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기록 일련번호와 일치 수억대 절도 꼬리 밟혀2달러지폐 95년 이후 미발행 희소성으로 ‘행운’ 상징‘행운의 2달러, 도둑에게는 적용 안돼!’기업체 사장 등 부유층들이 많이 사는 고급주택가만 전문적으로 털어오다 경찰에 붙잡힌 간 큰 도둑이 행운을 안겨다 준다던 2달러가 빌미가 돼 구속됐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19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과 성북구 성북동 고급 주택가를 돌며 휴가철 빈집을 골라 턴 혐의(절도)로 이강선(가명·39)씨와 이씨가 훔친 물품을 시중에 내다 판 김모(50)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1시30분쯤 벤처기업 사장인 장모(53)씨의 평창동 자택에 침입해 3천만원짜리 진주목걸이 세트 등 귀금속 11점과 밍크코트 7벌, 미화 7천달러 등 2억7천여만원 상당을 훔친 혐의.

가짜는 버리고 진짜만 골라

털어이씨는 평창동, 성북동, 연희동 등 이른바 ‘있는 사람’들의 집을 목표로 삼고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CCTV 등 보안장치가 철저할 것으로 짐작됐지만, 의외로 손쉽게 털리고 말았다. 제아무리 보안장치를 철저히 해도 전문털이범 이씨에게는 허점투성이였다. 출퇴근 시간 등을 미리 알아보고 낮에 사람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며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이씨는 담을 넘을 때 적외선 양쪽에서 빛을 쏘는 적외선 감지기를 피하면 경보기가 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했다. 그리고 대담하게 담을 넘은 뒤에는 창문에 돌을 던져 경보기가 울리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이씨는 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으면 창문을 부수고 집에 들어가 골프채, 명품, 고가 액세서리, 달러 등을 주로 털었다. 특히 이씨는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폐물함 등에서 가짜는 손에 대지 않고 진짜만을 훔치는 지능범이었다. 그는 또 한 번 ‘작업’에 들어가면 보통 2∼3군데 집을 동시에 터는 대담함을 보였다.그러던 중 한 번 모 경호업체 직원에 걸릴 뻔했다.

이 근방을 순찰하던 경호업체 직원이 겉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이씨가 골프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수상히 여겨 뒤를 쫓은 것. 자기를 뒤따르는 그림자를 발견한 이씨는 고가의 골프채가 든 가방을 놓고 도주했다. 그러나 이외에는 단 한 차례도 현장에서 발각되지 않고 유유히 집을 빠져 나와 차를 이용해 도주했다. 대낮에 털린 집들은 대부분 기업체 사장, 회장 집, 심지어 외국공관의 주재원 집들까지도 이씨의 먹이감이었다. 주한 외국 대사관 직원 집 한 곳은 잠깐 자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이 미화 200달러, 귀금속 14점 등 1천만원 정도가 털렸고, 같은 날 다른 외국대사관 직원도 귀금속 55점, 섹스폰 등 4천4백만원 상당을 털렸다. 심지어 모 회사 사장 A씨는 회사 채권과 집문서까지도 이씨에게 털렸다. 이씨는 이렇게 훔친 물품을 이른바 지방의 한 곳과 서울 등지를 돌며 평소 알고 지내던 전직 유명 소매치기 조직의 바람잡이 출신 장물아비 김씨를 통해 처분했다.

‘행운의 2달러’가 ‘불행으로

부유층 집들이 거듭 털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절도 피해 주택가 주변에 폐쇄회로TV (CCTV)를 통해 수상한 차량의 모습을 발견, 유력한 용의자로 이씨를 주목했다. 이에 이씨가 거주하고 있는 곳을 샅샅이 뒤지며 10여일간 잠복 근무 끝에 검거했다. 이씨는 “어차피 붙잡힌 거 증거를 대면 말해주겠다”고 말하자 경찰이 CCTV에 찍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자 “내가 아니다”라며 발뺌했다. 그러나 이씨의 가족들은 경찰에서 CCTV에 찍힌 사람이 이씨가 맞다고 확인했다. 이씨는 “자신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던 중 경찰은 우연히 이씨의 지갑에서 2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발견했다. 1995년이후 발행되지 않고 있는 2달러짜리 지폐는 미국에서 ‘행운의 2달러’로 불릴 정도로 희소성이 있는 지폐. 경찰은 이씨에게 이의 출처를 추궁했다. 그러나 이씨는 “2달러짜리 지폐 나는 많이 가지고 있다”면서 “이것은 그 중 하나일 뿐”이라며 반박했다.

이씨는 또 “미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지폐를 어떻게 많이 가지고 있냐”고 경찰이 묻자 “남대문 시장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며 도리어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이씨는 피해자 J씨의 꼼꼼한 기록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사업가인 J씨가 수년 전 미국에서 미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선물받은 2달러짜리 지폐를 소중하게 보관하기 위해 기록했던 일련번호가 이씨의 지갑에서 나온 지폐 번호와 일치한 것. 결국 끝까지 시치미를 떼며 범행사실을 부인하던 이씨는 J씨의 꼼꼼한 기록에 감탄하며 쇠고랑을 찼다. 한편 여죄를 계속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피해자들을 찾기 위해 하루 평균 4∼5집을 돌았다”면서 “피해물품까지 보여주었지만, ‘모두 도둑맞은 적 없다’, ‘우리집 물건 아니다’라고 말해 피해조사는 커녕 문전박대만 받았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또 “대담한 절도 행각을 보면 신창원을 능가할 정도”라며 “피의자의 수법으로 볼 때 신고 안된 피해액수까지 따지자면 100억원대에 이를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