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부자들과 권력자가 살기좋은 나라”

“범죄자이면서 가진 것 많으면 외부생활 가능”
초범은 의정부 교도소, 경제·지식 사범은 영월교도소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 있으면 죄가 없고 돈 없으면 죄가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지강헌 사건’에서 유래했다. 1988년 10월 16일 서울 북가좌동 한 가정집에서 지강헌을 포함한 탈주범 4명이 한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10시간 만에 자살 또는 사살되는 유혈극이 벌어졌다. 당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유리로 목에 상처를 내 자살하려 했던 지강헌을 경찰특공대가 인질을 해치려는 줄로 착각해 4발의 총을 쏘아 사살했다. 그때 지강헌이 남긴 말이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이후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됐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이제는 하나의 법칙처럼 고착화됐다는 말이 옳을 정도다.

지강헌 등 탈주범들의 탈주 원인은 10년에서 20년까지 내려진 과중한 형량이었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형량을 대폭 강화하는 특별법을 만들었다. 이들의 탈주 계기가 된 것은 형량의 불평등이었다.

지강헌은 대치상황에서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라고 항변했다.

전경환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이다. 1989년 사기와 횡령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실제로는 2년 정도 실형을 살다가 풀려났다. 지강헌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는 특혜를 받고, 돈 없고 권력이 없으면 중형을 받는 상대적 불평등에 분노해 탈주했던 것이다. 상습 강도, 절도를 저지른 지강헌은 범죄자임에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바탕으로 한 사회 부조리와 형량 불평등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 허재호 <뉴시스>

허재호 회장 외에도 황제노역자들 더 있다

그로부터 2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평등은 존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관련된 판결이다.

허 전 회장은 대주그룹을 경영하면서 법인세 500억 원 탈루, 100억 원의 회삿돈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고 기소돼 2010년 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을 선고받았다.

뉴질랜드로 도피했던 허 전 회장은 자진 귀국해 광주교도소에서 일당 5억 원짜리 ‘황제노역’을 받았다. 하지만 전 국민적 공분으로 검찰이 5일 만에 허 전 회장의 노역장 유치집행을 정지했다. 이후 검찰은 벌금 자진납부와 강제집행 등을 시작했고 허 전 회장은 사실혼 아내를 통해 구체적인 벌금납부 방식을 검찰에 알려왔다.

허 전 회장은 교도소 안에서 총 6일간 일해 노역비 30억 원이 탕감돼 현재는 224억 원이 남았다. 허 전 회장은 교도소에서 쇼핑백, 두부 만들기 등의 노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국민들의 사회적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노역비 환산은 허 전회장이 처음이 아니었다. 2013년 시도상선 권혁 회장은 범금 2340억 원으로 노역 하루 일당을 따지면 3억 원이었디. 2008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아 노역 하루 일당이 1억1000만원, 삼화저축은행 신상길 명예회장은 벌금 150억 원을 노역 하루 일당으로 치면 3000만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벌금을 노역대신 현금으로 납부해 허 회장 경우와 같은 논란은 피할 수 있었다.

회장님들 판결 형량 불평등 논란

한화그룹의 김승현 회장은 지난 2월 11일 대법원까지 가는 사투 끝에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그가 받은 최종 판결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 원,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이다.

김 회장은 우량 계열사의 자금을 부실 계열사에 쏟아 붓고 계열사 주식을 가족에게 헐값에 넘겨 수천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11년 1월 불구속 기소, 1심에서 징역 4년을 받고 법정구속됐으나 4개월여 만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어 2심에서 집행유예 조건인 징역 3년으로 감형 받았다. 이후 대법원은 일부 배임액을 다시 계산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고, 김 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구속수감 된지 4개월 만에 건강악화를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만성 폐질환으로 인한 호흡곤란, 당뇨, 우울증 등이 건강악화의 이유였다. 비록 재판 중 구속 수감되기는 했으나 건강악화를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구치소가 아닌 병원을 오가며 재판을 받은 것이다. 비록 검찰은 양형부당 사유가 없어 항소하지 못했지만 일반인들의 시선으로는 판정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게 사실이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2월 27일 대법원 1부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회장(53)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 회장은 동생 최재원 부사장, 김준홍(48)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등과 함께 2008년 SK텔레콤과 SK C&C 등 SK계열사로부터 펀드출자금 선지급금 명목으로 465억 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주식 선물 투자 등을 위해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점을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지만, 동생 최 부회장에 대해서는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앞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최 부회장에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사법부 무능·불평등 국민 원성 산다

사실 최 회장의 경우는 한화그룹 김 회장에 비하면 선고가 너무 과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빼돌렸던 465억 원도 이자까지 더해 채워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고의 대상이 최 회장이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과연 이정도였을까 하는 의문을 버릴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해가 갈수록 더욱더 커지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법원이나 사건별로 차이가 나는 형량을 조정하기 위한 양형 기준을 마련해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획일적인 통일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사건별로 수십 가지 이상의 판단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판사들의 양심과 전문성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지방의 한 교도소에 구속 수감된 재소자 A씨는 최근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더하여 합법적 탈옥을 승인하는 사법부의 무능과 불평등을 꼭 얘기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그는 “5~6명이 사용하는 방 하나를 혼자 사용하는 호사스러움도 뿌리치고 범죄자이면서도 가진 것이 많으니 자랑스럽게 한 달에 수천만 원의 병실료를 지불하며 떳떳하게 숨 쉬며 살아가는 재벌 총수들을 용납하는 정부”를 비판하며 “부자들과 권력자가 살기 좋은 나라임이 분명합니다”라고 비판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은 단순히 형량 불평등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소자 A씨의 말처럼 재판을 받기 위해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부터 그리고 선고를 받아 교도소로 옮겨가서까지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별은 계속된다.

