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에도 틈새시장이 있다. 할아버지들의 쌈짓돈을 터는 것이 바로 그것. 지난달 29일에는 종묘공원 일대 노인들을 상대로 윷놀이판을 벌인 뒤 참가비 명목으로 억대의 금품을 뜯어온 이모(43)씨 등 11명이 붙잡혔다.서울 종로경찰서 강력 1반에 따르면 이모씨, 김모(51)씨등은 도박장 형태의 윷판을 벌여 종묘 공원 할아버지들의 쌈짓돈을 뜯어 왔는데, 이들이 이렇게 뜯어낸 돈은 무려 2억 4천여만원이나 된다. 이씨는 지난해 9월에 이어 동일한 혐의로 두 번째로 검거되는 것이다.이들이 수억원을 뜯어내는데 사용한 도구들은 조악하기 그지없다.윷은 일반 나무토막을 반으로 잘라 만든 것을 사용했으며, 말(馬)은 병뚜껑을 납작하게 만들어 사용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 등은 자신들끼리만 윷을 던질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하고 참가자들이 돈을 걸게 한 뒤, 때에 따라 일부러 ‘낙’을 시키는 수법으로 돈을 잃게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이들은 작년 10월부터 7개월간 종묘공원 등지에서 윷놀이판을 벌여오다 같은 혐의로 사법처리된 적이 있지만 할아버지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손쉽게 돈을 뜯을수 있다는 매력(?)을 잊지 못해 또다시 범행을 저질러 경찰에 붙잡혔다. 이씨는 노인들에게 술을 사주며 환심을 샀고 자금을 빌려주며 도박판으로 유인했다. 편을 둘로 갈라 이길 것 같은 쪽에 참가자들이 돈을 걸도록 했고 판돈에는 제한이 없었다. 양쪽 합쳐 걸린 판돈이 100만원이 넘으면 판을 시작했다. 판돈은 평균 200여만원에 달했고 판이 벌어질 때면 100여명의 구경꾼이 모여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 흥미진진한 도박판은 모두 짜여진 각본에 의해 철저하게 연출된 사기에 불과했다. 양쪽 편에서 고정적으로 윷을 던지던 사람들은 모두 이씨의 일당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윷을 던질 수 있는‘기술자’였다. 이들은 참가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양팀이 쫓고 쫓기는 식으로 적당히 말의 간격을 조절했다. 이씨의 내연녀 박모(50)씨가 판돈이 적게 걸린 쪽에 돈을 걸면 사기 도박단은 자신들의 돈이 걸린 편을 이기게 해 판돈을 쓸어가는 수법도 사용했다. 그러나 모든 노인들이 다 속아 넘어 간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사기 행각을 눈치채고 항의하는 노인들도 있었지만 승부 결과에 반발하는 노인이 나타나면 이들은 주저없이 폭력을 행사해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일당이 이렇게 따낸 돈은 모두 2억4,000만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은 또 노인들에게 미리 판돈을 빌려주고 선이자를 뗐으며 게임당 판돈의 10%를 참가비 명목 등으로 챙겼다.

이렇게 윷놀이 도박판에서 돈을 잃은 피해자들 중 이모(47)씨와 같은 경우는 이들에게 1,300만원이나 뜯긴 것으로 드러났다.윷놀이 사기단은 이미 10년이 넘게 운영되어 온 조직으로 이 조직은 이씨의 주도하에 그 동안 계속해서 구성원들이 바뀌어 왔다. 이씨는 구성원들에게 수고비와 밥값 등을 주며 팀을 거느렸는데, 놀랍게도 윷을 자유자재로 던질 수 있는‘기술자’를 동원해 구성원들에게 윷놀이의 사기 수법과 팀웍을 철저히 교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이들 사기단은 고객들을 모아 관광버스를 대절, 송추로 단체 관광을 떠나기도 했다. 친목도모를 내세운 이 여행의 진짜 목적은 윷놀이 도박의 활성화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송추서도 어김없이 윷판을 벌여 돈을 뜯어 왔는데, 기분 전환을 내세운 이들의 술수 앞에 많은 여행 참가자들이 빈털터리가 돼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들은 또 종묘공원서 자신들의 영업을 위해 다른 사람들은 윷판을 벌이지 못하게 하며 판을 독점해 왔다.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있지만 이씨는 윷놀이도 죄냐며 강하게 항변하고 있다고.종묘 공원의 한 노인은 “사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노는 건 좋았는데, 자꾸 돈 걸고 하라고 강요하니까…”라고 말끝은 흐렸다가 “내 친구도 저기서 돈 잃고 맨날 여기저기 돈 꾸러 다니고 그랬어. 나이먹어 그게 뭐하는 짓이야”라며 사기 윷놀이 도박의 병폐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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