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글로벌 화학·소재기업 변신

한국 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마흔 한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미래 성장동력을 육성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코오롱이다.

▲ <사진=뉴시스>
현 코오롱인더스트리 고문인 배영호는 1970년 입사 후 구미공장에서 근무했다. 사업장 생산파트에서 근무하던 그는 1975년 갑자기 뉴욕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파격적인 인사였다. 이는 전례가 없던 일로 당시 그의 업무추진력이 인정받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코오롱은 업무추진력 하나만을 믿고 배 고문에게 파격적인 인사를 시켰다. 이에 따르는 부담도 컸다. 그러나 결국 배 고문은 많은 우여곡절 끝에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 뉴욕지사 개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만년 적자사업
2년 만에 흑자로

코오롱은 1981년 귀국한 그를 타이어코오드 사업 부장으로 승진시켰다. 하지만 당시 산업자재 사업부는 만년 적자에 가동률도 형편없었다. 공장 가동률은 40%를 밑돌았고, 가동하면 할수록 적자만 불어나는 상황이었다.

상황을 꼼꼼히 분석한 그는 거래선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챘다. 납품하는 거래처가 금호타이어(당시 삼양타이어) 한 군데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가 파업을 하거나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 타이어코오드가 직격탄을 입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매출구조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세계 최고의 타이어 회사인 미국 굿이어 타이어를 공략했다. 품질을 원하는 수준으로 높이고 설득을 반복했다. 그의 끈질긴 노력 끝에 거래는 1년 만에 성사됐고, 타이어코오드사업은 사장 부임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매출 역시 비약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부도 직전 제약사업
살린 ‘경영교과서’

이후 코오롱은 그에게 원사 본부장과 구미 공장장을 맡기며 거침없는 질주에 기름을 부었다. 원사 본부장 재직 당시 그는 섬유수출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그간의 공로와 경영능력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으며 ‘전설’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1998년 11월 코오롱은 배 고문을 부도 직전의 코오롱제약 사장으로 발령을 냈다. 배 고문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동안 워낙 상태가 안 좋은 사업을 자꾸 맡다보니 내가 기업인이라기보다 의사라는 마음가짐이 들 때가 많았을 정도다”라고 말할 정도다.

배 고문은 우선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놓은 뒤 사업구조를 재편하기로 작정했다. 부임즉시 300여 명의 직원들에게 1인당 100만 원의 격려금을 지급했다.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당시 19억 원의 적자와 부채 비율, 차입금 비중도 높아 회사가 조만간 정리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 고문은 “인력 구조 조정은 없으니 믿고 따라오라”고 직원들을 다독거리며 수익성 위주의 사업구조로 재편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전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뛰어줬다.

그 결과 코오롱제약은 이듬해부터 흑자로 돌아섰고, 2004년 영업이익 120억 원을 기록한 우량기업이 됐다. 이러한 턴어라운드 성공스토리는 제약업계의 ‘경영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석유화학사업에서도 지속적인 투자와 R&D 확충을 통한 석유지의 핵심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석유화학사업에서도 역시 1천600억 원에 불과했던 연 매출액을 4천500억 원으로 증가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기업 회생 실현
나아가 글로벌화까지

이후 코오롱은 주력사업의 강화 및 고부가가치 사업의 육성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탄탄히 하는데 매진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파업과 사업 부문의 적자로 인해 회사의 경영 실적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노후 설비의 스크랩, 자산매각 등 과감한 결단을 신속하게 실행에 옮겨 사업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완료해나갔다. 경쟁력 확보와 수익성 위주의 경영도 성공적인 턴어라운드 실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2007년에 석유수지, 고흡수성수지, 페놀수지 등을 생산해온 코오롱그룹의 계열사인 코오롱유화와의 합병을 성사시킴으로써 매출 2조 원대의 ‘종합화학·소재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 지금의 코오롱을 있게 해준 원사사업을 2008년 분할함으로써 수익성 위주의 사업구조로의 재편을 가속화했다.

합병과 분할 이후 코오롱은 3대 고부가가치의 전략사업군(산업자재, 화학, 필름·전자재료)을 중심으로 코오롱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흑자경영 체제를 견고히 구축해 나갔다.

