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 자살 방치하는 대한민국

“정말 죄송합니다”… 생활고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
“사별·이혼 여성 ‘빈곤 절벽’ 심각, 근본적 대책 필요”

<뉴시스>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지난달 25일 서울 송파구의 한 주택에서 60세 어머니와 30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4일에는 전북 익산에서 35세 여성이 두 자녀와 자살기도를 했으며, 이 가운데 7세 아들이 사망했다. 두 사건 모두 경제적 빈곤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다. 연이어 발생한 자살 사건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계층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특히 세 모녀 자살사건처럼 편모가정인 경우 생활고는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일요서울]은 빈곤층의 현실과 복지정책의 문제점과 대책 등에 대해 알아봤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동의 주택가 지하 1층에 위치한 집에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모(60·여)씨와 두 딸 A(35)씨, B(32)씨의 마지막 메시지다. ‘세 모녀’는 12년 전 아버지가 방광암으로 사망하며 많은 빚을 남겨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신용불량자인 두 딸은 고혈압과 당뇨 등의 지병을 앓고 있어 외부 출입을 하지 않고 주로 집안에서 지냈으며 직업도 없었다. 유일하게 어머니 박씨가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지만 그마저도 한 달 전 부상을 입으면서 그만둬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월세·전기세 못 내고…

결국 세 모녀는 창문을 청테이프로 막은 뒤 방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그들의 곁에는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와 집주인에게 ‘죄송하다’고 쓴 메모가 발견됐다.
일명 ‘세 모녀 자살사건’은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소외된 복지 사각계층에 다시 한 번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불과 2주도 지나지 않아 연이어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2일 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윤모(37·여)씨와 아들(4)이 숨진 채 발견됐다. 윤씨의 옷에는 ‘미안하다’는 글이 적힌 종이가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는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등의 생활고를 겪었으며 최근에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다음날인 3일에는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다세대주택에서 이모(44)씨가 딸(13)이랑 아들(4)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발견 당시 방 안쪽에는 유리테이프로 문틈을 막은 흔적이 있었으며 불에 탄 번개탄 5개와 소주 2병이 발견됐다. 이씨는 부인과 사별 후 재혼했으나 전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지체장애 2급이라는 이유로 잦은 다툼을 겪은 뒤 별거 중이었으며 생활고를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4일 전북 익산시 동산동 아파트에서 35세 여성이 자신의 아들(7)·딸(2)과 함께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발견한 남편이 경찰에 신고해 즉시 병원으로 옮겼으나 아들은 끝내 숨졌다. 방안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과 함께 “못 살겠다. 화장해 달라”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투자에 실패한 뒤 생활고를 겪었으며 이 문제로 서로 다투고 이혼 절차를 밟던 중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회복이 불가능한 돈을 잃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생활고로 인한 안타까운 자살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복지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안타깝게 목숨을 끊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복지 제도 알았다면…?”
수급지원 대상 탈락

‘세 모녀’의 어머니 박씨는 지난해 식당일을 하면서 월 133만 원 가량의 수입이 있었다. 이로 인해 부상 후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스스로 생활을 유지할 능력이 없는 빈곤층을 구제하기 위해 2000년부터 시행된 제도다. 예산은 지난해 기준 8조7689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2011년 147만 명, 2012년 139만 명, 2013년 135만 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유는 부양의무자 때문에 수급자로 선정이 안 되기 때문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이나 배우자는 ‘부양의무자’로 이들에게 충분한 소득이 있으면 수급권자에 대해 부양 의무를 하는 것으로 보고 복지혜택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복지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배우자, 자녀 모두와 연락이 끊기거나 경제적인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빈곤층은 400여만 명으로 추정된다.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은 지난달 13일 복지부 정책질의에서 “저소득층이면서도 기초급여를 못 받는 비수급 빈곤층이 100만 명이 넘는 현실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는 저소득층이 감소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비수급 빈곤층을 국가가 보호할 수 있도록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 또는 대폭 완화해 복지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우리 주변에는 많은 ‘세 모녀’가 있다. 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라며 “현 복지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세 모녀’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5·60대 이혼·사별 여성 절대 빈곤 심각하다”

빈곤층은 특히 이혼·사별한 50~60대 여성들이 많이 차지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통계청의 ‘전국 지역별 고용조사(2013년 6월 기준)’을 분석한 결과 이혼·사별한 여성노동자 106만 명 중 최저생계비도 못 받는 여성이 68%(7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이 가운데 67.1%가 50~ 60대였으며 40대를 포함하면 93%에 이른다. 또 여성들의 학력은 88.5%(94만2000명)가 고졸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월 평균 임금은 112만 원으로 지난해 3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인 126만 원보다 14만 원이나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송파구 세 모녀 사건과 동두천 모녀사건이 이혼·사별 여성이 혼자 부양의무를 지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의 실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유추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최근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비극의 근본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면서 “복지시스템뿐만 아니라 산재고용보험시스템 전반에 대해서도 빈곤 여성에게 최우선적으로 배려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세 모녀’ 사건에서 어머니인 박씨가 식당에서 퇴근하던 도중 재해를 당했지만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고, 실업 이후 고용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 것도 지적했다. 이어 심 의원은 “이 점만 보더라도 고용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은 취약노동계층에 대한 대책이 부실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며 “산재·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와 영세사업장 및 취약노동계층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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