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아닌 남자이고 아내 아닌 애인 같은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직장인들에게 동기의 존재는 큰 힘을 발휘한다. 힘들 때 커피 한잔을 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거나 업무를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이뿐인가. 퇴근 후 술 한 잔 기울이다보면 직장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동기의 역할을 이성이 맡아준다면 어떨까. 직장인들에게 오피스 스파우즈(office spouse·사무실 배우자)라는 말은 이제 흔한 용어가 됐다. 실제 부부나 애인관계는 아니지만 직장에서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성 동료를 뜻한다. 아내 같은 여성 동료는 오피스 와이프(office wife), 남편 같은 남성 동료는 오피스 허즈번드(office husband)라고 부른다.

오피스 와이프 덕분에 출근길이 즐거운 직장 남편들

사내에서 내 편이 돼 주는 든든한 오피스 허즈번드

 

최모(남·43) 과장은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즐겁다. 직장생활 15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요즘같이 출근길이 즐거운 때는 없었다. 바로 홍모(여·34) 대리 때문이다. 홍 대리는 지난해 최 과장 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기업의 고객만족팀을 이끌고 있는 최 과장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고객의 불평불만을 해결하다보니 야근을 하기 일쑤다. 시간이 없다보니 입사 동기와 퇴근 후 술 한 잔 할 시간도 없다.

상사는 매일같이 고객 불만을 빨리 해결하라고 쪼아대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건의 고객 불만사항을 접수하다보니 쌓이는 건 업무와 스트레스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홍 대리가 고객만족팀에 들어왔다. 미혼이었던 홍 대리는 최 과장이 안쓰러웠는지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같이 업무를 처리해줬다. 야근을 하다보니 늦게 퇴근하기 일쑤였고 최 과장은 홍 대리를 집까지 바래다주게 됐다.그러다 둘은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후 식사나 커피 타임을 갖는 시간도 많아졌다. 따져보면 집에 들어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같이 있게 됐다.

최 과장은 “말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보니 회사에서 업무 효율도 높다. 처음엔 서먹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문제를 이야기하거나 부부의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홍 대리도 “처음엔 상사이다 보니 좀 어려웠지만 과장님이 의외로 젠틀하고 쿨해서 오피스 스파우즈로 지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변에서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경우도 있지만 불륜 등의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10명 중 3명

동료에 정서적 의지

요즘 회사에서는 최 과장과 홍 대리처럼 오피스 허즈번드와 오피스 와이프로 지내는 오피스 스파우즈 커플이 생각보다 많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는 지난해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직장인 남녀 6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오피스 스파우즈가 있다”라고 답한 직장인이 29.7%였다. 직장인 10명 중 3명이 배우자가 아닌 동료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기혼자들이 미혼자들에 비해 오피스 스파우즈가 있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설문 결과 오피스 스파우즈가 있다고 대답한 기혼자들은 40.2%, 미혼자는 절반 수준인 24.2%다.직급별로 살펴보면 과장급이 51.1%로 과반이 조금 넘는 수치를 기록했다. 이어 차부장급이 41.5%다. 또 64.9%에 이르는 직장인들이 오피스 스파우즈 상대를 같은 부서에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 두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피스 스파우즈 대상자는 동기가 50%, 후배가 30.4%였으며 상사나 선배는 19.6%에 불과했다.오피스 스파우즈를 바라보는 시선은 당사자와 주변인 간에 차이가 컷다. 오피스 스파우즈가 있다고 답한 직장인들은 오피스 스파우즈가 ‘업무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관계’ 48.5%, ‘회사에서 만난 친구’ 33.5%라고 답한 반면, 없다고 답한 직장인들은 ‘나쁜 소문을 일으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관계’ 25.9%, ‘지나치게 사적인 관계로 보여 불편하다’ 23.7% 등의 의견을 보였다.

