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패밀리(조양은, 김태촌, 이동재) 지고 22개 조직 ‘춘추전국시대’

전국조직 퇴조, 장안동·남부동·답십리파 남아
불법 오락실 넘어 불법 도박 사이트로 자금 모은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최민식·하정우 주연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이정재·황정민 주연 ‘신세계’, 유오성·주진모 주연 ‘친구2’ 등 많은 영화들의 주 소재로 조직폭력배가 등장하고 있다. 영화 속의 조직폭력배는 끈끈한 의리와 우정을 가진 것으로 미화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친구·선배·동기도 배신하는 것이 그들이다. [일요서울]에서는 지난호부터 전국 조폭 현황에 대해 연재하고 있다. 이번호는 서울광역시 편이다. 서울은 정치·경제의 중심지답게 과거부터 전국 최고의 조직폭력배들이 자리를 잡아왔다. 하지만 그들도 세월의 흐름과 검·경의 단속 앞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3일 조직폭력배의 도피를 돕는 등 뒤를 봐주고 뇌물을 챙긴 혐의로 서울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 40살 조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명수배 된 장안파 행동대원 정모씨를 검거하지 않고 사건 진행상황을 알아봐주는 대가로 2년간 1천5백여만 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조씨는 강력범죄수사팀에 근무하면서도 폭력조직원과 수 년 동안 같은 집에 살며 정씨 등 조폭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결사 검사’에 이어 ‘조폭 친구 경찰’이 등장했다. 과거에도 조폭과 연관된 경찰 또는 검찰이 적발된 적이 있었다. 경찰 내부는 물론 시민들 사이에서도 경찰과 검찰의 뒤를 봐주는 조폭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조폭을 감시하고 검거해야 할 경찰이 돈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경찰의 조폭 근절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는 지난해 8월 11일부터 11월 19일까지 100일간 ‘조직폭력 및 갈취사범 특별단속’을 실시해 총 1,534건 2,583명(구속 165명)을 검거했다. 이후 1월 29일까지 연장된 특별단속은 전국에서 총 944건 1,482명(구속 164명)을 검거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특별단속에도 불구하고 조폭들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조직폭력배들

서울은 조폭의 중심지로 1980년대부터 전국구 조폭세력이 자리를 잡아왔다. 그 이전에는 8·15해방 때부터 명동에는 김두한, 종로에는 이화룡이 조폭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김두한이 정치계에 입문하면서부터 서울은 무주공산이 됐다.
김두한이 조폭계를 떠나자 등장한 인물이 동대문사단을 이끌고 있던 이정재였다. 동대문사단이라 불리던 조폭들은 정치권과 결탁해 성장해 갔다. 그러다 5·16 쿠데타 이후 깡패 소탕령이 내려지면서 조직이 움츠러들었다.
이러한 시기 서울의 조폭들은 신상사파로 흡수통합됐다. 명동파의 행동대장 출신으로 실제 육군 상사 출신이었던 신상현이 명동, 충무로, 을지로 일대 조폭들을 장악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함께 호남지역의 젊은피들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조폭세계가 급변했다. 이들 신진세력들은 서울에서 범호남파로 불리며 신상사파와 대결을 하게 됐고 1975년 1월 2일 명동 사보이호텔에서 신년회를 열던 신상사파를 급습했다.
이 당시 급부상한 인물이 범호남파로 불리던 오종철파 행동대장 조양은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범호남파 박종석파의 행동대장 김태촌도 이때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김태촌이 1976년 3월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주차장에서 실질적인 범호남파 보스인 오종철을 칼로 찌르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를 계기로 조양은과 김태촌의 대립이 시작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서울의 범호남파는 조양은의 양은이파, 김태촌의 서방파, 이동재의 OB파로 나뉘어져 호남 3대 패밀리가 형성됐다.
호남 3대 패밀리는 1980년대 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중 김태촌은 지난해 1월 생을 마감했다. 앙숙이었던 조양은은 2년6개월여 도피생활 끝에 필리핀의 한 카지노에서 붙잡혀 국내로 송환됐다.
조씨는 2010년 8월 서울 강남에서 ‘풀살롱’ 형태의 P유흥주점을 운영하면서 사채업자와 함께 꾸며낸 허위 담보서류로 제일저축은행에서 29억9천600만원을 대출받아 가로챘다. 전국을 주먹 하나로 제패했던 사람들치고는 끝이 허망하다.
지난해 기준 경찰에서 관리하고 있는 3대 패밀리 조직원 수는 ‘범서방파’ 11명, ‘양은이파’ 26명에 불과했다. ‘OB파’의 경우 광주를 근거지로 한 ‘충장OB파’가 49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제 3대 패밀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철저한 행동강령으로 조직 결속 다져

지난해 경찰청에서 발표한 ‘관리 대상 조직폭력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제 서울에는 규모와 조직을 갖춘 조폭으로는 22개만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대 패밀리들이 세력은 작아졌지만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장안동파, 남부동파, 답십리파 등에 약 479명에 이르는 조폭들이 활동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중 답십리파는 1980년대 후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일대에서 결성된 조폭이다. 이후 강북의 대표적인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조직 결성 초기 장안동파와 세력 다툼을 하며 장안동 일대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답십리파는 불법오락실·도박사이트 운영, 건설현장 이권개입, 사채업 등으로 자금을 마련해왔다. 조직이 성장하면서 1990년대에 건대입구역 주변과 서울 강남 지역으로의 진출도 꾀했다.
답십리파 조직원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인턴과 같은 검증과정을 거쳐야 했다. 숙소 생활은 기본이고 철저히 행동수칙에 따라야 했다. 행동수칙을 어길 경우 선배들의 폭력이 뒤따랐다. 대표적인 행동수칙으로는 ‘“타 조직과의 전쟁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고 피해를 입으면 반드시 보복한다’ ‘선배들에게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한다’ ‘선배에게 말을 할 때는 ‘형님’자를 붙인다’ 등이다.
2001년 조직원 한 명이 조직을 탈퇴하고 도망치자 다른 조직원들이 해당 조직원을 붙잡아 목검으로 수차례 구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답십리파 조직의 두목 유모씨가 불심검문에 붙잡혀 구속기소됐다.
지금의 조폭은 전체적으로 조직은 작아지고 자금 모으는 수법은 기업화·고도화됐다. 하지만 조폭의 습성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앞서 최근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에게 뇌물을 줘가며 도피행각을 벌였던 조폭은 장안동파 조폭이었다. 2012년에는 장안동파 조폭 한 명이 서울 시내 유명 백화점에서 난동을 부리다 상습공갈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명품매장에서 제품 할인을 강요하다 거부당하자 상의를 탈의해 문신을 보여주고 여직원들을 성추행했다. 이 조폭은 숙박업소 등에서도 손도끼 등으로 직원을 협박해 강제로 100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경찰청은 향후 조폭들의 자금줄을 철저히 차단하는 동시에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폭력배들이 과거와 같이 드러나지 않지만 아직도 우리 생활 주변에서 서민 경제활동에 기생하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성매매·사행심 조장 등으로 음지에서 서민들을 유혹하는 활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본다”며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 감독기관과 협업해 적극 단속하고 범죄수익은 적극 몰수할 계획이다. 또 청소년들이 성인 조직폭력과 연계되지 않도록 일진 등 폭력서클에 대한 감시도 철저히 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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