구치소·교도소에서도 불평등 이어지기도

전직 교도관들의 말에 따르면 소위 높은 분들이 들어오는 경우는 모든 교도관들이 긴장을 한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부딪힐 일이 없을지라도 신분이 높은 만큼 신경이 더 쓰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교도소 배정에도 차이가 있다. 소위 잘 나가는 인사들이 가는 교도소는 따로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개인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형량과 경비처우등급 등에 따라 교도소가 정해지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따라 붙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형량불평등이 있는 한 이러한 말들은 자연스럽게 따라 올 수밖에 없다.

보통 구치소는 형량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가 재판을 기다리며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재판을 받다가 형량이 확정되면 기결수 신분으로 교도소에 수용된다.

법원에서 최종 선고가 떨어져 형량이 확정되면 법무부는 검찰로부터 형집행지휘서를 넘겨받는다. 형집행지휘서가 넘어오면 매달 10일 열리는 분류처우위원회를 통해 수감자의 경비처우등급이 확정된다.

경비처우등급은 1등급에서부터 4등급으로 나눠지며 초범, 재범, 죄명, 사건 내용 등 16개 항목에 대한 심사를 통해 결정된다. 1등급은 형량이 아주 짧은 경우만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처우등급이 정해지면 해당 등급에 맞는 교도소로 보내진다. 교도소는 개방·완화경비·일반경비·중경비 시설 등 크게 4단계로 구분된다. 등급에 따라 도주방지을 위한 설비, 수형자에 대한 감시·감독 정도가 다르다. 같은 교도소 내에서도 구획을 정해 경비등급을 달리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 최태원 <뉴시스>

최태원 회장은 어느 교도소에 있나

2월 27일 법원으로부터 형 확정 판결을 받은 SK그룹의 최태원 회장도 4월 10일 분류처우위원회를 통해 서울구치소에서 다른 교도소로 이감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초 2월 28일까지 형집행지휘서가 접수됐다면 3월 10일자로 이송됐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구치소에 수감 됐던 수형자들은 수도권에 있으며 완화경비 형태로 운영되는 의정부교도소나 여주 교도소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교도소에 비해 수도권에서 가깝고 완화경비교도소이므로 덜 불편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수형자 자치제’로 운영되는 영월교도소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의정부교도소는 초범을 주로 수용하는 교도소다. 1943년 경성형무소 의정부농장으로 문을 열었다가 1966년 의정부교도소로 승격했다. 지난 2월에는 교도소 내에 정신질환수용자를 위한 정신보건센터가 문을 열었다. 올 1월에는 가수 서문탁이 위문공연을 열기도 했다. 의정부교도소에는 과거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강동희 전 원주 동부 감독이 수감됐다.

여주교도소는 현대적으로 신축한 최신 교정시설이다. 각 사동 및 거실 출입문이 전동제어식으로 돼 있으며 수용사동 천장에는 창을 설치해 일조권을 확보했다. 수용거실 바닥은 온수난방 설치가 돼 있고 모든 거실 내 세면대 및 수세식좌변기가 설치돼 있다. 또 수용생활로 인한 학업중단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방송통신대학과 중고등학교 과정의 학과교육반을 운영하고 있다. 여주교도소에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복역했었다.

현재 최태원 회장은 ‘완화경비’ 형태로 운영되는 의정부교도소나 여주교도소 등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 영월교도소에

▲ 강희락 <뉴시스>

전국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교도소는 영월교도소다. 영월교도소는 완화등급인 S2로 분류된 데다 일반 교도소와 달리 전국에서 유일하게 ‘수형자 자치제’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형자 자치제’는 수형자들이 하루 일과를 마친 오후 6시부터 8시 30분까지 일정한 공간에서 교도관의 감시와 통제 없이 책을 읽거나 종교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율이 보장된다. 또 수형자 자치회가 구성돼 한 달에 한 번 교도소장과 면담을 통해 불편한 점과 문제점 등을 건의할 수도 있다.

S2로 분류된 교도소는 위험한 기결수 외에 경제·지식 사범 등이 수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유영구 전 KBO 총재,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의 인사가 수용됐다. 수형자들의 직업도 대부분 전직 공무원들이 많다.

이밖에 청송교도소에서 이름이 바뀐 경북북부교도소는 죄질이 나쁜 중범죄자들이 주로 수감되는 교도소로 알려졌다. ‘빠삐용 교도소’로 불릴만큼 지형이 험하고 탈옥이 힘든 교도소다. 등교 중이던 여아를 성폭행한 전과 17범 조두순, 수원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오원춘 등이 이 곳에 수감 돼 있다.

당초 오원춘이 수감되기로 했던 천안외국인교도소는 위성방송 시청과 침대 등이 제공돼 수감생활이 상대적으로 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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