이밖에 배우자 또는 애인이 오피스 스파우즈를 두는 것에 대해서는 남성 직장인 51.0%와 여성 직장인 59.9%가 반대했다. 이유는 ‘나 이외의 이성과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가 47.8%로 가장 많았다. 오피스 스파우즈의 존재는 직장생활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둘 사이에 인간의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직장은 물론 서로의 가정에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불륜으로 가서

해고·가정파탄까지

가장 심각한 결과는 불륜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지난해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에서는 동료이며 불륜관계를 유지하던 한모(남·36)씨와 이모(여·36)씨를 징계하고 사직할 것을 권하자 한씨가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한씨는 기혼인 상태로 이씨와 불륜관계를 맺었다는 의혹과 함께 근무태도불량 등으로 권고사직을 당했다. 나이가 같았던 이들은 대부분의 업무를 같이 해결했고 출장도 같이 갔던 것은 물론 업무 외에도 잦은 만남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한씨의 소문은 집에까지 전해져 급기야 이혼을 하기에 이르렀고 두 아이의 양육권은 아내에게 넘겨야 했다. 이에 화가 난 한씨는 지역노동위원회 등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모두 기각됐다.

결국 한씨는 법원에 소송했지만 재판부도 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여러 정황상 한씨와 이씨가 정상적인 동료나 친구관계로 보이지 않는다. 또 특정 직원 사이 불륜이나 부적절한 관계는 사내 분위기를 저해할 우려가 커 징계사유로 삼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오피스 스파우즈는 스캔들에 휘말릴 확률도 높다. 대기업에 다니던 황모(남·45) 과장은 사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매년 승진 1순위를 차지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 성실한 가정생활을 했고 준수한 외모로 직장 내 여직원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하지만 황 과장은 한순간 사내 불륜남으로 낙인 찍혀버렸다. 사건은 황 과장이 야근을 하던 지난 여름 문모(여·30) 직원이 일을 도와주겠다면서 야근을 하고 난 다음날 벌어졌다. 황 과장은 시간이 너무 늦어 문씨를 집에 보내려 했으나 문씨가 한사코 일을 도와주겠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에 야식을 사왔다.

이때 황 과장이 맥주를 사온 것이 실수였다. 황 과장은 날씨가 너무 더워 시원한 맥주로 목만 축이려했는데 피곤한 나머지 술기운에 빠져 문씨와 함께 사무실에서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각자의 책상에서 잠이 들었지만 밤새 옷매무새는 흐트러져있었다.

당시 문씨는 스커트를 입었던 데다 일찍 출근한 일부 직원들이 이 광경을 부풀려 소문을 내는 바람에 이 둘은 졸지에 사내 불륜남녀가 돼 버렸다. 결국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황 과장은 회사에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고 얼마 뒤 문씨 또한 회사를 스스로 그만뒀다.

의사소통 부재가 원인

스캔들 확대 재생산도

사내에서 오피스 스파우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미혼보다 기혼에게 오피스 스파우즈가 더 많은 결과를 살펴보면 부부간의 소통부재를 가장 큰 이유로 지적할 수 있다. 부부간의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생기다보면 자연스럽게 친구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의 얘기다. 이 경우 대부분 집에 있는 아내 또는 남편이 친구 역할을 해줘야 하지만 이러한 관계가 쉽지 않다.

결국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이에 대해 잘 아는 내부인을 만날 수 밖에 없고 이러한 만남이 오피스 스파우즈로 이어지게 된다. 남편보다 남편 같고 아내보다 아내같은 동료, 이들이 바로 오피스 스파우즈다.하지만 사람인 이상 자주 만나고 접촉을 하다보면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감정을 철저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이것이 쉽지 않다.

결국 부부간 의사소통이 회복돼야 오피스 스파우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아내·남편이 아닌 사람에게 언제까지 나의 힘겨움을 토로할 수 있을까. 부부 또는 가정의 의사소통이 회복된다면 건전한 오피스 스파우즈도 가능하다.

오피스 스파우즈 관계는 사내에서도 항상 관찰의 대상이 되는 만큼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스캔들은 항상 사실이 왜곡돼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부하 직원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는 직장상사 등이 타깃이 되거나 질투의 대상이 되는 누군가의 자그마한 실수가 표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사내에 하우스 스파우즈를 뒀다면 각별히 더 행동에 조심해야 한다.

직장 내에서는 라이벌 관계에 있거나 자신에게 적대적인 동료를 음해하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 퍼뜨리는 일이 흔하다. 살짝 웃어주는 모습, 함께 커피 한잔을 먹는 모습조차도 직장 내에서는 순식간에 스캔들로 퍼져나갈 수 있다.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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