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은행의 수난시대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3분기 당기순손실을 맛본 후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영국 SC그룹 본사의 경우 한국 시장에서의 수입이 줄어들면서 국내 진출 11년 만에 영업이익 적자의 기로에 섰다. 현재 한국에 있는 SC그룹의 총 자산은 10%가량이지만 SC그룹 본사는 이를 계속해서 줄여 나가며 탈(脫)한국을 꾀하는 상황이다.

이미 버린 저축은행ㆍ캐피탈ㆍ퇴직연금…다음엔 개인금융?
완전 철수 아니더라도 사실상 부분 철수…탈(脫)한국 심화

주요 외신 및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SC은행은 전국 영업점 350곳 중 100여 곳을 점차적으로 줄여 250여 곳만 남기기로 했다. 앞서 SC은행 영업점은 440여 곳이었지만 20%를 축소해 350여 곳이 된 바 있다.

이는 영국 SC그룹 본사의 결정으로 SC그룹은 지난달 ‘투자자의 날’ 행사에서 이러한 속내를 밝혔다. 리처드 메딩스 SC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한국 사업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 내 영업점을 25%까지 줄일 것”이라며 “개인금융 영역에서 상당 부분 철수하고 기업금융 관련 사업을 재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 SC은행 관계자도 “국내 영업점을 중장기적으로 축소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개인금융의 경우 대면 채널보다는 비대면 채널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겠다는 뜻은 아니며 그럴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본점 부서ㆍ영업점
3분의 1 축소키로

하지만 SC은행은 불과 4개월 전 퇴직연금ㆍ저축은행ㆍ캐피탈 등을 정리하고 개인금융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상위 1%를 위한 프라이빗뱅킹(PB) 특화 서비스로 수익을 내겠다는 공언은 물거품이 된 셈이다.

이제 와서 SC은행이 법인영업 등 기업금융에 다시 주력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도 의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SC은행은 타 시중은행과 달리 굵직한 기업금융 고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8년 전 외국계 은행으로 전환되면서 갈라선 기업이 많았고 이후에도 도매보다는 소매금융에 주력해서다.

어쩔 수 없이 SC은행은 퇴직연금 부문의 수익성과 시장점유율 모두 충족하지 못하고 2년 반 만에 사업을 접었다. 퇴직연금의 특성상 대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꾸준한 성과는커녕 오히려 운영비만 축내는 사업부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SC은행은 지난 3월 기준 퇴직연금 시장점유율이 고작 0.1% 수준에 지나지 않은 굴욕까지 맛봐야 했다.

이런 연유로 개인금융을 새 핵심사업으로 천명했던 SC은행이 그마저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자 금융권에서는 SC그룹 본사가 한국 시장을 서서히 내려놓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미 SC그룹은 한국 시장을 냉정하게 평가하며 규모를 줄여 나가고 있다. 메딩스 CFO는 한국 사업 수입이 지난해보다 약 15% 감소해 영업손실 규모가 2억 달러(약 2200억 원)에 근접했다며 진출 11년 만의 영업이익 적자전환을 예상했다.

또 피터 샌즈 SC그룹 회장은 SC은행의 수익성장률 목표를 두 자릿수에서 당분간 한 자릿수로 변경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피터 회장은 한국 영업권을 재평가해 10억 달러(약 1조1100억 원)를 축소한 바 있다.

외신 역시 SC그룹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SC그룹이 올해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한국 내 사업 부진이었다고 지적했다. 물론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신흥시장에서 위험성 노출이 있다는 점도 거론됐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에 주력한 SC은행이 경쟁은행들보다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 내년 실적 역시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권에서는 SC은행이 국내 완전 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분 철수는 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비치고 있다. 실제로 SC은행의 본점 부서는 47개 중 17개가 사라지고 30개만 남을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발생하는 잉여인력은 170여 명으로 영업 관련 부서로 재배치되거나 갈 곳을 잃게 됐다.

영국 그룹 본사는
한국 때문에 적자?

또 SC은행 측은 부인했으나 내부에서는 또다시 명예퇴직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SC은행 내부 관계자는 “최근 노사 임금단체협상 안건에 명예퇴직도 포함됐다”면서 “구체적인 조건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급여 30개월치와 학자금 2000만 원 상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11년에도 SC은행은 800여 명 규모의 명예퇴직을 시행한 바 있다.

행원들 사이에서는 올해 3분기 순손실이 발표되자마자 명예퇴직 계획을 세운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SC은행의 순이익은 2010년 3438억 원에서 2011년 2719억 원, 지난해 2041억 원으로 계속 줄어들었다.

올해의 경우 상반기는 1292억 원이었으며 3분기에는 222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SC은행 측은 갑작스러운 세무조사로 인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안팎에서는 4분기 결산에서도 손실이 날 확률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예전 조흥·한일·제일·상업·서울은행을 일컫는 소위 ‘조한제상서’에 속하던 제일은행이 SC은행으로 바뀐 후 한 자릿수의 시장점유율 등 모든 면에서 밀리고 있다”면서 “영업점을 줄이면 향후 시장점유율이 더욱 떨어져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 금융당국에 찍힌 SC…올해도 고배당?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올해도 1000억 원대의 결산 배당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SC은행은 상법개정에 따라 파생상품 거래이익이 배당가능이익에서 제외되더라도 배당 규모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고수 중이다.

앞서 3분기 당기순손실을 기록할 정도로 이익이 줄어도 배당액 규모는 그대로 두겠다는 SC은행의 태도는 지난해와 같이 금융당국의 경고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고배당을 계속하는 SC은행이 올해도 배당액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여론이 좋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상황에서의 고배당은 여론을 더욱 악화시켜 론스타와 같은 논란에 휘말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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