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내년 복지예산이 100조 원을 넘어섰다. 본예산 358조 원 가운데 30%에 가까운 106조 원이 복지예산으로 편성됐다. 올해보다는 8조5000억 원이 늘어났다.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복지를 강조했던 박근혜 정부가 복지예산으로 돌릴 예산항목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심 끝에 불요불급한 예산을 깎고 지출 요소를 대폭 줄이며 기업의 탈세를 막으면 공약한 복지정책을 어지간히는 해낼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터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전방위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 기업도덕성 확립이라는 명제와 더불어 국가 재원확보를 꾀할 목적이 여실해 보인다. 기업 정의와 예산충당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정부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저기서 비명 터져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탈세’로 추징당한 기업은 ‘절세’라고 우기다가 검찰에 고발당해 막상 구속위기에 처해지면 돈은 다 낼 테니 신병만은 봐달라는 투가 된다. 문제는 이렇게 추징당한 세금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해당 기업들이 몹시도 억울해 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하나같이 이런 식의 생각을 갖고 있다면 기업 의욕이 사라지고 정권 바뀌기만 기다리며 세금 안 뺏기는 요령만 모색할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의 저성장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이러저런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크게 심각해 하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또한 걱정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 피라미드는 빠르게 변형되고 있다. 이 같은 시대상황에서 경제활동이 위축되면 걷히는 세금은 더 줄어들 게 뻔한 이치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세무조사를 받게 되면 조사사실을 ‘쉬쉬’해서 숨기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사실을 공개해서 동병상련의 연대를 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이 이렇게 옥죄이고 있다는 여론 점화를 노린 것이다. 세계경제는 미국의 출구전략 불안감 속에 중국마저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유럽경제도 휘청이고 있다.
이런 때 우리는 경제민주화라는 거대한 태풍이 재계를 강타해서 벼랑 끝을 느끼는 기업들이 동병상련으로 연대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반재벌’ ‘반기업’ 논리를 우선시 한 진보정권에서도 지금과 같은 기업압박은 없었다는 재계의 목소리다. 세무조사의 칼이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위해 남용되고 있다는 말이다. 재계 전체가 “그 다음 타깃이 어디냐”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혹 ‘다음 순번’에 포함될까 한시도 마음 놓지 못하는 좌불안석의 기업 사정이다. 정치권은 경제민주화 화두만 던져놓고 정쟁 회오리에 휘말려 논란 끝에 국회에 제출된 기업규제 완화 관련 법안은 손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다. 경제활성화 논리에 기업범죄가 덮어지거나 묻힐 수는 물론 없다. 그렇다고 경제계엄령 같은 서슬이 느껴져서는 곤란하다.
전방위적인 기업 세무조사는 ‘기본’이고 검찰조사는 ‘보너스’라는 자조적 분위기에서 신바람 나는 기업풍토는 꿈만 같다. 무엇이든 너무 지나치면 본질을 의심받게 된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분식회계에 대해 고해성사를 한 기업에 면죄부를 준 적 있다. 분배가 우선이었던 정권이 이렇게 한 이유가 미운 머슴놈 떡 하나 더 줘서라도 밭은 갈아야 되겠다는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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