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골프회원권 판도라 상자 열릴까

▲ <뉴시스>

사용규정도 없고 내역 기록 안 해…사용처 궁금
정치인·고위공무원 접대용…‘윗선’ 드러날까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공공기관들이 수십억 원 상당의 골프회원권을 보유하고도 그 사용내역 공개를 꺼려해 관련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규정도 없고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조차 파악이 어렵다보니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치인·고위공무원 등에 대한 로비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실제로 ‘위례시민연대’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한국정책금융공사, 중소기업은행,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수출입은행 등 4곳에 질의했지만 이들 모두 “공개의무가 없다”며 답변을 회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기관에 대한 의심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숨기려 하면 궁금해지는 게 당연지사다. 특히 우리나라 공공기관들의 비리 사실이 하루가 다르게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들에 대한 날선 비난이 들끓는다.

이런 와중에 한 시민단체가 일부 공공기관의 골프장 사용 내역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자료 제출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졌고, 그 결과에 더 큰 의구심이 든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요서울]이 위례시민연대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수출입은행ㆍ중소기업은행ㆍ한국주택금융공사ㆍ한국정책금융공사 등이 골프회원권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정책금융공사는 2009년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위치한 중부CC 골프장 회원권 2개를 보유하고 있다. 회원가는 2억6673만1000원에 구입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도 경기도 용인시 소재 88CC와 여주군 소재 렉스필드CC 회원권을 보유중이며 각각 1구좌와 2분의1구좌를 보유하고 있다. 가격은 비공개했다.

그러나 회원권 정보제공업체 ‘동아회원권’의 시즌 13일 시세를 기준(개인)으로 하면 각각 1구좌 당 각각 1억2350만 원, 3억5500만 원 등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어 이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갔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또한 중소기업은행은 경기 가평의 크리스탈밸리 등 전국 각지의 골프장 회원권 19계좌를 갖고 있으며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회원권을 사들이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 13곳, 전남 화순 2곳, 경북 영천, 부상 기장, 충북 청원, 경남 김해 각각 1곳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경기 안성 파인크리크CC, 경기 이천 뉴스프링빌CC, 충북 진천 아트벨리CC, 코리아CC 등 4개의 회원권을 각각 10억1443만3200원, 7억2935만6380원, 8억176만 원, 22억484만 원(총48억977만1000원)구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들 공공기관들이 회원권 사용 관련 규정도 없고 자세한 사용 내역도 기록하지 않는 등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논란이 될 전망이다.

특히 한국정책금융공사는 회원권 사용 관련 규정이 없고, 2012년 2회, 2013년 0회 등 2년간 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아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주택금융공사도 사용 관련 규정이 없으며, 이용 내역에 대한 정보 공개 요청을 “개인의 비밀에 속하는 기초 정보”라며 거부했다.

중소기업은행은 최근 2년간 사용 현황에 대해 “해당 정보 없음”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목적으로 골프를 쳤는지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수출입은행 역시 골프장 회원권 사용과 관련해 별도 규정은 없으며 임원(집행간부 포함 11명)만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규정만 세워놓고 구체적 사용 목적ㆍ초청 대상 등은 밝히지 않는다고만 밝혔다. 다만 2012년 업무협조도모, 정책홍보, 정보취득 목적으로 196회 이용했고, 지난해에는 업무협조도모, 정책홍보, 정책취득으로 165회 사용했다고만 전했다. 이 모든 사용은 임원(집행간부 포함)이 사용한 것이라고 했다.

4개 기관 모두 골프장 이용 관련 상급지도 감독기관, 감사원 등으로부터 지적받은 바 없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위례시민연대 관계자는 “골프장 회원권의 주요 용도가 공공기관에게 ‘갑’인 정치인이나 고위직공무원 접대용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며 “불필요한 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골프회원권 구입 및 관리 규정을 마련하고 업무추진비 공개처럼 골프회원권 사용내역도 홈페이지에 상세히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법망을 교묘히 이용한 흔적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공공기관 방만경영 심각 수준

이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부 산하 295개 공공기관 중 27개 기관이 49개의 골프장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영난ㆍ비리 및 부실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공휴일ㆍ국경일 등에 연간 수백회의 골프를 즐긴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은 바 있어 더욱 주목된다.

실제로도 이들 4개 기업은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골프장 운영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 바 있어 이번 위례시민연대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이들 기업이 방만경영으로 인해 다음 달로 예정된 감사원 감사를 앞둔 상황에서 이 같은 의혹이 짙어져 잔뜩 긴장하고 있다.
비금융 공공기관보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복리후생이 좋은 이들 기관은 공공기관 개혁을 앞두고 고강도 감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감사원은 다음 달 수출입은행·중소기업은행·주택금융공사 등 금융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에 일제히 착수한다. 이번 감사는 공공기관 경영관리실태에 대한 것으로 인사, 조직, 복지실태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올 가을쯤 감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감사 결과에 따라 금융 공공기관의 복지 혜택이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이미 직원 1인당 복리후생비를 969만 원에서 393만 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방만경영을 바로잡겠다고 하니 감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지 않겠느냐”며 “감사 결과에 대한 후속조치가 어떻게 될 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skycros@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