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같은 스승의 은혜는 옛말”

학생·학부모 강사에는 ‘쩔쩔’ 교사에게는 ‘떵떵’
‘일진’ 이용해 학생 지도…“선생님 존경 못해요”

지난달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안이 통과되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지난달 국회에서는 ‘선행학습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무너지는 공교육을 바로 잡기 위해 법제도화에 나선 것이다. 사교육 중심의 교육현장에서 추락한 교권과 공교육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선행학습은 물론 모든 ‘수업’을 학원에서 진행하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단지 ‘졸업장’을 받기 위한 곳에 불과하다. 학부모들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는 이제 옛말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도 할 말은 있다

지난해 10월 글로벌 교육기관 바르키 GEMS재단이 발표한 ‘교사 위상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21개 국가 중 교사 위상 4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교사에 대한 존경심 부분은 최하위권을 차지했으며 교육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역시 19위로 나타나 대한민국 공교육의 현실을 보여줬다.

교사에게 폭언·폭행 학부모도 변했다

지난해 3월 창원시 A고교에서 학부모 김모씨가 자녀의 담임선생인 B씨를 찾아가 폭행과 협박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건장한 30대 후반의 남자 3명과 함께 학교를 찾아와 B씨를 찾으며 교무실에서 난동을 부렸으며 수업 중인 교실 3곳을 돌아다니고 교장실 책상 유리를 깨는 등 행패를 부렸다. 이어 B씨의 머리채를 잡고 정강이를 걷어차는 폭행을 가했으며 1000만 원을 입금하라고 협박했다.

비슷한 시기 제주에서도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학부모 이모(35·여)씨가 초등학교 1학년 자녀의 담임교사와 부장교사 등 2명을 폭행한 것이다. 담임교사가 바지에 오줌을 싼 자녀의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교육 현장의 중심이 공교육에서 사교육으로 변해가며 학생은 물론이고 학부모도 변했다. 교사를 중시하고 존중하는 것은 옛날 일이다. 지금은 위의 사례와 같이 폭행과 폭언을 하는 것이 예사다. 그러나 이들도 학원 선생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가 된다. 교사 앞에서 떵떵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강사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것이다.

유명 강사를 학원에 모시고(?) 오는 일을 학원 관계자가 아닌 ‘극성 엄마’들이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강남 엄마들은 자신들만의 계를 만들어 학원과 강사들의 정보를 공유한다. 그들에게 유명 강사를 놓치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다 보니 학원 강사는 ‘갑’의 위치에, 학부모들은 ‘을’의 위치에 서게 된다. 학생들 역시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복습까지 하고 다음날 학교에서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이미 학원에서 배운 것이기 때문에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1학년 박모군은 “성적별로 학원 반이 편성된다. 지금은 최고반에 들어있지만 학원 시험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아래 수준의 반으로 가게 될 것”이라며 “학교는 시험만 보는 곳으로 바뀐 지 오래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우선은 학원 시험 성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강남에서 논술 교사를 하고 있는 정모(29)씨는 “학교 선생보다 학원 강사가 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도 깍듯하게 대한다. 스승의 날에는 우리가 선물을 더 많이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떠나는 교사 늘어
“학생 지도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사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학교보다 학원을 중시하는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수업은 물론이고 특별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이들은 떳떳하게 “학원에 가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한다.

3년차 고교 교사 진모(29·여)씨는 최근 사직서를 손에 쥐고 고민을 하고 있다. 자신이 생각했던 교사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밤새며 준비해간 수업 자료는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고, 학생들의 존중도 받지 못하고 있다. 자고 있는 학생에게 벌을 줬다가 학부모한테 항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진씨는 “교사는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싶던 직업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며 “수업은 물론이고 생활습관 지도까지도 학생들이 듣지 않는다. 주변에는 학생 지도를 포기하고 정해진 일만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교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사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다. 일을 그만두고 사무직으로 옮길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고 토로했다. 새내기 교사 강모(28·여)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발령을 받고 처음으로 들은 말이 “학생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대학 진학률에 목숨 거는 학교와 학생들의 입장이 어우러진 결과다. 강씨는 “교단을 떠나는 선생님들이 많아졌다”며 “힘들게 공부해 잡은 교편인데 쓸쓸하게 떠나는 뒷모습을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명예퇴직을 신청한 전국 초·중·고 교사 수는 5000여 명이 넘는다. 최근 3년 동안 명퇴 신청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교권 실추와 학생지도 어려움 등이 가장 큰 이유다. 교권침해 건수 역시 명퇴수와 비례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강씨는 “뜻 있는 교사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며 “남아있는 교사들 중에는 학생 교육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과 친한 일진 친구들을 괴롭혀요”

중학교를 살펴보면 교권 추락의 현장은 더욱 심각하다. 고등학생이 ‘대입(사교육)’을 위해 학교 수업을 등한시하는 경우라면 중학생은 단순히 교사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 앞에서 욕설을 내뱉고, 체벌을 가하면 동영상을 찍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러다보니 학교 ‘일진’을 이용해 학생들을 지도하는 경우도 있다. 중학교 2학년 김모양은 “담임선생님이 일진이랑 친하다”면서 “반 애들이 말을 안 들으면 일진 학생들이 괴롭힌다고 협박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교사는 일진들의 말썽을 적당히 눈감아주는 대신 일진 학생들은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들을 괴롭힌다는 것. 김양은 “선생님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도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일진들을 이용해 학생들을 괴롭히는 선생님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담임선생님을 존경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사 진씨는 “일진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는 교사들이 학교마다 몇 명씩 있다”며 “학생 지도가 힘들다 보니 그런 학생들을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육 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교와 교사가 무너진 공교육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며 “내부적으로 먼저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jhooks@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