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영역 아닌 국가적 문제 예방교육·홍보 강화해야”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후 경찰은 4대악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4대악은 ‘가정폭력’과 ‘성폭력’, ‘학교폭력’ 그리고 ‘불량식품’이다. 4대악과의 싸움은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10대 공약의 하나로 ‘4대 사회악 근절’을 발표하며 시작됐다. 이후 경찰은 전담팀까지 만들어 4대악 척결에 앞장섰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이해 4대악 중 첫 번째 가정폭력의 척결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폭행 발생률·재범률 줄어들고 있어 ‘긍정적’
관련 법률 인식도 낮아… “지속적 노력 필요”

지난 6일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3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약 3개월간 면접조사로 진행됐다.

‘가족이기 때문에’
신고 안 한다

지난해 자녀에 대한 폭행 발생률은 46.1%로 2010년 59.1%에 비해 13% 감소했다. 또한 부부폭력 역시 2010년 53.8%에서 8.3% 감소한 45.5%로 조사됐다. 신체적 폭력은 7.3%, 정서적 폭력은 37.2%, 경제적 폭력은 5.3%였다. 모두 2010년에 비해 감소한 수치였다.

그러나 부부폭력을 경험한 응답자 중 폭력이 발생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0.8%에 불과했다. 무려 68%의 사람들이 ‘그냥 있었다’고 응답한 것이다.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는 40.5%가 ‘그 순간만 넘기면 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가족이기 때문에’는 32.8%,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가 19.5%였다.
폭력이 발생한 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1.3%였으며, 여성긴급전화 1366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0.4%, 상담소 및 보호시설 등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0.1%였다.

부부가 아닌 가족원 폭력(부모, 형제자매 등)을 당했다는 응답은 7%에 달했다. 형제자매에게 폭력을 당한 경우가 53.3%로 가장 많았고 어머니(22.8%), 아버지(22.2%) 순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1%에 불과했으며, 1366이나 상담소 등에 대해 요청한 사람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노인 중 가족으로부터 폭력을 당했다고 대답한 비율은 무려 10.3%에 달했다. 가해자는 아들이 47.1%, 며느리가 20.5%, 딸이 10.6%순이었다.

가정폭력 관련법
‘내용 모른다’ 80% 넘어

가정폭력에 대한 수치는 지난 조사결과 대비 줄어들었지만 가정폭력 관리법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대악 척결을 목표로 경찰에서 다양한 홍보를 실시했으나 아직까지는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가정폭력 관련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19.7%에 불과했다. 19%는 ‘전혀 모른다’고 답했으며, 61.3%는 ‘들어본 적 있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가정폭력 방지를 위한 정책과제로는 TV 등 공익광고를 통한 관련법 및 피해자 지원 서비스 홍보 확대, 가정폭력 심각성에 대한 사회인식 개선, 가정폭력 예방교육 강화 및 치료·회복 프로그램 운영 등 피해자 보고기능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한편 경찰에서는 지난해 1월 1일 당시 김기용 경찰청장은 “4대악 척결에 앞장서야 한다”는 내용의 신년사를 발표했다. 2월에는 4대 사회악 근절 추진 본부와 성폭력 특별수사대가 출범했다. 3월에는 전국 경찰서 수사·형사과장 400여 명을 대상으로 ‘4대악 근절에 경찰 전 수사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내용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경찰대 졸업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도 “4대악 근절은 경찰이 완수해야 한다”고 말해 다시 한 번 4대악 척결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성한 경찰청장 역시 취임사에서 “모두의 지혜를 모아 4대 사회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4월에는 “정부 출범 100일인 6월까지 성과가 나타나도록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성과 없는 지역 지휘관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대 학생들은 광화문에서 ‘4대악 out’에 대한 행사를 열기도 했다. 각각 경찰서 별로 피시방·방송 등과 연계해 국민들이 4대악 척결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홍보에 전념하기도 했다. 또 경찰 내부에서는 전담팀을 만들고 피해자를 관련 기관과 연계하는 등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봤듯이 아직까지 가정폭력 관련법에 대한 인식이 저조해 더욱 노력이 필요하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 재범률이 줄어드는 등 눈에 띄는 효과가 보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더욱 역량을 발휘해 가정폭력 척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판단하기 일러…
장기간 노력 필요할 듯

그렇다면 일반 국민은 정부와 경찰의 가정폭력 척결 노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모(25·여)씨는 벌써부터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평가했다. 4대악 척결을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성공여부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 나씨는 “현재 가정폭력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4대악 척결은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며 “그러나 이는 고질적인 문제로 하루아침에 해결되기 힘들다. 국민들 인식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단기간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정부기관이 앞장서서 노력한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모(28)씨는 “동네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내 주변만 놓고 봤을 때 전혀 줄어들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밤마다 들리는 싸움 소리는 몇 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모(32·여)씨는 “아는 사람이 부부싸움 중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피해자에게 ‘살다보면 부부끼리 그럴 수도 있다. 어서 합의하라’고 말했다고 하더라”라며 “전혀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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