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가짜상품의 속어)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올해 세관에 적발된 가짜상품 금액만도 600억원에 가까울 정도. 하지만 문제는 이미 유통되고 있는 짝퉁들이다. 짝퉁 물건을 진품인줄 알고 사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으로 신혼여행을 가 현지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대부분 짝퉁이라는 것. <일요서울>은 이런 짝퉁 물건을 가지고 여성들을 농락하며 울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에 나섰다. 지난 6일 서울 강남의 물 좋다고 소문난 고급 룸살롱.술시중을 드는 접대부로 일한지 3년 됐다는 김인선(가명·24)씨는 재벌 2세 행세를 하는 단골손님 박준수(가명)씨 때문에 골머리가 썩을 지경이라고 한다. 돈을 좋아하고 명품을 밝히는 접대 여성들의 심리를 이용해 그들을 더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재벌2세 행세하며 접대여성 농락

김씨에 따르면 한번은 박씨가 007가방을 열더니 세계적인 명품 ‘파텍필립’시계를 보여줬다고 한다. 박씨는 해외로 사업차 갔다 오면서 지인들에게 선물주려고 파텍필립 시계를 5개 정도 사왔으니 구경이라도 하라고 보여줬다는 것. 그걸 보면서 김씨는 너무 황홀했다고 한다. 김씨가 알기에 ‘파텍필립’ 시계는 1천만 원이 넘는 고급시계 중에서도 고급 시계였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엔 ‘명품에 눈이 멀었나’ 하겠지만 실제로 명품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솔직히 ‘난 언제 저런 시계 한번 차보나’하면서 ‘갖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했죠.” 특히 빚더미 뿐인 접대 여성들에게 수천 만원 하는 명품시계는 그림의 떡이라는 것. 이런 김씨의 마음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박씨는 그녀를 농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며칠 전 박씨가 즐겁게 술을 마셔서 기분이 좋다면서 저한테 시계를 선물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솔직히 ‘이게 웬 떡이냐’ 했죠. 그래서 그날 제 모든 것을 바쳐 박씨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해줬어요. 물론 시계를 선물 받은 것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저를 특별히 아끼고 잘 해줘서 항상 고마웠거든요.” 게다가 늘 신데렐라를 꿈꿔왔던 김씨는 자신에게 기회가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계를 준 박씨는 이 업계에서 젠틀맨일 뿐 아니라 매너도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이에 김씨는 박씨가 준 그 시계가 가짜일 것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의심치 않았다.그 즈음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다른 접대 여성들에게서 박씨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짝퉁 시계로 접대 여성들을 홀린 뒤 성관계를 요구한다는 것.“나중에 그 시계가 짝퉁이란 사실을 알고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했는지 몰라요. 제 자신이 바보 같고 속물이란 생각에 어찌나 비참해지던지….” 김씨는 자신 말고도 다른 피해자들이 수두룩하지만 모두가 쉬쉬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명품’이라 속이고 성관계까지 요구

이렇게 당한 접대 여성들은 그 시계에 대해 일반 시계를 판매하는 곳에서는 진품과 짝퉁의 차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만들어진 SA급 시계였다고 입을 모은다. 원래 이 시계의 원가는 천만 원이 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짝퉁 물건은 시중에서 20~30만원이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다. 피해 접대 여성들이 한치의 의심도 없이 시계를 받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재벌 2세’라는 타이틀을 지닌 박씨의 화끈한 씀씀이 때문. 항상 고급 외제승용차에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 다니며 접대 여성들에게도 후한 팁을 줘 화류업계에서는 유명인사로 잘 알려져 있다.박씨가 술집에 오면 접대여성들은 서로 그 룸으로 들어가려고 싸움을 벌일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그가 짝퉁을 주었다고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터다.

