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유형’순교형은 시대적 상황과 밀접 … 테러성격 띠면 더 큰 불행 불러도피형은 사회정책과 연관성 … 빈민층에서 발생빈도 높은편매일 매일 지구상에서 100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힘겨운 가난,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조국의 해방…. 목숨을 끊는 사연들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를 종합해보면 자살은 순교형, 복수형, 도피형, 재결합 형 등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분석. 자살의 대표적인 유형을 짚어보았다.

순교형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70년대 청계 피복노조의 전태일이 마지막 남긴 유언처럼 자신이 죽음으로써 사회적 메시지를 남기려는 유형이다. 80년대 대학생들의 분신자살,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자살폭탄테러 등도 순교형 자살로 해석될 수 있다. 순교형 자살의 특징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사회의 변화를 얻고자 하는데 있다. 이에 시대적 상황, 사회적 분위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게 학자들의 전언. 실제 전태일의 죽음은 곧 한국노동운동을 새로 쓰게 만든 계기가 됐다. 개발논리에 묻혀있던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권문제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된 것. 70∼80년대 사회운동가들과 대학생들의 분신도 암울했던 군사독재시대에 민주화운동에 불을 붙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순교형 자살은 경우에 따라 더 큰 불행의 씨앗을 낳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두 나라간의 자살테러와 테러에 대한 보복의 악순환이다. 영토문제와 종교문제까지 두 나라간의 분쟁은 중동전체와 세계평화에 위협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복수형

자신이 죽음으로써 상대방을 평생 죄책감 속에 가둬버리는 복수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자살은 실연으로 인한 자살, 청소년들의 자살, 억울한 누명을 못이긴 자살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중국영화 ‘패왕별희’에서 샬루(장풍의)의 아내인 주샨(공리)이 목을 매어 자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문화혁명의 폭풍 속에서 군중에 의해 끌려 나온 샬루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동료 경극 배우인 데이(장국영)가 동성애자라고 폭로하고 이에 화가 난 데이는 샬루의 아내인 주샨이 창녀였다고 말한다. 그러자 샬루는 아내인 주샨마저 배신하여 그것은 사실이며 자신은 그녀를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노라고 소리친다.

결국 이 말을 들은 주샨은 자살로써 남편의 배신에 답한다. 과거에는 사랑하였으나 이제는 증오하게 된 그 상대를 자기자신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 하여 이제는 자신을 살해함으로써 바로 그 상대를 죽이는 목적달성을 한다는 의미. 청소년들의 자살 역시 복수형이 다반사. 진학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압력 등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청소년기를 보낼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이 그동안 심하게 자신의 일상을 간섭해 온 부모에 대한 마지막 치명적인 반격을 시도하는 것. 자살로써 부모로부터 사랑하는 아들인 자신을 빼앗아 버리자는 복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실연이 원인인 자살도 사랑했던 연인이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한 복수의 의미를 담고 있다.

도피형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참극, 일가족 동반 자살이 대표적이다. 카드빚 등 감당하기 힘겨운 생활고에 시달린 엄마가 어린 자녀 3명과 함께 동반 자살을 감행하며 현실의 고통에서 탈출한 것. 이러한 도피형 자살은 사회정책과 연관성이 많으며 빈민층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대북사업의 엇갈린 평가에 고민해왔던 현대 아산의 정몽헌 회장 투신자살 역시 도피형의 범주에 든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사진으로 1994년 퓰리처상을 탔던 케빈 카터(Kevin Cater)의 경우도 대표적인 도피형.

기아문제에 대한 실상을 사진으로 전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간 카터는 우연히 식량센터로 배급을 받기 위해 가던 한 소녀가 힘에 겨워 쓰러져 있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린 소녀 뒤에서는 독수리가 먹이를 바라보듯 소녀가 일어나지 못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실상을 있는 사실 그대로 전해줄 수 있는 이 장면을 카터는 렌즈에 담았고,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그 해 퓰리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이 사진은 사진가의 윤리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켰다. 촬영하기보다는 소녀를 먼저 구했어야 했다는 비판과, 사진이 가진 사회적인 영향력에 관한 논란이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아이를 먼저 구했어야 했다는 세간의 따가운 지탄이 카터를 괴롭혔다. 결국 괴로워하던 카터는 33살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결합, 재생, 자기응징형

재결합을 기약하는 유형도 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주인공은 집안간의 갈등으로 인해 현실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현실생활의 좌절과 불행에 지친 나머지 먼저 간 가족을 저 세상에서 만나 행복하게 살자는 환상에서 감행하는 자살을 택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 사유인 자살도 재결합형이다. 이는 자살을 통해 재결합하려는 소망과 함께 자살을 시도함으로써 사랑받고 보호받던 시절로 돌아가려는 퇴행적 소망을 갖기도 한다. 재생을 기약하는 자살도 있다. 우울증 환자,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환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이들은 현재의 욕된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하여 자살을 결심하는 것. 자기응징으로서 자살은 인생의 어느 중대한 사항을 성취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자신을 처벌하는 것으로 비교적 남자에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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