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노무현 대통령이 ‘신(新)코드 인사’를 통해 공직사회를 장악하기 위한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에도 ‘코드 인사’ 시비를 불러일으켰지만 지금 시도하는 코드 인사는 초반의 미비점을 보완한 새로운 형태란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신코드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발탁 대상 인재의 범위가 광범위해졌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초반에 정치권에서 자신을 도운 386 세대들과 교수자문단에 몸담았던 학자 등 주변 인물을 청와대와 정부 요직에 집중 배치했다. 이는 자기와 정치철학이 맞아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인물을 곁에 두겠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론 그만큼 인재풀이 빈약하다는 한계에 따른 것이었다.이런 식의 코드인사로 나라 일을 꾸려 본 결과 ‘국정 아마추어리즘’ 이란 비판을 들었고, 야당으로부터 “참여정부란 이름을 팔지만 오로지 ‘코드인사’만이 참여하는 ‘회원제 정부’ 로 전락했다”(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는 등의 지적을 받아야 했다.

이같은 비판이 거세지자 노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개각에서 경제부총리에 정통 경제각료인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기용하는 등 ‘실용 인사’로 선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여권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이 언제 보수를 배척한 적이 있느냐”면서 개혁과 안정을 조화시키기 위한 차원이라고 강조했지만, 정치권에선 코드 인사의 한계를 느낀 노 대통령의 전술 수정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같은 전술 수정도 ‘개혁파’ 참모와 ‘안정파’ 참모의 부조화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론 부동산 대책을 둘러싸고 이헌재 부총리와 현정부 초기 코드 인사로 발탁된 대표적 학자인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충돌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정부내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갈등과 알력이 있었다.결국 참여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상반된 이념과 인식을 갖고 있는 두 세력을 억지로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대신 개혁 마인드가 강한 인재풀을 넓히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 결과 코드도 맞출 수 있고, 아마추어리즘이란 비판도 비켜갈 수 있는 몇가지 인재등용 방식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청와대에선 내부적으로 그 방식을 각각 ‘청빙(請聘) 제도’, ‘심마니 제도’라 부른다. 또 청와대가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 비서실 출신들의 현장 투입 방식이 있는 데 이것들은 모두 ‘신코드 인사’의 수단으로 봐도 무방하다.신코드 인사의 기본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선 청와대 핵심 인사가 최근 사석에서 피력한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군대에서 낙하산 부대는 원래 전황이 어려운 지역에 침투해 악조건을 극복하고 전세를 호전시키는 특수 역할을 맡는다. 그런 의미로 참여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해석하면 결코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노무현 대통령의 인사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는 이 고위 관계자는 그러면서 “참여정부의 지향점은 구시대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 청산이다.

그 과정에서 기득권을 지기키 위한 사람들의 반발이 없을 수 없다. 그런 반발이 있는 집단을 효율적으로 ‘진압’하고 시대적 조류에 동참시키기 위해선 개혁 마인드로 무장된 낙하산 부대를 투입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청와대 정찬용 인사수석이 최근 내부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과의 인터뷰를 통해 “220V에 110V 코드를 꽂으면 타버린다. 그런 점에서 코드는 맞아야 한다”면서 “노 대통령과 철학이 안 맞으면 같이 못한다”고 당당하게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같은 언급은 결국 참여정부 인사 정책의 키워드로 굳어진 ‘코드 인사’를 합리화시킨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낙하산 부대를 선발하는 방법이 다양화됐다는 점에서 ‘신코드 인사’라 부를만한 것이다. 정 수석도 “다만 역량이 있으나 없으나 우리끼리 한편이니까, 끼리끼리 해먹는 코드는 안 된다”며 “역량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인사에 적용받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었다.

