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로 수세미에 빨랫비누 묻혀 입 닦게해‘제발 때리지 마세요!’아동학대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구구단쓰기 약속을 안 지켰다’고 6살 난 딸을 폭행해 장파열 시킨 아버지. ‘거짓말과 도둑질을 한다’는 이유로 일주일간 밥을 굶기고 수십 차례 딸을 폭행한 계모. 최근엔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보호해야 할 어린이 집에서까지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인천지방경찰청은 ‘올바른 교육을 시킨다’며 초등학생 원생들을 때리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26일 인천 남동구 C 어린이집 원장 A씨(51·여)를 구속했다. 폭력에 시달린 남매의 일기장을 통해 인천 C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짚어봤다. “10월1일. 주제 비겁함. 한자 공책에 이름을 쓰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왜 이름을 안쓰니’하며 회초리 주시는데 내가 자꾸 주저앉고 한 쪽만 대었다. 그래서 7대보다 더 많이 회초리를 받았다. 이름 꼭 쓰고 반성하겠다.”“빨래를 제대로 안해서 땅에 손을 짚고 동물처럼 계단 오르기를 50번하고 회초리도 맞았다.”인천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던 초등학교 남매가 원장과 보육교사의 체벌행위를 일기장에 기록한 내용이다.

남매의 일기장 담겨진 ‘폭력의 고통’

일기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4년생 장모군(11)과 장군의 여동생(7·초등학교 1년). 장군은 부모가 모두 모은행에서 맞벌이를 하는 탓에 4살 때부터 A씨가 운영하는 인천 남동구의 C 어린이 집에 맡겨졌다. 지난해 4월부터는 한 달에 35만원을 내고 숙식까지 이곳에서 해결했다. 또 6월에는 동생 장양도 장군과 함께 기숙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곳은 이들 남매에게 씻기 힘든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안겨주었다. 경찰에 따르면 원장 A씨는 남매가 들어온 지 얼마쯤 지나 거의 매일 나무막대로 허벅지와 종아리를 수십 대씩 때렸다. A씨는 장군이 ‘친구를 모함했다’는 이유로 수세미에 빨랫 비누를 묻혀 입을 닦는가 하면 ‘거짓말을 했다’며 1시간 동안 절을 하도록 하는 벌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자 쓰는 순서가 틀렸다’며 양손으로 땅을 짚고 동물처럼 네발로 계단을 200번 가량 오르내리도록 했고 ‘늦잠을 잤다’는 이유로 무술수련용 봉으로 30대 가량을 때리기도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장군의 여동생도 ‘어린이집에 있기 싫다는 말을 했다’며 지난 1일 오후 9시반부터 다음날 오전 4시반까지 보육교사의 감시를 받는 바람에 잠을 자지 못했다. 또 ‘편식을 한다’며 원장이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아 배가 고파 길에 떨어진 음식물을 주워 먹었다가 회초리로 엉덩이를 50대 맞은 것으로 조사됐다.어른들조차 감당하기 힘든 폭력을 당해온 아이들은 이같은 일을 일기장에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라면을 늦게 먹었다. 남은 라면 가닥수만큼 봉막대기로 엉덩이를 맞았다(10월10일), ‘엄마가 와서 응석을 부렸다고 맞았다. 인상을 썼더니 웃을 때까지 때린다고 하셨다. 그래서 입으로만 웃었다.’(10월27일),‘빨래를 제대로 안 해 땅에 손을 짚고 동물처럼 계단 오르기를 50번하고 회초리도 맞았다.’(10월29일),‘거지 짓을 했다. 친구들, 언니, 오빠를 속여서 땅에 떨어져 있는 음식을 주워 먹었다.’(11월5일).”이밖에도 ‘핑계를 대고 친구를 모함해 수세미에 가루비누를 묻혀 입안을 닦아냈다’‘거짓말을 해서 또 밥량이 많아졌다’는 내용 등 그 동안 체벌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경찰 조사결과 장군 남매는 주말에 집에 가 부모에게 원장 A씨의 폭력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장군 부모는 아이들이 매를 맞은 사유가 있고 교육을 위해 매를 든다는 원장 A씨의 말을 믿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심지어 장군의 어머니 이모(36)씨는‘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원장 A씨의 말을 듣고 딸의 종아리를 50대 때리기까지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교육을 위해 그 정도 매는 필요?

결국 이들 남매는 장군의 학교 담임 전모(34·여) 교사가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되면서 폭력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전 교사가 지난 6일 박군 남매가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을 수상히 여겨 옷을 벗겨보니 상처투성이였던 것. 장군을 통해 자초지종을 알게 된 전 교사와 학교측은 즉각 경찰과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이같은 사실을 신고했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남매의 일기장에 기록된 체벌사실을 대부분 시인했다. 그러나 A씨는 “아이들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 매를 들었다”며 “올바른 교육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C 어린이집 보육교사 A씨의 딸(31)과 아들(30)은 “아이들이 편식이나 거짓말이 심해 여러 번 타일렀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며 “체벌은 했지만, 아이들의 일기장처럼 많이 때린 것은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장군의 부모도 경찰에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매를 드는 교육은 큰 잘못이 아니다”고 진술했고 C 어린이 집 학부모들은 구속된 원장 A씨에 대한 구명운동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사를 했던 경찰 관계자는 “아이들은 또래의 평범한 아이들처럼 지극히 정상적이었다”며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이집에 다닌 후부터 투정을 부리거나 고집을 피우는 일이 없고 극존칭을 써 반듯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시는 C 어린이 집 파문이 커지자, 지난 27일 원생 가혹행위와 관련해 원장이 구속된 C 어린이집을 폐쇄하기로 하고 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원생을 다른 보육시설로 옮겨줄 것을 부모들에게 통보했다.시는 “실태 조사 결과, 이 어린이집은 보육 대상이 아닌 초등학생을 기숙시키는 등 탈법 운영해온 것이 드러나 1차로 영업정지시킨 뒤 구속된 원장의 재판 결과가 나오면 청문 등의 절차를 거쳐 폐쇄 조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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