년 9255명, 2013년 5129명(7월 기준)이다.
이날 김 의원은 “인터넷을 통한 마약 구매가 쉬워짐에 따라 신종 마약의 증가뿐 아니라 마약 투약사범도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마약사범은 특성상 재범률이 다른 범죄에 비해 높기 때문에 단속 강화는 물론이고 마약 사범 치료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마약사범 연령대는 50대가 20대를 추월하는 등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 22일 발표된 대검찰청의 ‘연도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마약(대마·항정·마약)사범의 38%가 40대, 18.6%가 50대로 나타났다. 20대는 8.8%이며 30대는 26.9%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우리나라 마약류 사범은 젊었을 때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늙어가는 구조”라며 “한 번 중독된 사람들이 끊지를 못하다 보니 연령대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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