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경영 분리…한우물 파기로 경쟁력↑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개천에서 난 용을 만나면 같이 개천으로 들어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만큼 자수성가한 부자들이 명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기존의 재벌들은 족벌경영 체제로 그들만의 황금의 제국을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 혼맥 등의 관계가 두텁지 않은 자수성가형 부자들 중 일부는 개천으로 돌아가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자수성가한 부자들 중 특히 넥슨과 NC소프트 등 벤처 창업주들이 기존 재벌과 다른 기업 지배구조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독립적 경영체제로 일감·족벌 논란 전무
게임업 가치 인정 위해 프로야구단 창단도
계열사 지분 없이 모기업 보유…세습 방지
벤처기업 출신 지배구조 모범 기준 제시

재벌닷컴이 개인 보유재산(상장 및 비상장)과 배당금, 자택 등 부동산과 기타 등기재산 가치를 합한 결과 현재 국내에서 개인재산이 1조 원이 넘는 28명의 부자 중 자수성가형 부자는 6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1위는 게임업체 넥슨의 성공신화를 쓴 김정주 NXC 회장이다. 28명 중 11위를 차지한 김 회장의 재산은 총 1조9020억 원이다. 그는 세계 최초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매년 1~2개의 게임을 개발해 ‘크레이지아케이드’와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등 연이은 히트작을 선보였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등도 자수성가형 CEO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래에셋그룹 박 회장은 평범한 증권맨에서 시작해 금융재벌 총수 자리에 올라 1조265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에이티넘파트너스 이 회장은 심장이 뛰는 곰 인형 사업으로 돈을 번 뒤 케이블TV 사업(C&M) 투자를 토대로 1조11340억 원의 부를 쌓았다.

임대주택 전문 건설 회사로 명성을 날린 부영그룹의 이 회장은 1조860억 원의 재산을 보유했다. 교원의 장 회장은 구몬 학습지 사업 성공을 발판으로 한 사업 확장으로 1조310억 원의 부를 쌓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인물은 김택진 NC소프트 회장이다. 김 회장은 김정주 회장과 마찬가지로 벤처기업에서 시작한 창업주다.

김 회장은 게임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인터넷 영역을 넘나드는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 서울대컴퓨터연구회에서 2년 선배인 이찬진을 만나 ‘아래아 한글’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게임 업계의 전설 ‘리니지’를 개발했고 다중접속 온라인 게임(MMORPG) 시장을 선도했다. 현재 김 회장은 주식매각 대금을 합쳐 1조 12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자수성가형 부자로 주목받고 있는 이들이 있다. 게임업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한 박관호 위메이드 이사회 의장도 40대 초반의 나이에 382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업계의 숨은 실력자로 주목받고 있는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대표와 송병준 게임빌 사장은 각각 2820억 원, 1540억 원 등 게임 업계에서 30대에 신흥부자로 떠올랐다.

아웃도어 열풍에 힘입어 K2, 아이더(Eider) 등 등산용품을 만든 정영훈 K2코리아 대표도 개인 재산이 252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됐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중 최고 성공작으로 꼽히는 카카오톡을 개발해 1650억 원을 보유한 부자로 부상했다.

주 업종 계열사 확장

그렇다면 이들 자수성가형 부호들의 생존법은 무엇일까.

넥슨과 NC소프트, 이들은 지주사 역할을 하는 모기업의 지분만을 보유한 채 그룹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재벌 기업들과 차이를 보인다. 나머지 계열사들에 대해서는 업무적인 연관성만 유지한 채 모두 계열 법인이 지분을 갖는 ‘독립적 책임경영 체제’를 취하고 있다.

기존 대기업이 모기업은 물론이고 계열사 지분을 갖고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해 일감 몰아주기와 지원성 대출 등으로 대주주 사익편취, 후계구도 준비 등 논란을 일으킨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 때문에 이들은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물론 족벌경영 비판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이다.

김정주 넥슨 회장은 중국과 일본 등에서 연매출 1조5000억 원 이상을 기록하며 15개의 종속회사를 두고 있지만 지주사인 NXC 지분 48.5%만 보유하고 있다.

1994년 회사 창업 당시부터 사업에 참여했던 김 회장의 부인 유정현 이사도 NXC 주식을 21.2%만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김 회장은 공식적인 대외 활동에 나서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회사를 경영하는 CEO로 알려져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넥슨 직원들마저도 그를 직접 본 사람이 손에 꼽힐 정도다.

