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 황제 이경백, 성공에서 몰락까지

얼마전까지 강남 유흥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중에서 ‘이경백’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일 사회면 뉴스에서 다뤄지던 닉네임 그대로 그는 강남의 ‘룸살롱 황제’로 군림했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룸살롱 업계(?)를 평정했던 그는 뛰어난 머리 회전과 순발력, 관계기관들에 대한 광범위한 인맥관리 등을 기반으로 화려하게 등극했다.
하지만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불법도박, 세금탈루, 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후 최근 구속기간 만료로 보석이 허가됐다. 그의 화려한 등극과 급속한 몰락은 21세기 대한민국 밤문화 역사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삶을 따라가 보는 것은 바르게 살기보다는 잘 살기를 염원하는 이 시대, 한 젊은 남성의 어긋난 가치관의 한 면을 찾아나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여전히 ‘제2, 제3의 이경백’이 되고자 하는 밤의 세력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점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경백의 시작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전북 익산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랐던 그는 지긋지긋했던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대학을 졸업할 무렵 서울로 상경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번듯한 직장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경기도에서 옷장사를 하던 그가 새롭게 투신했던 곳은 바로 화류계.
북창동에서 룸살롱 삐끼와 웨이터로 ‘밤일’을 시작했던 그는 그때부터 서서히 성공에 대한 야심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반드시 이일을 통해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했던 그는 차근차근 돈을 모아 업소에 투자 지분을 늘려나가며 업계의 생리를 파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급속도로 룸살롱을 인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2007년 한화 김승연 회장 아들의 룸살롱 폭행사건 때였다. 당시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의 여파로 북창동 룸살롱의 업주들이 큰 타격을 입자 이경백은 그 틈을타 북창동과 부천 등에 서너개에 이르는 룸살롱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순식간에 ‘업주’로 전격 변신했다. 특히 이 시점을 전후로 이경백은 빠른 머리 회전력으로 주변업소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고 단속기관에 대한 지극한 인맥관리를 통해 주변의 다른 유흥주점 업주들이 상대 하기 힘든 거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경백은 지속적으로 상층의 단속기관에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예인과 운동선수, 지역의 정치인 등과 다양한 교류를 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정치에도 꿈을 두었다고 한다. 강남으로 북창동식 룸살롱을 이식시켜 적지않은 수익을 올리며 이제 그는 더 이상 ‘상경한 시골 청년’이 아니라 어엿한 강남 유흥업계의 큰 인물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상경한 시골청년에서 화류계의 '큰 손'으로

더 나아가 그는 기존의 유흥업주 사장들이 하지 못했던 과학적인 경영기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업소를 이용하는 고객은 물론이고 자신이 운영하는 10여 개가 넘는 다양한 유흥업종의 고객정보를 취합, 확보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이들에게 주기적으로 문자를 보내는 기법을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풀살롱’을 강남룸살롱업계에 확산시키며 결정적으로 유흥업계에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 룸살롱에서의 성매매는 우선 룸에서 술을 마신 뒤 자리를 파하거나 특별한 시간을 원하는 취객들만 인근 모텔이나 호텔로 이동하여 성매매를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경백은 이 모든 것을 통합하여 정해진 시간안에 술을 마시게 한 후 인근 숙박업소에서 성매매까지 이뤄지게 하는 이른바 ‘패키지식의 룸살롱시스템’을 생각해낸 것이다. 또한 술을 마시고 룸살롱 내부에서 바로 성매매를 하는 이른바 구미식룸살롱 시스템도 강남에 도입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은 많은 남성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그는 ‘매직미러 초이스’라고 하는 룸살롱 초이스시스템도 도입했다. 필리핀,마카오 등지에서는 일반적이었던 이 초이스 시스템은 내부에서는 외부가 보이지 않는 공간 안에 여성들이 있고, 남성들이 외부에서 여성들을 보면서 초이스를 하는 방식이다. 남성들은 룸 안에서 여성들의 얼굴을 마주봐야 하는 민망한 초이스를 하지 않아도 됐고, 여성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초이스되기 때문에 매번 남성들 앞에서 초이스를 하지 않아도 됐다. 손님과 아가씨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며 업소에 출근하는 모든 ‘나가요걸’들의 얼굴과 몸매를 여과없이 관찰할 수 있었던 이 시스템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렇게 강남 룸살롱 업계를 평정했던 이경백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본격적인 수익창출을 하기 위해 또다른 불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법 카지노였다. 압구정동 등 강남과 강북 몇 곳에 불법도박장을 설치하여 이른바 단속정보를 사전에 입수하는 등 그동안 쌓아놓았던 인맥관리를 쏟아부었는데 이 무렵 하루에도 수천만 원이 넘는 거액의 현금을 수익으로 쌓아 ‘신흥재벌’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취재진은 이경백과 함께 수 년을 함께 했다는 한 측근으로부터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사실 이경백이 진짜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은 도박장 운영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물론 룸살롱 운영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의 돈을 번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봐야 불법도박에 비하면 적은 액수다. 거기다가 룸살롱 운영에서는 나가는 돈도 적지 않았다. 각종 운영비며 인건비들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은 돈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도박장은 그에 비하면 수십, 수백 배의 현금을 안겨다 주었기 때문에 이경백에게 본격적으로 성공의 날개를 달아줄 수 있었던 것이다.”