청빙 제도

청와대가 올해부터 공기업 및 정부 산하 기관장 적임자를 고를 때 활용하기로 한 제도다.역대정부는 물론, 현정부 초기에도 공기업과 정부산하기관장은 선거공신 등을 위한 ‘선물용 감투’였다.참여정부는 이런 폐단을 없앤다며 ‘공모제’를 실시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실효가 없었다. 공모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인물이 모처의 전화 한통화에 낙마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통합거래소 이사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외압설 논란이 벌어진 것이 밖으로 표출된 하나의 사례에 해당한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착안된 청빙 제도는 이사회나 인사추천위원회 등이 필요한 능력을 갖춘 인사를 적극 영입해 바로 발령하거나 공모한 인사들과 함께 경쟁을 시켜 적임자를 선발하는 방식이다.기존 개념의 낙하산 인사와 다른 점은 청와대나 정치권이 아닌 이사회나 인사추천위가 적임자를 찾아 나서고, 만일 다른 희망자가 있을 경우 경쟁을 시킨다는 점이다.물론, 청빙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선 청와대와 정치권이 일절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인사는 “우리가 도입한 공모제의 폐해를 스스로 고치려고 영입과 공모 방식을 혼합해 도입하려는 제도인데 그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만일 이런 인사 방식이 정착될 경우 비정상적인 정치권으로부터의 낙하산 인사가 어려워짐은 물론, 재경부·감사원 등 정부 각 부처 출신 인사들의 관련 기관장 독식 구조도 무너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 학계·기업 등 각계 전문가와 정당 출신 인사들이 상당수 기용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지금까지는 이른바 ‘모피아(mofia)’로 불리는 재경부 관료 출신들이 금융기관장을 독식하다시피 하고, 다른 정부 기관에서도 산하 공기업 등을 퇴직자의 ‘잔여 근무처’쯤으로 활용해 왔다.

심마니 제도

‘심마니가 산삼을 찾듯이 정말 필요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심마니 제도 역시 청빙 제도와 본질은 비슷하다.다만 심마니 제도는 청빙 제도 보다 더욱 적극적인 인재 발굴 방식으로, 파격적인 보수를 제시하면서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적임자를 찾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세계적 석학인 로버트 러플린 박사가 KAIST 총장을 맡은 과정이나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주미대사에 내정된 것을 생각하면 심마니 제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심마니 제도를 구상하게 된 것은 공모제를 하면 진정한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물이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굳이 자리를 탐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공모원서를 제출하지 않으려는 인재나 다른 사람과 경쟁하기 싫은 인물을 필요에 의해 영입하기 위한 제도인 셈이다.그러나 청빙 제도든, 심마니 제도든 삼고초려 대상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과연 그 인물이 그 자리에 적임자인지 객관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참여정부와 코드가 맞는지를 고려하게 되고, 일단 선택되면 낙하산 부대가 되어 ‘적진(기득권층이 장악하고 있는 기관)’에 투하되어 전세 반전을 시도하게 되는 셈이다. 한 야권 인사는 청빙 제도나 심마니 제도에 대해 “결국 정부 각 부처와 기관에 청와대와 핫 라인을 구축할 수 있는 ‘스파이’를 심겠다는 속셈 아니겠느냐”고 평가절하했다.

청와대 사람들의 전성시대

청빙 제도나 심마니 제도가 외부에서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데려와 인재풀을 늘리는 것이라면, 청와대 비서실 출신 인사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하는 것은 스스로 인재를 양성해 인재풀에 집어넣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언론에서 이 과정을 ‘노(盧) 아카데미’ 수료생들의 정부 각 부처 진출로 표현했다.청와대 비서실이 출세코스로 인식돼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공무원의 경우 청와대 파견 근무를 마치면 한 계급 승진해 요직으로 전출되기 예사였고, 차관급인 수석비서관 가운데 바로 장관급으로 발탁된 경우도 허다했다.하지만 참여정부의 경우 노 대통령이 청와대의 구태를 탈피하겠다고 수차례 천명했음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인재풀의 빈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검증된 인물을 요직에 기용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최근들어서만 해도 지난 연말 청와대 치안비서관 출신인 허준영 서울경찰청장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경찰청장으로 내정됐다.또 조윤제 경제보좌관이 주영대사로, 이주흠 전 리더십 비서관이 주미얀마 대사로 각각 발탁됨으로써 라종일 주일대사(전국가안보보좌관), 권오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전정책수석)를 포함해 2년도 안된 시기에 모두 4명의 대사를 배출했다. 청와대 출신들은 이미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요직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상태다. 지난해 반기문 외교보좌관이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간 데 이어 7월에는 윤광웅 국방보좌관이 국방부 장관에 기용됐다. 이 때문에 차관급인 대통령 보좌관은 장관으로 가는 지름길로 통하게 됐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출신의 경우 이봉조 전정책조정실장이 통일부 차관에, 김만복 전정보관리실장이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직에 각각 올랐다. 또 위성락 전정책조정관은 주미 정무공사로, 서훈 전정보관리실장은 국정원의 핵심인 대북전략국장으로 이동한 바 있다.청와대에서 비서관급으로 근무했던 인물들 중에서도 각급 기관에 진출한 사례는 많다. 조광한 전홍보기획비서관은 한국가스공사 감사, 양민호 전 민원제안비서관은 대한광업진흥공사 감사로 가 있다.참여정부의 이같은 신코드 인사에 의해 공직사회는 점차 ‘친노(親盧) 색채가 짙어지고 있지만 내부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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