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인가 투기인가…4년 만에 가치 4만배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단돈 22달러(약 2만3000원)가 4년 만에 85만 달러(약 9억 원)로 변했다.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크리스토프 코흐의 이야기다. 그는 2009년 비트코인의 가치가 추후 상승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고 재미삼아 소액으로 5000비트코인을 사들였다. 2만 원 남짓의 돈이 9억 원의 거액으로 탈바꿈하게 된 계기다.

익명의 결제ㆍ송금ㆍ가치저장수단…전 세계가 주목해
‘제2의 통화’냐 ‘튤립버블’이냐…전문가들 평가 엇갈려

불과 4년 동안 가치가 4만 배 뛰어오른 비트코인(Bitcoin)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비트코인이란 무국적의 가상화폐로 실물이 아닌 프로그램 코드로만 존재한다. 이 비트코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채굴하거나 거래소에서 사들이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익명이 보장되며 이론적으로는 수수료도 없는 것이 장점이지만 이 때문에 탈세나 범죄에 이용될 여지도 큰 비트코인을 들여다봤다.

비트코인 주요 거래소 중 하나인 일본 마운트곡스의 기록은 비트코인의 현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31일 1비트코인의 최종 가격은 13.51달러였으나 지난달 말에는 1242달러까지 급등했다. 만약 투자했다면 11개월 만에 무려 100배에 가까운 수익률이지만 그 사이 등락률도 큰 것이 함정이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페이스북의 창시자인 마크 주커버그와 기여도를 두고 법정싸움을 벌였던 윙클보스 형제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향후에도 100배 이상 오를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 형제는 이미 1년 전부터 비트코인에 투자해 수십 배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각국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트코인에 대한 평가가 갈리고 있다. 먼저 독일은 비트코인에 상당히 우호적이다. 독일 중앙은행은 지난 8월 비트코인을 개인 간 거래에 쓰이는 민간통화로 공식 인정했다. 또 비트코인 거래에 대한 과세 근거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비트코인 거래소인 DE.의 올리버 프라스캄퍼 디렉터는 “비트코인이 아직 합법적 화폐가 된 것은 아니지만 독일 재무부는 비트코인을 민간 화폐로 인식했다”면서 “이는 독일에서 비트코인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역시 비트코인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지난달 “비트코인이 불법적으로 악용될 위험성도 있으나 장기적 관점에서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지급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해 비트코인의 가치를 급등시켰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600달러 수준이었으나 버냉키 의장의 발언 이후 ‘금을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에 900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경우에도 비트코인의 성장 잠재력이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데이비드 우 BoA 글로벌통화연구책임자는 “비트코인이 향후 은처럼 가치저장수단이 될 것”이라며 “비트코인 가격이 단위당 13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비트코인의 가치는 결제, 송금, 보관 등에 있으며 이것이 모두 충족되면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150억 달러(약 15조7500억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비트코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미국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버냉키 의장과 전혀 다른 견해로 비트코인을 혹평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비트코인은 본질적 가치가 없는 거품”이라며 “화폐는 본질적 가치나 발행자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비트코인의 경우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지불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프랑스 중앙은행은 비트코인 보유 시 금융·법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으며, 네덜란드 전 중앙은행 총재는 비트코인을 17세기에 유행했던 튤립 투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누트 벨링크 전 총재는 “비트코인 버블은 네덜란드 튤립 투기와 비견된다”며 “당시 버블은 한순간에 꺼졌고 투자자들의 손에는 튤립만 남게 됐다”고 말했다.

또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 수요가 가장 급증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지난 5일 중앙은행이 각 금융기관에 비트코인을 실물화폐와 연계해 유통하거나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비트코인은 실물이 아니며 아직 통화로서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이 개인 간 비트코인 거래에 규제를 가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인민은행 관계자들이 비트코인 거래소와 같은 거래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강 인민은행 부총재는 “비트코인을 합법적인 통화로 인정하지는 못하지만 개인의 비트코인 거래는 자유다”라고 말한 바 있지만 이것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국내 제도권 금융
편입 가능성 사라지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중앙은행이 비트코인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한국은행은 비트코인이 금융수단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화폐로서의 가치도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금융위원회 역시 국내 이용자가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발행주체도 모호하다는 이유로 제도권 금융으로의 편입이 어렵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한은 관계자는 “비트코인이 안정적인 거래수단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확실한 고정가치와 보안성이 유지돼야 하지만 이를 보장할 주체나 장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라며 “비트코인의 가치가 연일 상승세인 것은 호기심에 투기 수요가 맞물려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일축했다. 연말에 한은이 내놓을 보고서에도 향후 비트코인이 공식화폐로 통용될 가능성이 낮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근 1200달러를 넘나들며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비트코인 시세는 한풀 꺾인 상태다. 특히 인민은행의 공지 직후인 5일 비트코인 가격은 하루 새 200달러 가까이 하락하는 등 일일ㆍ시간별 등락폭이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안화폐로서 잠재력이 가장 컸던 비트코인이지만 이처럼 불안정한 가격 등락이 이어지면 그 지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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