특히 이 과정에서 그동안 코오롱의 모태 사업이었던 원사사업을 분할한 것은 미래 성장 동력을 구축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사업이라도 탈피할 수 있다는 과감한 결단력을 보여준 사례다.

이렇듯 코오롱은 사업을 내다보는 혜안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코오롱그룹의 여러 사업들을 위기에서 더욱 견고하게 성장시켰다. 이는 코오롱이 글로벌 기엽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 뿐만 아니라 노사화합으로 직원들은 조직문화를 혁신적, 친화적으로 바꾸는 경영에 적극적으로 따르게 됐다. 새로운 노사 문화에 힘입어 코오롱은 2008년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선정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섬유소재 분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사진=뉴시스>

기술개발·인재경영으로
사업영역 확장

1957년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생산한 코오롱은 산업소재, 전자소재, 화학으로의 사업영역을 새롭게 구축하면서 21세기 글로벌 화학소재 기업 구현을 위한 사업구조 고도화에도 힘썼다.

노동집약 사업인 섬유사업에서 최첨단 소재사업으로의 이러한 변화는 사업 아이템만큼 인재들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강조해온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정보공유 체계를 구축해 임직원들에게 다양하고 전문적인 정보공유가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KIKS(Kolon Information Kno wledge System)는 코오롱의 산업자재 및 필름·전자소재 등의 PTA, EG를 기반으로 한 제품에 대한 정보공유를 위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으로 거래선과 시황, 구매, 제품, 신기술에 대한 항목별로 세분화된 지식을 공유해 시스템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코오롱은 산업소재, 필름을 포함해 석유화학까지 사업영역의 스펙트럼이 비교적 넓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업 부문별 지식경영 체계를 전문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지식경영 시스템을 사업 부문별로 이원화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임직원들이 자신의 업무에서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식교육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인재경영과 더불어 코오롱은 60년간의 축적된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기술 역량 강화를 해왔다. 한국의 섬유, 소재 및 화학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음에도 향후 100년 기업으로서의 역량을 확고히 하고자 기술 역량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코오롱은 아라미드 소재의 ‘헤라크론’을 탄생시키며 미국과 일본으로 양분화된 세계 시장에 당당하게 진출했다. 아라비드는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5배 강하고, 섭씨 500도에서도 끄떡없는 세계 최고의 강한 섬유로서 방탄복합소재에 활용되고, 가공이 편리해 고성능 타이어 및 광케이블 보강재 등에도 사용되고 있다.

필름 사업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포장용 필름 분야에서 고부가가치의 전자재료용 필름으로의 기술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뤘다.

또 산자 부문의 안정사업인 에어백사업에는 OPW 에어백 제품의 생산에 주력해 매출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코오롱은 1990년부터 에어백 개발에 착수했으며 1994년 자체기술로 에어백용 코팅, 비코팅 원단 및 쿠션 개발에 성공해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자동차에 코오롱제품이 장착되고 있다. 2006년에는 일본 토요타 차량용 제품에 납품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영위해왔던 원사사업 분야에도 기술혁신을 강행했다. 그 대표적인 제품이 초극사 인공피혁인 ‘샤무드’다. 범용 원사제품을 생산하던 정리하는 대신 초극세사분야에 매진한 결과다.

샤무드는 가공성과 내구성이 우수하고 품질이 좋아 선진국과 자동차소재 및 명품소재 등에 많이 사용되는 제품이다.

또 섬유 1G으로 900km 길이를 가지는 100분의 1데니아(denier) 초극세사 생산기술 개발에도 성공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21세기 선두
화학소재 기업 도약

이처럼 코오롱은 ‘글로벌 TOP 종합 화학·소재기업’을 21세기 기업비전으로 설정해 적극적인 경영전략을 수립해왔다.

2000년대 들어와서 주력 제품인 화학섬유, 포장용 필름 등이 중국의 대규모 증설과 원료 상승으로 경쟁력이 약화되고, 노사대립 등의 악조건이 겹치면서 어려움을 격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혁신’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기업으로 코오롱을 만들게 됐다.

이로써 코오롱은 21세기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Global Top 종합 화학·소재 기업’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 오늘도 도전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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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시은 기자>
<출처=대한민국 초우량기업 10 中│김경준·국제경영원 지음│원앤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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