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된 국가정보원의 일탈에 관해서 이제 여당마저 더 비호할 뜻이 없어 보인다. 국정원 자체를 문제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국정원이 최고의 가치로 삼는 대공 정보·수사, 공작 역량이 수준이하로 드러난 상황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거의 붕괴 수준으로 취약해져 버린 대공 역량을 고려하더라도 국정원 지휘부의 무능과 편협함이 국민의 조소를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의 도발 및 급변 가능성이 동시에 커지고 있는 때이다. 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서 나타나듯 국내 종북세력의 준동이 심상치 않은 때다. 이런 때에 똑바로 된 국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민주시민이면 다 할 노릇인데 국정원 스스로 올가미를 짜놓고 그 안에 갇혀버린 신세가 돼버렸다.

신분 노출이 1급비밀처럼 돼있는 대공수사팀 일부를 겨냥해 ‘블랙 요원’ 신원까지 특정되는 등 검찰의 수사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형사사법제도의 신뢰와 직결된 문제라는 엄중한 인식을 보인 것은 ‘국정원 개혁’의 미명으로 국정원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박자를 맞춘 게 아니다. 신속히 전말을 밝혀서 국정원을 지키겠다는 결의가 강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사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국정원의 비정상적 관행을 뜯어고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확실해 보이고 잘못된 수사로 국민 신뢰를 잃지 않겠다는 검찰의 결의가 흔들리지 않는 이상 야권은 ‘특검’ 주장 같은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행위 따위는 자제해야 옳다. 큰 사건 때마다 특검을 들고 나오는 정권 흔들기는 이제 야당 되면 다 하는 짓으로 이해되는 정도다.

대통령이 말한 ‘비정상의 정상화’는 공교롭게 국정원부터 이루어야 할 과제가 돼버렸다. 국민이 납득하고 정치권에서 더 이상 특검 주장이 나오지 않을 만큼 설득력 있는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검찰의 신뢰만 동반 추락하는게 아니고 박근혜 정권의 보루가 무너져 내릴 판이다. 국가 조직은 업무 시스템이 가진 문제점을 과감하게 개선할 때 경쟁력이 향상된다는 전향적 인식을 가져야한다.

국정원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 하겠다”면서 “위법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를 엄벌에 처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또한 마땅한 순서가 아니라고 본다. 검찰수사에 앞서 국정원이 스스로 올가미를 걷어내는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먼저 내놓아야 했다. 대북 정보 수집의 첨병 한명을 키우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다. 그 비밀요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에 맥 놓고 검찰처분만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국회 특위가 여야 실랑이 끝에 겨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존속을 합의했지만 국정원의 어설픈 간첩 수사 관행을 밑바닥부터 바꾸지 않는 한 이 대공 관련 수사권 시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 일각의 국정원 무력화 기도에 기름 붓는 일은 더는 안 된다. 지금 이중간첩일 수도 있을 간첩사건 피의자 한 사람에게 휘둘리고 있는 나라 모양이 처참한 지경이다.

이런 마당에도 대한민국 국회의원 3명 중 한 명은 외유(外遊)로 이미 해외체류 중이거나 출국 예정이라고 한다. 기초연금법 처리 등 3월에 집중돼 있는 민생법안 같은 건 그들 안중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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