일본 상장 법인 넥슨도 NXC가 61.8%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뿐만 아니라 넥슨은 넥슨코리아 지분 100%를, 넥슨코리아가 다시 넥슨네트윅스, 네오플, 게임하이 등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 이들 계열사는 ‘게임’ 업종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업만을 하고 있다.

김택진 NC소프트 사장도 중국과 유럽 등에 진출해 성과를 내고 있으며 14개의 종속회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지주회사 격인 NC소프트의 지분 9.95%만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국내 계열사는 NC소프트가, 해외 법인은 NC웨스트홀딩스가 대주주다. NC소프트홀딩스 역시 최대주주는 100% 지분을 가진 NC소프트다.

NC소프트의 업종 역시 NC다이노스 야구단을 제외한 대부분이 주력 사업과 연관되는 게임 관련 기업들이다.

NC다이노스 야구단의 경우 청소년들을 게임에 중독시켰다는 비난이 일자 청소년들에게 빚을 갚겠다는 목적으로 프로야구단 창단을 추진한 것이다. 당시 김 대표는 야구단을 통해 게임 산업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벤처기업 출신 기업인들이 회사가 재벌 못지않은 외형을 갖추고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있다”며 “투명하고 단순한 지배구조로 펼치는 한 우물 파기 전략은 국내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새로운 모범 기준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이에 NC소프트 관계자는 “향후에도 게임 이외의 사업에 대한 계획은 없다”면서도 현재와 같은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 밖에도 네이버의 오너인 이해진 의장도 629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넥슨과 NC소프트와 비슷한 기업 지배구조를 보이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8월 NHN엔터테인먼트를 분할했다. 현재는 종속회사인 일본법인 라인과 함께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상태로 여타 재벌그룹과 맞먹을 정도의 규모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이 의장은 모회사인 네이버 지분 4.6%만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종속회사들도 마찬가지로 이 의장을 포함한 친인척의 지분도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네이버 역시 영위 업종을 ‘검색’이라는 창업 당시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 개천으로 돌아간 자수성가형 재벌은 누구?
-샐러리맨 신화 STX·웅진·팬택 등…배임혐의·윤리경영 실종 등 구설수 꾸준

한때 ‘샐러리맨의 신화’라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이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 등이다.

직장인들의 희망이자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그룹의 위기를 겪으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때 국내 3대 해운사로 불리며 창업 6년 만에 매출액 10조 원 돌파, 글로벌 4위 조선 업체였던 STX그룹은 현재 채권단과 법원의 관리를 받고 있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역이었던 강 회장은 맨손으로 시작해 재계 서열 12위까지 올랐지만 처참한 현실을 맞았다.

심지어 지난 4일 채권단은 강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소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STX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했던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괌 이전공사와 관련한 건설 추진 과정에서 차입금 상환의 어려움을 겪었고, STX중공업이 연대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만기를 연장했는데 이것이 결국 채권단이 550억 원을 지급해야 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STX그룹의 위기가 그룹의 성공을 가져다 준 수직 계열화와 거침없는 M&A가 불경기를 맞으면서 위기의 요소로 돌변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영업의 신으로 불리다 웅진출판사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윤 회장은 웅진코웨이로 정수기 시장을 개척했고 웅진식품과 코리아나화장품을 통해 사업을 더욱 확대해 나가며 총자산 9조원, 연매출 6조 원, 직원 4만5000명 규모로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윤 회장은 32년 만에 재계 30위 진입을 눈앞에 두고 좌초했다. 전문분야와는 거리가 먼 태양광사업(웅진폴리실리콘)이나 건설업(극동건설)에 뛰어들면서 위기를 스스로 불러왔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또 이 과정에서 윤 회장의 부인이 개인 재산을 빼돌리려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 10월에는 그룹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윤 회장의 아들이 골프장 전체를 대여해 호화 결혼식을 열었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웅진그룹은 지난해 10월 지주사인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받고 1년째 절차를 진행 중이다. 코웨이는 매각했으며 웅진씽크빅과 북센 등 출판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도 매각을 진행 중이다.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은 맥슨전자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자본금 4000만 원으로 팬택을 세웠다. 삐삐로 대박을 터뜨린 팬택은 휴대전화 시장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자금력에서 경쟁 업체에 밀리며 위기를 맞았다.

결국 박 부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지난 9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팬택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평범한 샐러리맨들의 희망이었던 기업의 수장들이 퇴진하는 모습과 3세 경영이 시작된 족벌경영 재벌의 상반된 모습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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