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끝에 미국이 변한다”

우리 정보당국, 북한 핵심 지도부 물밑 움직임 놓쳐
상상을 초월하는 극비 프로젝트 한반도 움직인다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실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 부처들과 여야가 혼란에 빠졌다. 장성택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부이자 북한의 ‘2인자’ 역할을 해온 인물로 일각에서는 “장성택이 사실상 북한의 1인자”라는 말까지 나왔다. 김정은의 배후에서 사실상 섭정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이 김정은의 집권 2주년을 앞두고 전격 숙청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실 여부를 놓고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연일 엇갈린 주장으로 대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장성택이 사실상 북한의 1인자로 꼽혔던 만큼 최근 나도는 그의 실각 소식은 사실 관계를 정확히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은 중대 변화를 앞두고 있거나 무언가 중대한 기밀을 감추려 할 때면 관심을 돌리려는 목적으로 허위 정보를 흘린 전례가 있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던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북한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미국은 이례적으로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이라고 밝히는가 하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은밀히 물밑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정보기관 주변에서는 “이 모든 배후에 장성택이 있다”는 첩보가 무성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3일 “최근 노동당 행정부 내 장성택의 핵심 측근들에 대한 공개처형 사실이 확인됐으며 장성택도 실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고 국회 서상기 정보위원장 및 정보위원들에게 보고했다.
국정원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11월 하순 북한이 당 행정부 내 장성택의 핵심 측근인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을 공개처형한 이후 장성택 소관 조직과 연계 인물들에 대해서도 후속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현재 장성택은 모든 직책에서 해임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이면서 “(이용하, 장수길에 대한) 공개처형 사실은 믿을 만한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 사항”이라며 “숙청 범위는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이라 예단하기 어렵다”고 국정원은 전했다.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권력구도가 크게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의 향후 대남, 대외 정책이 더 강경해지는 쪽으로 영향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고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또 정보당국은 장성택의 실각이 김정은 지도부 내 핵심권력 간 권력투쟁 과정에서 벌어졌을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북한의 내부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제통’이자 유화파로 알려진 장성택의 숙청 및 이후의 내분으로 대남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질 경우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도 면밀히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성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의 남편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뇌중풍 발병 이후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 왔다. 2011년 김정은의 권력승계 이후에는 그의 핵심 후견인이자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북한 보위부가 자신의 심복에 대한 비리 혐의를 포착하고 내사에 들어가는 등 일부에서 견제하는 조짐을 보이자 최근 공개 활동을 자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장성택의 실각과 관련해 발생할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해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사상교육을 실시하는 등 내부 동요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장성택 측근들에 대한 숙청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해외에 체류 중이던 장성택의 누나이자 전영진 쿠바 주재 대사 부인인 장계순 일가족도 5일 평양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소식통 등에 따르면 장계순 일가족은 4일 오후(현지 시간) 러시아 항공사 여객기로 쿠바 아바나를 출발했으며,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거쳐 이날 오후 북한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장성택의 매형이기도 한 전영진 쿠바 주재 대사와 장성택의 조카인 장용철 말레이시아 주재 대사가 이번 사태 이후 소환된 것으로 우리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장성택은 자택에 칩거한 채 자아비판을 강요당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장성택 실각 둘러싼 미스터리

그러나 일부에서 장성택의 실각과 관련된 정보가 북한의 역공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핵심 정보임에도 일본 정보통에 의존한 것으로 사실 확인이 제대로 안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북한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정원의 변화를 예의 주시해 왔고 남재준 원장 체제하의 국정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 주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비롯해 동북아시아의 정세에 정통한 한 러시아 소식통에 따르면 장성택과 관련된 정보는 북한이 남한의 정보당국을 파악하기 위해 흘린 역정보일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과거 노무현 정부 당시 김정일 체제 때 북한은 남한 정보당국의 활동 범위와 정보 수집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여러 역정보를 흘린 적 있다”며 “대표적으로 장성택과 관련된 정보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때도 북한은 장성택이 김정일의 견제로 인해 가택연금에 처해졌다고 역정보를 흘렸고 남한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서 “이 정보가 남한 언론에 보도된 직후 북한은 관련 정보 유출 경위를 역추적해 정보유출자로 의심되는 이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조직을 개편한 적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김정은 집권 후 장성택은 다시 중앙에 등장했다. 하지만 장성택은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고 배후에서 실세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단 이 소식통의 이 같은 설명이 아니더라도 최근 장성택 실각설이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다. 무엇보다 최근 북한의 경제개혁이 김정은 주도가 아니라 장성택 주도로 이뤄지고 있었고 군부 역시 장성택이 새롭게 판을 짰다. 말하자면 장성택은 군부까지 장악한 북한의 실세 중 실세라는 이야기다. 그 때문에 김정은의 배후에서 수렴청정을 해온 장성택과 관련해 아무런 조짐도 감지되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실각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구석이 다분하다.
또 최근 우리 정부와 정보당국의 엇박자도 사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지난 5일 실각설이 제기된 장성택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의 최측근이 최근 반당(反黨) 혐의로 북한 당국의 수사선상에 오르자 중국으로 도피해 한국 또는 제3국으로의 망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관심을 끌었다.
최근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장성택의 최측근이 중국 현지에 체류 중이고 중국 당국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측근은 장성택의 자금을 관리해 온 인물로 알려져 있어 더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는 이튿날 곧바로 “관련 소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6일 정례브리핑에서 “장성택 측근 망명설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는 확인을 했다”며 “하지만 현재로서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정보당국이 장성택 실각설을 놓고 미묘하게 다른 입장을 보이면서 장성택 실각설에 대한 사실 여부를 둘러싼 의문은 더 커지고 있다.

