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단독주택에 사는 60대 이상 노인들이 대상4건 모두 용의자는 ‘둔기를 사용한 남자 1인’일 가능성 높아피해금액이 거의 없어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일수도‘9월 23일 신사동, 10월 9일 구기동, 10월 16일 삼성동, 11월 18일 혜화동’서울의 고급주택가에 위치한 단독주택에서 두 달 새 4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4건의 살인사건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동일범의 소행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4건 모두 ‘둔기를 이용한 범행’’단독주택에 사는 부유층’’피해물품이 없다는 점’등 공통점이 많다. 여기에 가장 최근 발생한 혜화동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3건은 경찰수사까지 장기화되고 있다. 그러나 ‘동일범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수사기관의 판단이다. 하지만 고급 단독주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여전히 개운치 못한 여운을 남기고 있어 그 의혹을 추적해봤다.

1. 대낮 고급주택가의 60대 이상 노인들을 대상

신사동, 구기동, 삼성동, 혜화동에서 잇따라 발생한 살인사건은 ‘고급 주택가의 단독주택에서 발생했다’는 데 가장 큰 공통점이 있다. 최근 발생한 혜화동 살인방화사건의 장소는 서울시장 공관과 불과 5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바로 근처에는 전직 국회의원이 살고 있는 등 전형적인 서울의 고급주택가다. 나머지 사건 장소도 ‘신사동’ ‘삼성동’등 고급주택가가 들어서 있는 단독주택에서 일어났다.더구나 숨진 피해자들도 60대 이상의 고령자라는 공통점이 있어 ‘동일범이 아니냐’는 의혹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혜화동은 80대 노인 김모씨와 50대 가정부 백모씨, 삼성동은 60대 여성, 구기동은 80대 노인 포함 일가족 3명, 신사동은 70대 명예교수 부부 등 용의자들은 저항 능력이 거의 없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낮에 범행이 이뤄졌다. 이에 대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단순 강도보다는 집안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면식범의 범행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혜화동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가족들이 외출 등으로 집을 비워 노인들이 혼자 있는 경우가 많은 낮 시간을 범인들이 사전에 알고 노린 것으로 본다”며 “단순강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집안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2.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

고급주택가에서 발생한 사건임에도 불구, 네 건 모두 ‘피해금액이 거의 없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강남경찰서의 현증검증 결과, 신사동 70대 교수부부 살인사건은 방안 장롱 문이 열려 있었지만 패물함에 값비싼 귀금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 현금 280만원도 발견되는 등 도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경찰은 ‘이씨 부부가 수십 억대 재산을 보유한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는 주변사람들의 말에 따라 채권·채무 관계, 이씨 부부의 최근 금융거래 내역과 재산 규모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강남서 관계자는 “이씨 부부 주변으로부터 평소 이들의 생활, 금전거래 관계, 원한을 살만한 사람 등에 대해 단서가 될만한 얘기들을 많이 듣고 있다”고 말했다.삼성동 60대 노인 살인사건도 신사동 사건과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경찰은 최씨 부부가 사건 발생 전 ‘23억대의 부동산을 거래한 점’과 ‘시가 20억 상당의 삼성동 자택도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은 점’등에 미뤄 금품과 관련한 원한관계의 범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특히 남편 최씨가 2001년까지 군납업체의 대표를 지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구기동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대문경찰서도 집 주인 고모(61)씨가 “사업을 그만 둔 뒤 숨진 아내 이모씨가 전적으로 돈 관리를 맡아왔다”고 진술함에 따라 이씨가 금전관계에 의한 원한을 샀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중이다. 동대문 경찰서 관계자도 혜화동 사건에 대해 “소형금고를 열려고 한 흔적은 있지만, 특별한 외부침입 흔적과 피해물품이 없는 점으로 보아 원한관계나 치정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3. ‘족적’과 ‘지문’ 만이 단서?

경찰조사결과 네 건 모두 외부 침입흔적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사건현장에 범인이 남긴 흔적은 ‘족적’과 ‘지문’이 전부다. 그러나 이 마저도 상태가 좋지 않아 경찰수사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신사동 교수부부 피살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강남경찰서는 숨진 부인 이모씨의 손에서 발견된 머리카락과 안방 장롱에 찍혀있는 손바닥 지문(장문)과 족적 등 일부 단서를 토대로 수사망을 좁혔지만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피묻은 장문과 족적이 피해자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장문 대조를 위해 이씨 부부와 주변 인물들의 장문을 채취했었다. 그러나 현장에 남아있는 지문이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 구기동 사건과 혜화동 살인방화사건에서도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운동화 족적을 발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조사를 의뢰해 정밀 감식작업을 벌이고 있다.

4. 범인은 둔기를 사용한 남자 1인?

현재 경찰은 네 건에 대해 동일범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동대문 경찰서 관계자는 “강남서와 서대문서가 맡고 있는 사건들은 외부침입의 흔적이 없고 단독주택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유사점은 있지만, 동일범은 아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도 “신사동, 삼성동 사건은 별개의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들은 공교롭게도 각 사건의 용의자에 대해 ‘남자 1인이 둔기를 이용해 저지른 범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네 건 모두 피해자들의 머리 부분이 둔기에 맞아 심하게 함몰된 상태였다. 이에 경찰은 둔기를 사용해 피해자들을 숨지게 한 것으로 보아 용의자는 여자가 아닌 남자로 보고 있다.

신사동 교수부부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이씨 부부의 두개골 함몰 정도를 감안하면 범인이 연약한 여자라고 보기는 힘들며, 침입로나 실내 정황, 족적 등을 근거로 범인은 1명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기동 사건을 맡고 있는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도 “일단 범인은 한 명으로 추정되나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혜화동 사건 역시 남자 1인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이밖에 ‘현관문이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는 점과 ‘범행시간이 낮 시간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피해자들과 안면이 있는 면식범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경찰은 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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