업주들의 배척, 측근의 배신으로 구속

하지만 이경백의 이러한 사업방식이 기존 강남의 ‘정통 유흥업소 사장들’에게 곱게 비춰질리는 없었다. 그가 운영했던 북창동식 룸살롱이나 풀살롱등은 결국 오리지널 술장사라기 보다는 술과 유사성행위,술과 성매매를 패키지해서 돈을 버는 ‘포주’일 뿐이라 배척과 견제를 함께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보면 이경백 역시 그들을 선배로 대우하기 보다는 밟고 나아갈 다음 수순의 타겟으로만 인식했었다는 측근의 증언으로 볼 때 냉랭한 관계를 초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기 힘든 결코 섞일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경백은 단순히 인근의 업소들과 경쟁하는 것을 넘어서 상대업소를 직접 경찰에 신고하거나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하여 위축시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 이경백의 구속 사유에는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업주를 협박해 3000만 원의 돈을 뜯어냈다’는 것도 있다. 물론 이것이 어떤 의도였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경백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주변의 동종 업소들은 반드시 공격하거나 나중에라도 보복했던 것만큼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경백은 자신의 뛰어난 머리 회전력과 대학시절 배운 과학적 경영 기법의 도입, 술과 성매매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새로운 풀살롱 시스템, 관음증과 흥미를 자극하는 매직미러초이스 시스템, 그리고 경쟁이 될만한 업소에 대한 선제공격등을 기반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경영원칙으부터 이경백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주변사람들은 이경백이 몰락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동업자들과 수익배분을 두고 악화된 관계와 2인자를 두지 않는 독식체제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자신의 측근들마저 그를 외면하고 사람을 빼내 새로운 가게로 옮겨가는 등 쿠테타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힘을 잃기 시작했고 이들이 탈세 등에 대한 제보를 했다고 하는데, 실제 검거당시 그가 청담동의 한 업소에 들어가있다는 사실을 신고한 것도 그에게 복수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던 그와 척을 진 한 지인이었다고 한다. 인터뷰중 만난 또 다른 한 측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경백은 자신의 최측근도 잘 믿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그 자신이 이 바닥의 비정한 생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거기다가 이 바닥의 룰을 너무 무시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무리 술장사를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룰이 있고 밤에 일하는 사람들간의 프라이드 속칭 ‘가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경백은 그런 부분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업주들과 부하들이 보기에는 너무 잘난 체 하는 욕심많은 업주로 보였고 또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많은 업종을 인수하며 많은 돈을 번 탓에 자신의 생각만을 최고로 여기는 안하무인인 것처럼 여겨졌다.
최측근의 제보로 경찰에 구속되었던 이경백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경찰과 유착관계를 일삼았던 유흥업주로 전락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아 연일 사회면에 등장하기도 하였고 저축은행에서 20억원대 사기대출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되기도 했었다. 최근 이경백이 구속기간 만료로 보석허가 된 이후 이경백을 아는 사람들은 이제 이경백의 다음 행보에 대해서 또다시 설왕설래중인데 “이경백이 자유의 몸이 되면 자신의 재산을 해외에 빼돌려놓았다는 소문이 예전부터 있었으니 ‘한국을 떠야 이민을 가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아직 이경백의 돈과 힘과 인맥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에서 배운 도둑질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경백의 뒤(?)봐 준적이 있다는 한 주먹세계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경백 다음 행보 또다시 설왕설래

“아마도 이경백은 곧바로 재기를 하거나 반격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은 상당한 기간 잠수를 타면서 재기의 기회를 엿보지 않을까. 자신의 몰락을 부채질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차분히 조사하고 반격의 시나리오를 짜면서 결정적인 시기가 오면 그때 모든 일을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경백은 그전보다 더 확실한 강남의 큰손이 될지도 모른다. 몇 번의 구속과 법정공방을 통해 법적용의 테두리까지 넘겨보게된 경험이 있으니 이제는 더 노련하고 프로페셔널하게 강남을 장악하는 진행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향후 이경백이 어떤 방식의 행보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올바른 가치관이나 철학없이 어떤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겠다고 다짐했던 우리시대 또 하나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던 룸살롱 황제 이경백이 삶의 과정 하나하나가 목표가 아닌, 삶의 목표를 위해 과정을 도외시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어떤 방식으로 든 그가 다시 재기를 시도할 것이라는 것만큼은 취재중 만난 대부분의 사람이 말하는 공통된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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