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승진한 같은 회사 남편 친구 등에 면도칼 등 동봉 협박“설마하며 아니길 바랐는데… 정말 그 친구가 협박편지를 보낸 것이 맞습니까?”지난 21일 6년 동안 협박성 괴편지에 시달려온 30대 주부는 경찰서에서 범인의 이름을 듣고 너무 황당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가정을 그토록 괴롭혀 온 협박편지를 보낸 주인공은 다름아닌 절친한 친구였던 것. 협박편지로 괴로워하던 자신을 위로해주던 친구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에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감히 내 남편을 탈락시켜.’남편이 승진에서 누락하자, 앙심을 품고 회사간부와 남편 친구 등 50여명에게 6년간 1,000통의 협박편지를 보내온 엽기적인 30대 주부가 경찰에 검거됐다.

전남 영암경찰서는 21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정선미(36·가명,여)씨를 긴급체포했다.남편 승진 탈락하자, 6년간 1천여통 편지테러 경찰에 따르면 정씨가 협박편지를 쓰게 된 동기는 ‘남편의 승진’누락 때문이었다. 정씨는 지난 97년 H중공업에 근무하는 남편이 반장 진급에서 떨어지자, 분을 삭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남편보다 3개월 늦게 입사한 남편의 고교 동창인 A씨가 남편보다 일찍 반장으로 승진하게 된 것은 정씨를 더욱 배 아프게 만들었다. 이에 정씨는 결국 편지를 통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정씨의 첫 번째 편지는 97년 5월 중순경, 회사 사장과 간부들에게 전달됐다. “A씨를 당장 해고시켜라”, “회사 건물을 폭파하겠다”는 둥 편지 내용은 온갖 욕설과 협박성 글로 가득 채워졌다. 이렇게 시작된 정씨의 편지테러는 무려 6년간 지속됐고, 해가 거듭해 갈수록 점점 협박수위도 높아갔다.

정씨가 회사관계자와 A씨 주변에 보낸 1,000여통의 편지 중 100여통에 협박의 의미로 면도칼을 동봉했고 일부러 빨강색 글씨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또 지난 2001년 탄저균 백색가루 공포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당시에는 밀가루를 함께 넣어 보내는 엽기행각까지 벌였다. 정씨의 화풀이는 남편 보다 앞서 승진한 A씨의 가정을 향해서도 진행됐다. 정씨는 A씨에게 직접 협박편지를 보낸 것은 물론, A씨의 아들(12)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다. 실제 정씨는 A씨의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장에게 “살인마, 패륜아의 아들을 교육하지 말라”, “○○○의 아들을 퇴학시키지 않으면 재앙이 찾아온다”, “당장 전학 보내라”는 둥 수십여통의 편지를 보내 협박했다.회사측은 정씨의 편지를 받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 같은 편지가 계속되자, 경찰에 신고했고 자체적으로 범인색출전담반까지 설치했을 정도로 골치를 앓았다.

경찰 역시 무차별적인 테러 편지를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지문조사를 의뢰하는 등 집중수사를 벌였지만 6년이 지나도록 범인을 찾지 못했었다. 실제 정씨는 6년간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같은 목포 등 인근 지역을 돌며 편지를 부치고, 이름도 협박 대상자였던 A씨의 이름을 사용해 편지를 보냈다. 심지어 정씨는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을 낀 채 편지를 써 경찰의 추적을 피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남편에게 수사망 좁혀오자, 일부러 자신의 집에 협박편지 쓰기도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경찰은 협박편지가 회사 내부 사람의 소행으로 보고 정씨의 남편을 포함, 직원 6,200여명을 상대로 필적감정 등 끈질기게 조사를 벌였고 마침내 최종 용의선상에 20여명으로 좁힌 채 수사를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문구점 주인으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경찰이 관내 문구점을 탐문 조사하면서 한 주부가 지속적으로 면도칼과 편지지를 사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경찰은 곧장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정씨의 집으로 향했고 책장에 있던 백과사전에서 협박편지를 발견했다. 그 편지는 경찰의 수사망이 자신의 남편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알고 정씨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집에 편지를 보냈던 것. 그러나 이 편지는 정씨의 소행임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했다. 편지의 필체와 정씨의 필체가 같았다. 결국 정씨는 “A씨 때문에 남편이 승진에서 누락된 것이 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남편 모르게 이같은 일을 벌여왔다”며 모든 범행 사실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경찰조사결과 정씨 가정과 A씨 가정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절친한 사이였고, 정씨는 A씨의 부인과 친구사이로, 그녀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까지 한 것으로 밝혀져 주변을 당황케 했다. 이 때문에 A씨의 부인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정씨의 짓이 진짜 맞느냐”고 재차 확인했을 정도. 한편, 정씨는 지난 6년간 피해자의 가정을 찾아 그의 부인과 함께 협박편지에 대해 걱정하는 척했다. 특히 두 가정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학부모회의에 참석, 대책을 논의하는 등 자신의 범행을 철저히 감춰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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