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뭐기에… 금전 문제 얽힌 살인사건 잇따라

1억 원 빚 갈등… 고향 선배 살해 후 스스로 목숨 끊어
서울 강서구 자산가 피살 “채무 관계에 의한 살인 추정”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채무 관계를 둘러싼 살인사건이 한 주에 2건이나 발생했다. 서울 서초동에서 발생한 사건은 고향 선후배간에 발생한 사건으로 알려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또 강서구 살인사건은 아직 범인은 물론이고 범행 동기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경제 위기와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피폐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주 서울에서 같은 날 금전 문제를 둘러싼 두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을 비롯한 연이은 생활고 자살사건과 같이 발생한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친절하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20여 개 점포 건물주 둔기로 머리 가격… 사망

지난 3일 오전 3시10분께 서울 강서구의 3층짜리 건물에서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남성은 건물주인 송모(69)씨로 발견 당시 둔기로 머리를 10여 차례 맞은 채 숨져 있었다. 건물 3층 관리사무실 앞에 놓여 있던 송씨의 시신은 아내가 먼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송씨의 부인은 경찰에서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아 찾아갔더니 관리사무실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에서 경비원은 “CCTV에 수상한 사람이 있었다”며 “까만 모자를 쓰고 하얀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송씨는 20여 개의 임대점포가 영업을 하고 있는 건물을 포함해 인근 다세대 주택과 웨딩홀 등을 소유한 수천억 원대 자산가였다. 최근에는 재산 문제로 민·형사 소송에 연루된 적도 있었다. 경찰은 이에 따라 원한이나 채무 관계에 의한 타살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용의자의 얼굴이 찍힌 CCTV를 입수했다.

지난 7일 서울 강서경찰서는 용의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상태로 사건 현장인 내발산동의 상가 건물을 오르내리는 장면이 담긴 CCTV영상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CCTV에는 용의자가 얼굴을 드러낸 상태로 송씨가 사망한 건물 1층에서 4층을 오르내리는 모습이 찍혔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는 180cm의 키에 뚱뚱하지 않은 건장한 체격이다. 나이는 40~50대로 추정된다. CCTV에는 또 용의자가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송씨와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과 범행 후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통해 도주하는 장면도 찍혀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건물에는 CCTV 2대가 설치돼 있다. 이에 경찰은 관련 영상을 모두 확보해 분석하고 있으며 탐문수사도 진행하고 있다.

“이씨를 내가 죽였다. 유족들에게 미안하다”

같은 날 서울 서초동의 어느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도 30대 남성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3일 오후 3시20분께 서초동 롯데캐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이모(38)씨가 조모(39)씨로부터 등에 흉기로 찔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씨는 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오후 4시10분께 숨졌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4일 오전 8시께 조씨는 서초동의 어느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져 숨진 채 발견됐다. 조씨가 숨진 아파트는 사건이 일어났던 아파트에서 500m 떨어진 곳이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소주 2병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안해요 엄마. 이씨를 내가 죽였다. 유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도 발견됐다.

이씨와 조씨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고향 선후배 사이로 밝혀졌다. 오랜 시간 우정을 쌓아오던 두 사람은 조씨가 이씨에게 빌린 사업자금을 갚지 못하자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20년 넘는 우정이 돈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금전 문제로 인해 사이가 틀어져 결국 살인까지 발생하는 사건들을 접하면 항상 씁쓸하다”고 밝혔다.

“생명 해친 범죄는 엄중히 처벌”

금전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한 살인사건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그만큼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2월6일 금전 문제로 다투다 동거녀를 살해한 50대 남성이 중형을 선고 받았다. 춘천지법 제2형사부는 동거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정모(52)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정씨는 지난해 10월 강원 춘천시 칠전동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동거녀 오모(당시 60)씨의 딸에게 빌려준 돈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 오씨를 흉기로 찔렀다. 오씨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4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정문성 부장판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해친 범죄는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지난해 6월에는 경기 양주시 회암동의 한 야산에서 지인 A씨와 차를 타고 가던 중 금전 문제로 다투다 둔기로 A씨의 머리를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버리고 달아난 최모(60)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11월에는 인천 계양구에서 교회 부목사 B(68)씨가 교회 목사인 C(69·여)씨의 머리를 흉기로 28차례 내려쳐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결과 B씨는 C씨에게 교회 천장, 바닥 공사비, 집기류, 차량 구입비용 등으로 사용한 자신의 돈 5000만 원을 받기 위해 대화를 하다가 말다툼이 일어나 홧김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월 용인에서는 헤어진 전 남편에게 돈을 받기 위해 청부 납치·살인을 한 일당과 전 부인이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금전 문제로 인한 살인사건은 예전부터 많이 발생했던 사건”이라며 “별로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건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며 “각박해가는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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