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활성화 안 되는 고미술 시장

중국은 자국의 문화재를 국내외에서 수많은 수집가가 아주 고가에 사들이고 자랑한다. 그래서 중국 고미술시장은 전 세계에서 대호황을 이룬 중국문화재는 1990년대 전반에 비하면 지금은 10배에서 100배 정도 가격이 올라 그 가치를 한껏 드높이고 있다. 우리 문화재는 개인도 안 모으고 국가도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다보니 1990년대 전반에 비해 10배 이상 값이 떨어져 우리나라 고미술 시장은 거의 고사상태에 있다. 여기에도 단비가 내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우리 고미술 시장이 왜 활성화가 돼야 하는가. 과거 서세동점 시기 이래로 먼저는 서양인이, 다음엔 일본인이 동양의 고미술품을 약탈해가고 또 엄청나게 사갔다. 중국에서는 문화혁명 때 문화재가 많이 유출됐다. 그래도 중국은 역사가 깊고 큰 나라이다. 또 미술공예문화가 성황을 이뤄 조각, 회화, 특히 도자기를 비롯한 공예품이 참으로 수 없이 많다.
 
일본도 우끼요에 등이 많이 유출됐다. 하지만 회화, 공예, 조각, 문화가 성황을 이뤄 아직도 조각, 회화, 공예품 등이 수 없이 많다. 우리는 작은 나라이고 사치와 치장에 대범해 미술품에 치중하지 않았다. 애초에 성황을 이루지 않아 조각, 회화, 공예품의 수량이 적었고 외침이 많아서 그나마 많이 없어지고 남은 것이 얼마 없다. 우리 미술 문화재는 수량이 적지만 개성이 강하며 독특하고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미술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독창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놀라워하고 찬탄해 마지 않는다. 그런데 세계에서 우리 문화재를 접해본 사람이 아주 적기 때문에 공감하는 사람도 적고 공부하는 사람도 아주 적다.
 
▲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청화로 송죽문을 그려넣은 조선 전기의 백자 항아리로 대한민국의 국보 제176호로 지정됐다. 주둥이 안쪽에 ‘弘治二年’(홍치 2년)이라는 명문이 있어 조선 성종 20년(1489년)에 만들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5세기를 대표하는 청화백자 항아리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주둥이 일부가 파손되어 수리됐다. 이 항아리는 원래 구례에 있는 화엄사의 불전에 놓아 꽃을 꽂아 사용했다. 하지만 두번이나 도난당했던 것을 찾아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현재 동국대학교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미술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데 외국 사람이 어떻게 우리 미술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고 더욱이 수집하겠는가. 이미 언급했지만 중국 미술 문화재는 중국인이 아끼고 사랑하니까 값이 오르고 박물관·미술관에서, 또 개인이 사들이니까 전 세계에서 그 가치가 치솟는다. 일본은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이다. 전 세계에 중국문화와 일본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는 수 없이 많다. 세계 공공 사립박물관·미술관에 중국전시실, 일본전시실과 전문 학예관이 없는 곳이 없다. 중국, 일본 문화재 관련 책이 쏟아져 나온다. 요즘 중국에서는 미술문화재 연구 홍보 책자가 물밀 듯 쏟아져 나온다. 내용도 훌륭하고 편집 제본장정도 훌륭하다. 값이 비싸도 전 세계에 퍼져 나가고 있으니 중국고미술의 연구 발전과 중국 현대미술의 앞날에 탄탄대로가 펼쳐진 셈이다.

휴면상태에 빠진 
우리 미술문화재
 
우리는 어떠한가. 199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미술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해 수집하는 박물관 미술관과 개인이 어느 정도 있었다. 전 세계 박물관에서 한국실을 만들려고 애쓴 곳이 여러 곳 있어서 우리 미술 문화재의 가치가 중국문화재보다 훨씬 높았었다.
 
그러한 상황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세계의 박물관·미술관에 우리 문화재를 연구 전시하는 곳이 늘어 우리 미술문화재에 대한 연구와 홍보가 지금보다 훨씬 성황을 이뤘을 것이다. 우리의 훌륭한 미술 문화재를 국가기관과 공·사립 박물관과 개인이 사들이고 책으로 인터넷으로 세계에 널리 홍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1990년대 말경부터 지금까지 문화재를 사는 기관도 개인도 거의 없어 휴면상태와 같다. 세계의 어느 박물관·미술관도, 우리나라의 어느 미술관 ·박물관도 오래전 수집했던 것만 가지고 연구·전시·홍보를 하다보면 새로운 미술품을 볼 수도 없고 참신한 연구 홍보책자와 실적도 나올 수 없다.
 
정성이 깃든 참신한 새바람을 불어 넣어야 한다. 이제는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가 한국  고미술이 중국, 일본이상으로 세계인의 찬사와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방도를 찾아 실행에 옮길 때다. 우리 고미술 문화재는 우리의 뿌리요, 우리의 자존심이요, 자부심이고 자긍심이다. 이러한 높은 문화에서 비롯된 민족적 자부심과 자긍심에서 창조경제도, 창조과학도, 창조문화도 힘을 받아 활발히 진행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일은 정부의 능력과 재원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정부가 책임지고 해야 할 시책능력과 지출해야할 예산이 태산보다 많은데 어느 여가에 우리 고미술과 문화재에 햇빛이 들겠는가. 기업에게 사업의욕과 용기와 자부심을 불어 넣어야 한다. 우리기업이 우리전통미술에서 현대와 미래 미술문화발전에 원동력이 되고 자부심이 돼야 한다. 
 
 
백자 달항아리
 
백자 달항아리는 1991년 1월 25일 대한민국 국보 제262호로 지정됐다.
 
입언저리가 예각을 이루며 은행알처럼 깎여졌고 몸체는 풍만하고 둥근 달항아리 모양의 원호를 이뤘다. 굽은 입부분과 비슷한 입지름을 가졌으며 몸통와 중간 부분에는 성형에 어려움이 있어 윗 부분과 아래 부분을 따로 만든 후 두 부분을 이은 이음자국이 남아 있다. 유색은 설백색의 백자로 일부 기면에는 담청을 머금은 유약을 발라 은은한 광택이 있다.
 
굽다리에는 가는 모래받침으로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으며 저부 중앙에는 터진 홈이 나있다. 조선시대 18세기 전반인 숙종ㆍ영조 연간의 조선사회에 대한 자긍심과 자기 세계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진 시기를 배경으로 광주의 궁평리 오향리 금사리 요지에서 관어용의 백자 큰항아리로 제작됐다.
 
현존하는 백자 달항아리 중 크기가 대형이다. 풍만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이 시기의 백자 달항아리를 대표할 만하다. 
 
설백색의 흰 맛과 달처럼 둥근 맛의 이러한 항아리는 조선시대 말경에 대가집에서 젓갈이나 간장 등을 담아 사용하였다는 보고도 있다. 조선시대 백자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현재 우학문화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사진=한국미술발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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