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승부처 여권 치명상 불보듯”

 “심각한 상황 맞고도 탈출 유도가 없었다”
부처 협조체제 혼선…청와대 문책인사 준비 중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실종자 가족 임시 집결지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는 700여 명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구조 당국과 정부에 대한 비난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사건 초동대처 미흡을 비롯해 구조와 관련된 행정적 오류 등 여러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정치권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건이 지방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야는 이번 사건으로 지방선거 일정을 모두 중단하고 경선 스케줄 등을 모두 뒤로 연기한 상태다. 또 후보들의 현장방문이나 유세 등 사건과 관련된 정치행위도 일절 하지 않기로 의견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행위가 유가족 등 피해자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여권은 치명상을 입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일부에서는 침몰한 선체 수색작업을 통해 추가 사망자가 계속 나올 경우 관련자 문책 요구 등 책임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내에 갇힌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여론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구조 당국과 세월호 운항사인 청해진해운의 무능한 초기 대응에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은 체육관을 찾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경기도교육청 등 관계 당국자에게 고함을 지르는 등 항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체육관을 방문하자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은 “정부가 얼마나 일을 무능하게 하는지 여실히 드러났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자 가족들의 분노는 막연한 책임추궁이 아니다. 사건과 관련해 정부와 관련부처 그리고 구조 당국의 안일한 대처가 드러나 향후 파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현장 공무원들의 안이한 초동 대처와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 등 재난관리 지휘 체계의 혼선 등이 겹쳐 화를 키우고 사태 수습을 어렵게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17일 해양수산부가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세월호의 한 승무원은 사고가 난 16일 오전 8시55분 해수부 산하 제주해양관리단 해상교통관제센터 쪽과의 교신에서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가 많이 넘어가 움직일 수 없다. 컨테이너도 넘어가고, 사람들 이동이 힘들다”라며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정부 우왕좌왕에 피해자 늘어

고명석 해양경찰청 장비기술국장은 이때 배경 설명 브리핑에서 “(사고 당일) 오전 9시30분에 헬기와 함정이 도착했는데 그때 벌써 (배가) 50~60도 기울어진 상태였다”고 밝혔다.

고 국장은 “이렇게 되면 한쪽으로 물건이 쏟아지고, 사람도 한쪽으로 쌓이게 된다. 거기를 벗어나 창문으로 탈출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희생자가 많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처럼 심각한 상황에 탈출유도가 없었다는 데 있다. 교신 기록과 초기 상황 보고 등을 살펴보면 사고 초기부터 선박 침몰을 앞둔 심각한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해경이나 안행부, 해수부 등 정부 부처 어느 곳에서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주고 선박에서 빨리 탈출시켜라’라고 지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수습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오전 내내 ‘승객 대부분이 구조됐다’고 낙관하며 상황을 오판했다. 청와대도 사고 초기 정확한 상황을 보고받지 못해 제대로 사건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했고 그 결과 적극적인 대응 주문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사건과 관련해 처음부터 제대로 진행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현장 구조팀은 선실 진입은 물론 탑승객의 3분의 1도 구조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탑승객 대부분이 구조됐다고 보고받고 “선실에 남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없게 하라”는 현장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주문을 해경에 내렸다.

정부의 무능한 대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배가 전복된 뒤에야 구조선박과 헬기 등 구조장비를 2배로 늘렸다. 지난 16일 오전 10시 해경·군·소방방재청 등에서 헬기 16대, 선박 24대가 출동했다가 오후 3시에 헬기 31대, 선박 60척이 출동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10시31분 이미 선박은 뒤집혀 선체가 물 밑으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범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을 지시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와 달리 정부 부처 간 지휘 협조 체계의 혼선도 드러났다. 16일 내내 해양경찰청을 관할하고 해난 사고 전문가가 많은 해수부와 재난관리 주무 부서인 안행부의 임무와 역할이 정리가 안 돼 혼선을 빚었다.

또 급박한 상황에 민, 관, 군 3자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문제가 부처 이기주의와 실적주의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 잠수요원들은 500명 넘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장 소식통들에 따르면 제대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잠수요원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피해자 가족들을 비롯해 사고현장 주변에서는 “사실 사고가 난 이후 거의 30시간이 지나도록 공기주입도 이뤄지지 않았고 침몰 직후 바로 투입됐어야 할 잠수요원들은 바다 위에서 침몰하는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현장 구조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잠수부들은 무작정 투입하는 것이 아니고 지휘부가 재난 상황을 정확히 판단했을 때 가능하다”며 “당시에는 그 여객선이 침몰할 정도의 심각한 사고라는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또 잠수부 투입과 관련해 여러 변수들을 각 부처가 계산하는 과정에서 일이 늦어졌다”고 털어 놓았다.

관련부처 장관·책임자 문책

이와 관련한 여론이 날로 악화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중 세월호 침몰사건이 지방선거 정국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상에 가장 무게가 실린다. 또 청와대가 이번 사건에 대한 보고 누락 등 여러 문제점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구조 당국 지휘부는 물론 관련부처 책임자와 장관을 교체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야권 주변에서는 선체에 갇혔던 피해자 수색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시점에 야권이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의 무능함을 집중 부각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사건 관련 책임자들을 경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만약 청와대와 여권이 사건 초기 대응 미흡에 이어 책임자 문책도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여론과 야권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여권 내부에서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안행부와 해수부 장관 그리고 해양경찰청장 등이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 또 사건과 관련해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책임자들은 옷을 벗게 될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청와대는 이 같은 조치 등으로 비난여론을 다소 희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지방선거 정국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세월호 침몰로 여권이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선거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여권이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며 “특히 인천 등과 같이 여야 후보가 박빙인 지역은 여권후보에 상황이 불리하게 작용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조사에서 드러난 내용을 살펴보면 벌써 일부 박빙 지역은 판세가 야권후보에 유리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는 이번에서 사고 관련 부처 수장 교체를 추진하면서 다른 인사도 같이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한 소식통은 “청와대가 사고 수습 국면에서 문책성 인사와 동시에 그동안 검토해 왔던 일부 기관장 또는 공기업 사장들에 대한 인사를 같이 단행할 수도 있다”며 “일단 여론을 의식해 사고 관련 인사들을 문책한 뒤 추가 인사를 하는 그림이 그려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문책성 인사를 단행할 경우 지방선거 정국에 더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일단 사고 수습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문책성 인사는 그 이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고 수습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문책성 인사를 할 것이 아니라 곧바로 다시 지방선거정국을 가동시켜야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선체 인양은 일단 두 달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관련 부처가 속도를 낼 경우 한 달 정도로 앞당길 수도 있다. 선체가 인양 작업과 함께 추가 사망자 수가 드러나게 되면 여론이 더 악화될 수도 있어 관련자 문책을 미루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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