실각설은 북한의 시선 돌리기?

장성택 실각설이 나돌면서 북한 지도부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장성택 관련자들의 숙청이 이뤄지면 김정은 체제를 새로 지탱할 신진그룹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 ‘김씨 패밀리’ 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장성택에 가려져 있던 김씨 일가들이 북한 권력의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일단 김정은 형제들이 거론된다. 여동생인 올해 26세의 김여정이 노동당이나 국방위원회 등에서 중요한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친형인 김정철은 현재 별다른 공식 직함 없이 ‘대군’ 대접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유일지배를 근간으로 하는 북한에서 또 다른 김씨 일가가 공직에 오를 경우, 파벌을 형성하면서 김 제1위원장의 맞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형제를 권력에서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은 장성택 부위원장의 실각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여 김정철이 권력 전면에 등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여정은 현재 국방위 과장 직책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12월에는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빈소를 지켰고 작년에는 올케인 리설주의 공식석상 등장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성으로 파벌을 만들 가능성이 적다는 점에서 김정일 체제에서 김경희 당비서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고 노동당 전문부서를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권력의 최고 자리에서 고독한 오빠를 도우며 김정은 체제의 친위세력을 규합하는 기능을 떠안을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그러나 김여정은 국정운영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그간 친인척으로서 노련함을 가지고 김 제1위원장을 도와온 장성택 부위원장의 공백을 메우지는 못할 것으로 평가된다.
또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최근 공개 행보인 양강도 삼지연군 시찰을 통해 새로운 핵심부의 윤곽을 짐작한다. 이 때 김정은 체제에서 약진한 인물이 대거 동행했다.
북한 매체는 지난달 30일 김 제1위원장이 삼지연군의 학생소년궁전, 국수집 등을 시찰했다며 수행자로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박태성·황병서·김병호·홍영칠·마원춘 부부장을 소개했다.
당 자금과 재산을 관리하는 핵심부서인 재정경리부의 수장인 한광상은 2010년 1월 제1부부장으로 북한 매체에 등장한 뒤 2012년 봄 부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광상은 올해 들어 김 제1위원장이 군부대 산하 버섯공장, 대형식당 해당화관 등의 각종 경제 현장 시찰을 꾸준히 수행해 왔다.
또 박태성은 작년 8월부터 김 제1위원장의 평양 창전거리 시찰 때 이름을 알리고 나서 1년이 지나지 않아 단골 수행자로 자리 잡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 말까지 박태성이 김 제1위원장을 수행한 횟수는 46회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112회)과 장성택(49회)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기계공업부 소속으로 추정되는 홍영칠의 경우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단행한 직후인 올 2월 21일 북한 매체에 수행자로 등장하고 나서 군부대 시찰이나 기계공장 현지지도를 많이 따라다니고 있다.
재정경리부 부부장으로 알려진 마원춘은 '백두산 건축연구원' 출신의 건축 전문가로 류경원, 인민야외빙상장 등 건설현장 시찰에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북한이 건축물의 개보수 및 현대화에 힘쓰는 상황에서 마원춘은 계속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또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도 현지지도에 동행했지만 김정은 체제 들어 그 횟수가 부쩍 늘어나 주목받는 인물이다.
지난달 26일 김 제1위원장의 평양건축종합대학 방문 때 수행한 최휘 당 제1부부장도 김정은 체제에서 빠르게 부상한 인물이다.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도 김정은 체제에서 부상한 실세로 분류된다. 김원홍은 올해 간부들의 비리 혐의를 잡아 장성택의 입지를 좁히는 데 주도하면서 권력을 단단히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3일 국정원은 올해 국가안전보위부가 장성택 심복에 대한 비리 혐의를 내사하면서 장성택이 공개활동을 자제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원홍은 지난달 20일 김 제1위원장과 함께 ‘보위일꾼 대회’에 참석한 뒤 최근 김 제1위원장의 공개활동에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군부의 경우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총참모장,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등의 소장파들이 핵심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장성택 실각설 이후 군부에 변화가 있을지도 관심사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