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박’론과 더불어 여야정치권의 최대 화두가 됐던 ‘안보’론이 부끄럽고 민망해진 대한민국 사정이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호한 대북 원칙의 박근혜 정부 ‘안보 아이콘’으로 최고의 국민 신뢰를 받는 인물 대열에 있었다. 그는 2010년 연평도 포격 사태 수습의 중책을 맡아 국방장관이 된 후 정권이 바뀌고도 장관직을 이어받은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김 국방장관과 함께 현 ‘안보 아이콘’ 3인방 가운데 대북한 정보의 최고탑인 남재준 국정원장은 소위 ‘국정원 댓글사건’의 파고 속에서도 건재를 과시했다. 또 한사람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북한 방문 때 김정일과 악수하면서 조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 ‘꼿꼿장군’으로 더 알려졌다. 그런 안보 3인방이 인책론에 휩싸여 있다.

앞으로 몇 대나 더 발견될지 모를 무인기 추락 물체가 한참 뒤 산삼 캐는 심마니에 의해서 발견되고, 등산객에 의해 발견되는 상황을 여론이 맹공격하고 나선 까닭이다. 북이 무인기를 이용해 남한사회의 바로 이런 현상을 노린 것이라면 우리는 속절없이 그들 전략에 말려든 꼴이다. 북한 군부가 무인기를 연료부족으로 추락케 해서 정체가 드러나게 했을 것이라고는 애초부터 믿기지 않았다.

최근 북한의 도발은 전방위적이다. 지난달 14일 ‘핵 억지력을 과시하겠다’는 국방위원회 성명 이후 단거리 미사일과 노동탄도 미사일 발사로 도발 수위를 높이면서 4차 핵실험을 공공연히 위협하는 마당이다. 동해에 집중됐던 무력시위를 서해로까지 확대해 방사포를 발사하고 일본에는 동해 해상포격과 미사일 발사훈련을 계속하겠다고 통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에 ‘통일 대전’ 분위기로 화답하는 양상이다.

수시로 무인정찰기를 띄워서 우리 군사시설 및 주요기관시설을 관찰한 정황이 겨우 기체추락에 의해 포착됐다. 이를 단순한 연료부족이나 기계 오작동 때문이라는 건 또 한 번의 방심일 것이다. 북한의 교란책일 수 있다는 얘기다. 추락 무인기가 몇 대씩이나, 그것도 군 당국 아닌 민간에 의해 동시 다발로 발견되자 국민 불안심리가 극에 달하고 있다. 우리 방공망이 뚫리고 국가안보에 구멍이 뚫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방어체계뿐 아니라 정보분석체계,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 체계를 연일 여론이 맹타하고 있는 흥분된 기류가 안보지휘계통을 도저히 그냥 못 놔둘 심산이다. 그래서 안보수장들의 문책 인사가 이루어지면 후속의 지휘부 개편이 뒤따라야 하고 부서 동요가 필연적이다. 또 인사 후유증으로 조직 장악에 시간이 걸릴 터이다.

이같이 안보 체제가 흔들리고, 국민이 불안해하고, 정치권이 사분오열하여 국론이 쪼개지는 대한민국 그림은 북한 김정은이 노리는 최상의 걸작품이다. 북한 최대 명절인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이 4월 15일이고 25일은 인민군 창건일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 날짜가 25일이다. 이런 민감한 시기를 도발에 이용할 개연성이 높다.

지난달 북한 군부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게 ‘소형화한 핵탄두를 싣고 미국과 한국을 단숨에 쓸어버리겠다’는 보고를 했다고 한다. 이를 충성발언쯤으로 무시해서 무방비로 있다가 우리 방공망이 뚫리는 치욕을 당하고 말았다. 국민의 놀란 가슴을 쓰다듬어 주는 방법은 누구를 흔들고 문책하는 일이 아니다. 깊이 반성하고 빈틈없는 대비책을 강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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