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황제서 청년백수로 그리고 러시아의 ‘신’이 되기까지

네티즌 “러시아 국기 흔드는 안, 짠하고 마음 아프다”
박 대통령 “러시아 귀화, 체육계 부조리 탓 아냐?”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한국사회가 뜨겁다. 소치동계올림픽 러시아 선수로 출전한 빅토르 안(29세·사진) 때문이다. 그의 본명은 안현수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민국 대표팀이었지만 이젠 러시아에 사상 첫 쇼트트랙 메달을 안긴 영웅이 됐다. 국내선수들 조차도 그를 버거운 상대로 꼽을만큼 그의 부활이 대단하다. 오히려 과거 더 이상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부상 당한 그에게 은퇴를 권하고, 파벌싸움에 희생양이 됐던 암울한 시기(?)가 있었나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도 “안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와 줄세우기, 심판부정을 비롯한 체육계 저변에 깔려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질타했을만큼 그의 귀화를 안타까워했다.
그도 그럴것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아름다운 선택, 혹은 눈물나는 선택에 많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빅트르 안에 대해 알아본다.

▲ <뉴시스>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서 남자 1500m 결승이 열렸다. 이날은 한국의 이한빈 선수도 출천했다. 그러나 ‘빅토르 안’이 한국의 이한빈 선수를 제치며 앞서 나갔고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 중국의 한톈위에 이어 세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특히 중국의 한톈위 선수와는 비디오 판독을 통해 승패를 결정지을 만큼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나 결국 0.007초 차로 뒤져 동메달을 차지했다. 러시아 쇼트트랙 역사상 첫 메달이었다.
러시아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에 독립국가연합(CIS)의 일원으로 참가,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적은 있지만 단독으로 쇼트트랙 부문에서 메달을 획득한 적은 없다.
빅토르 안은 1985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명지초등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를 시작해 1996년 전국 남녀 학생 종별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명지중학교 시절 동계체전 3연패를 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신목고등학교로 진학한 그는 전국 고등부 1위를 차지했다. 2002년 1월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1000m와 1500m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종합 우승을 거머줬다.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선발돼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 참가했다. 당시 만 16세에 불과했던 그는 처음 출전한 세계 규모의 국제 대회에서 1000m에 결승까지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결승 마지막 바퀴까지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리자쥔(중화인민공화국)·마티외 튀르코트(캐나다) 등의 유명 선수와 선두를 다투었으나, 이들과 엉겨 넘어지면서 4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메달을 놓쳤다. 곧이어 벌어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김동성의 뒤를 잇는 선수로 주목받았으며,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땄다.

전성기와 부상 그리고 갈등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다음 시즌인 2002년~2003년, 김동성 선수가 부상으로 대회에 빠지면서 그는 대한민국과 세계의 각종 대회를 석권했다. 2003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종합 우승했다. 이후 2007년까지 남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5년 연속으로 세계 선수권을 제패했다.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 1000m·1500m 개인과 5000m 계주에서 금메달, 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 이 대회 쇼트트랙 남자부 전종목에서 메달을 땄다. 또한 대한민국의 스포츠 선수로는 올림픽 대회에서 한 번에 가장 많은 메달을 딴 선수로 기록됐다. 한국체육대학교(이하 한체대) 졸업을 앞두고 쇼트트랙 선수로는 역대 최고 계약금을 받고 성남시청에 입단했을만큼 그의 기량은 물론 선수로서의 미래가 탄탄했다.

그러나 2008년 1월 16일, 훈련 도중 심한 부상을 당해 남은 시즌 대회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이후 치료와 재활 활동에 전념했다.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돼 2008년 말부터 훈련을 재개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2009년 4월에 2009년~2010년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렀으나, 그는 종합 순위 9위로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도 참가할 수 없었다. 빙상연맹이 2009년~2010년 시즌 개막을 많이 남긴 시점에서 대표선발전을 치른 것에 대해 그가 빙상연맹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고, 파벌 논란의 중심에 서 있어 안현수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논란이 있었다.

동계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한 그는, 올림픽 기간 중에 열린 2010년 전국동계체육대회에 출전, 1500m, 3000m 개인과 3000m 계주 부문에서 우승, 3관왕을 차지했다.

당시만해도 안현수는 2010년 4월에 치러질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대한빙상경기연맹은 갑자기 국가대표 선발전 연기를 발표해 훈련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안현수는 2010년 5월 기초군사훈련을 이수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발전 연기 결정이 안현수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된터다. 또한 국가대표 선발전을 쇼트트랙에서는 드문 타임레이스 방식으로 치르기로 해 경기방식도 안현수에게 불리하게 바꾼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결국, 2010년 9월 타임레이스 방식으로 치러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2010년 2011년 시즌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 이후 대한빙상경기연맹은 2011년~2012년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은 다시 4월에 치를 것이라고 해, 안현수는 이에 대한 대비를 한다. 그러나 성남시는 재정부족을 이유로 성남시청 쇼트트랙팀을 해체하기로 결정해 안현수는 소속팀 없이 훈련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2011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5위를 해, 4위까지 주어진 국가대표 자격을 얻지 못했다.

이에 그는 러시아행을 결정짓게 됐다. 대한빙상경기연맹과의 갈등 및 파벌 논란, 소속팀 해체,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빠진 안현수는 새로운 여건에서 운동할 수 있는 러시아를 선택한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로 소속팀 해체를 이유로 들었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었다.

세계선수권 개인 종합 4연패를 이룬 2006년 4월, 안현수의 부친인 안기원씨는 귀국 환영식장에서 “선수들과 코치가 짜고 안현수가 1등하는 것을 막았다”고 폭로해 빙상계를 발칵 뒤집었다.
그 다음날 안현수도 자신의 미니 홈피에 파벌 싸움으로 결국 선수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려 후폭풍을 예견했다.
밴쿠버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2010년 4월, 아버지 안기원씨가 안현수의 팬카페에 올린 글이 빙상계에 또 한번의 파문을 몰고 온다.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정수가 코치의 강요로 세계선수권 출전을 포기했다는게 내용의 주요골자다.

감사에 들어간 대한체육회는 당시 코칭스태프의 강압적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실상 시인했고, 결국 안현수는 마음 편하게 스케이트만 타겠다며 러시아행을 선택하게 됐다.

2011년 6월 러시아로 이주 후 러시아 국적까지 취득해 러시아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할 계획도 세우게 됐다. 2011년 12월 28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안현수의 러시아 국적 취득을 인정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해, 그는 정식으로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귀화와 동시에 러시아에서 명성을 떨친 우크라니아-고려인 혼혈 록가수 빅토르 초이처럼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빅토르 안(러시아어:Виктор Ан)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러시아 국적 취득으로 대한민국 국적법에 의해 그의 대한민국 국적은 자동 소멸됐다.

한국 사람들 미워하지 않는다

러시아에 귀화한 빅토르 안은 러시아 국가대표로 선발됐며, 2012년 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 계주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약 4년만에 국제대회에 복귀했다. 2013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500m와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러시아 쇼트트랙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선수권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2014년 동계 올림픽 개인 1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8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땄다.
그로 말미암아 빅토르 안은 현재 러시아 빙상 연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 러시아 대표팀에서 코치로 활동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ul.co.kr
<자료=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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