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와 B씨는 각자 배우자를 두고 있는 사람들인데, 우연찮게 알게 되어 서로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A씨의 남편 C씨가 이것을 알고 A씨와 B씨를 간통죄로 고소했다.

C씨는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A씨가 모든 것을 자백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신혼 초부터 현재까지 약 10년간 전업주부로 살면서 남편 C씨로부터 정서적, 경제적 학대를 받아온 A씨는 유일하게 남은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에 C씨가 쓰라는 대로 각서를 쓰고 말았다.

몇 만원 하는 옷도 미리 남편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남편으로부터 반품을 요구받고 실제 반품을 해야 할 정도였다. 아이들을 가볍게 야단쳤다는 이유로 A씨는 C씨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욕도 들어야 했다. 말대꾸라도 했다가는 그날은 밤은 잠을 잘 수조차 없다.

한편 아내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B씨는 늘 외로웠다. 아내와 달리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A씨에게 호감을 느꼈고 몇 번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아내와 이혼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가정을 깰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간통 고소사건을 수사하게 된 경찰관 갑, 수사의 방향을 잡기 위해 A씨와 B씨에게 전화를 했다. 고소사실이 이러저러한데 고소사실을 인정하는지 물었다. 배우자가 있는 A씨와 B씨는 떳떳하지 못한 만남이었기에 인정한다고 말했다.

다만, A씨와 B씨는 떳떳하지 않게 만났다는 말이었지 간통을 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때 갑이 A와 B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백을 하는지 부인을 하는지에 따라 조사 준비를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갑은 A씨와 B씨를 경찰서로 불러 피의자신문을 했다. A씨와 B씨가 간통사실을 부인하자, 지난번에 물어볼 때는 인정했는데 왜 이제 와서 부인하냐고 화를 냈다. 당황한 A씨와 B씨는 어떻게 될까.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는 “피의자의 진술을 녹취 내지 기재한 서류 또는 문서가 수사기관에서의 조사과정에서 작성된 것이라면, 그것이 ‘진술조서, 진술서, 자술서’라는 형식을 취하였다고 하더라도 피의자신문조서와 달리 볼 수 없고(대법원 2004. 9. 3. 선고 2004도3588 판결 등 참조),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피의자의 진술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형사상 자기에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 자기부죄거부의 권리에 터잡은 것이므로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함에 있어서 피의자에게 미리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때에는 그 피의자의 진술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진술의 임의성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증거능력이 부인되어야 한다(대법원 1992. 6. 23. 선고 92도682 판결 등 참조).”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

피의자신문을 하기 위하여 소환을 통보하면서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것을 고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범죄사실을 인정하냐고 물은 것 자체가 위법하고, 이때 한 진술을 근거로 자백을 강요하는 것 역시 위법함은 물론이다.

<엄경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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