‘짝퉁’에 속아 몸 버리고 후회

서울 강남의 유명 나이트클럽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이번에는 순금목걸이와 팔찌. 피해자는 모 여대에 재학 중인 이은혜(가명·23)씨. 이씨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생일잔치를 위해 나이트클럽에 놀러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화려한 금팔찌와 목걸이를 한 외모도 번듯하고 귀족 스타일의 남성인 오창수(가명·33)씨를 만나 서로 사귀게 됐다고 한다. “오씨를 처음 본 순간 럭셔리하고 귀티나는 외모가 마음에 들었어요. 다행히 그도 저를 찍었더라구요. 그래서 몇 차례 만남을 가졌고 이내 관계까지 맺게 됐어요.”넉달 후 이씨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이를 오씨에게 알렸지만, 오씨는 부담을 가져 피하기 시작했고 그 문제로 많이 다퉜다고 한다.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이전에 이씨가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300만원을 오씨에게 빌려줬던 것이다. 이씨는 당장 오씨에게 수술비용과 빌려간 돈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오씨는 “더 이상 만나지 말자”며 항상 하고 다니던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줬다고 한다. “가짜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돈이 없으니 금품이라도 받으라면서 줬으니까요. 진짠지 가짠지 어떻게 아냐고 목소리를 높였더니 제 앞에서 목걸이를 자르더라구요. 물론 자른 곳도 노란빛을 띠고 있어 도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안심을 했죠. 하지만 금은방에 확인해본 결과 ‘가짜’였어요.” 실제로 그녀가 보여준 금목걸이와 팔찌는 기자가 보기에도 외관상으로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전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이에 금은방 주인은 “가짜 금이 진짜 100% 순금을 가장한 사기가 먹힌다는 사실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요즘은 가짜 금도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많은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은 명품과 신데렐라의 꿈을 좇는 여성들의 잘못된 가치관 때문이다. ‘돈이 많다’며 허풍떠는 남자의 한마디에 모든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스스로를 명품으로 만들어 가야 할 우리네 여성들이 명품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보다는 ‘겉모습’을 중요시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명품 추구와 신데렐라 꿈을 좇는 현상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 명품확인 전문가 김성수 사장 인터뷰“아무리 잘 만들어도 짝퉁은 표시 나”
지난 7일 서울 청계천 황학동 롤렉스 시계매장. 기자는 이곳에 ‘명품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고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가 일하고 있는 매장을 찾았다. 길모퉁이에 있는 허름한 2평 남짓한 가게에서 김성수(55) 사장이 기자를 반겼다. 진열돼 있는 롤렉스 시계만도 40여개가 넘는다. 얼핏 보면 매장의 느낌상 진품이 아니라 짝퉁을 팔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그는 벌써 30년을 넘게 세계적인 명품시계인 롤렉스 시계만 다루고 있다고 한다. 기자는 김사장에게 홍콩에서 가져온 초SA급(정밀하게 만든 짝퉁) 시계를 내밀며 ‘진품여부’에 대해 물었다. 이에 김사장은 “어디 줘봐. 에이~ 이거 가짜야”라며 바로 시계를 다시 건넸다. 기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계의 외형적인 모습은 누가 봐도 완벽할 정도로 자세가 나오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계 속도 안 들여다보고 짝퉁이란 사실을 맞힌 것. “내가 이 생활만 30년이야. 시계를 만져만 봐도 알 수 있어. 그게 노하우지.”실제로 김 사장은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 찾아와 시계가 짝퉁인지 진품인지를 묻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때문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다고. 한번은 신혼부부가 매장에 찾아와 진열돼있던 시계를 보며 “요즘은 짝퉁을 진품처럼 이렇게 잘 만드니 진품 사는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본다”며 투덜댔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사장은 그들이 차고 있는 시계가 짝퉁으로 보였던 것. 이에 김 사장은 “내가 보기엔 자네들것이 가짜인 것 같다”고 말했더니, 부부는 “신혼여행 현지에서 산 것인데 당신 같은 사람이 뭘 알겠냐”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김 사장은 “짝퉁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짝퉁일 수밖에 없다”라며 “사람들도 속이 명품이어야지 겉이 명품인 사람은 가짜”라며 시원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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