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박씨(35세, 남)와 아내 정씨(33세, 여)는 결혼 3년차로 맞벌이를 하면서 부부는 정씨의 친정에서 살고 있다. 더구나 돈을 모으기 위해 출산도 미룬 상태다.

박씨는 3남 1녀 중 차남으로 집안의 유일한 맞벌이 부부다. 박씨의 아버지는 지병으로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박씨 부부가 부모님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모두 부담하고 있다.

박씨가 결혼 전에 저축한 돈과 정씨가 혼수를 줄여서 보태 마련한 전셋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결혼 1년 만에 신혼집 전세금을 빼 시아버지가 진 빚을 갚고 친정으로 들어갔다. 정씨는 속상하고 친정살이가 불편했지만 남편 탓이 아니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정씨가 친정으로 들어가고 1년이 지날 무렵 시동생은 공무원 시험을 본다고 하면서 다니던 직정을 그만두었다.

시어머니는 이씨에게 ‘큰아들은 외벌이고 시누이도 직장이 없으니 맞벌이를 하는 둘째아들 내외가 셋째 아들 시험공부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내 정씨는 그 동안 참았던 불만이 폭발했다. 남편 박씨도 더 이상 아내를 설득할 염치가 없었다. 박씨는 ‘부모형제와 인연을 끊을지언정 더 이상 부모님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면서 정씨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박씨와 반대로 어머니 요구에 응하기로 하는 남편들도 많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씨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을까.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부부간의 동거, 부양, 협조의무는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일생에 걸친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혼인의 본질이 요청하는 것으로서 재판상 이혼사유에 관한 평가 및 판단의 지도원리로 작용한다”고 전제하면서 “민법 제840조 제6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판상 이혼사유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 함은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 또는 동거하는 형제자매 사이에는 부양의무가 있다. 부부 또는 부모와 미성년 자녀의 부양은 1차적인 의무이지만, 그 밖의 친족사이의 부양의무는 2차적인 의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결국 시동생의 시험공부 비용까지 보태라는 시부모의 요구는 정당하지 않고, 그런 시부모의 요구를 아내에게 강요한다면 부부의 부양의무나 협조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판상 이혼사유(민법 제480조 제6호)에 해당한다.

<엄경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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